올해 기업공개(IPO) 시장 ‘대어(大魚)’로 주목 받은 카카오엔터테인먼트가 상반기(1~6월) 중 상장하려던 계획을 접었다. 지난 2020년 주관사를 선정하며 기업공개(IPO) 준비를 계속해왔지만 상장 예비심사 청구를 오는 4월 이후로 미룬 것이다. 상장 절차가 진행되는 기간을 고려하면 카카오엔터테인먼트의 올 상반기 IPO는 사실상 물 건너간 셈이다.

증권 업계 관계자들은 카카오엔터테인먼트의 연내 상장 자체가 어려울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는다. 계열사 카카오모빌리티가 재무적투자자(FI)의 이해관계 때문에 올해 중 상장해야 하는데, 최근 카카오(035720)그룹이 경영진의 주식 ‘먹튀’ 논란에 휩싸인 데다 물적분할과 ‘쪼개기 상장’에 대한 국민정서가 매우 부정적인 만큼 두 계열사 모두 연내 상장하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엑시트(투자금 회수)가 급한 카카오모빌리티가 먼저 증시에 입성한 뒤 카카오엔터테인먼트는 내년에 상장할 가능성이 있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전망한다.

이진수 카카오엔터테인먼트 대표(왼쪽), 류긍선 카카오모빌리티 대표(오른쪽). /각사 제공

10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카카오엔터테인먼트는 최근 상장 예심 청구일을 4월 말 이후로 연기했다. 통상 예심 청구부터 상장까지는 110~120일이 걸리기 때문에 당초 계획한 대로 6월 말까지 상장하려면 늦어도 4월 초에는 예심 청구를 해야만 하는데, 이를 사실상 포기한 것이다.

상장 일정 연기는 이미 예견된 것이다. 최근 증권업계는 물론 대선을 앞둔 정치권에서도 잇달아 모회사와 자회사의 동시 상장으로 인한 지주사 할인(모회사가 보유한 자회사 지분 가치가 저평가 받는 현상)을 문제 삼자, 카카오의 컨트롤타워인 공동체얼라인먼트센터(CAC)가 직접 나서 계열사 상장을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카카오는 앞서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카카오게임즈(293490), 카카오페이(377300), 카카오뱅크(323410) 등 3개 계열사를 증시에 올리며 모회사의 주주가치를 훼손했다는 비난을 받은 바 있다.

카카오는 그 외에도 지난해 말 카카오페이의 전직 대표이사 및 임원진이 스톡옵션으로 받은 주식을 대량 매각하며 ‘먹튀’ 논란까지 낳아 당국의 집중 견제를 받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몸값이 10조원 이상으로 예상되는 카카오엔터테인먼트의 상장 절차를 이어가는 것은 회사측에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카카오엔터테인먼트 외에 ‘카카오T’를 운영하는 카카오모빌리티도 연내 상장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카카오모빌리티는 작년 8월 한 차례 상장 주관사 선정을 위한 입찰을 받고 증권사들의 프리젠테이션(PT)까지 진행한 뒤 절차를 중단했으며, 10월 상장 주관사 선정 작업에 재시동을 걸었다. NH투자증권·KB증권·한국투자증권·대신증권 등 국내외 주요 증권사 10여개사가 입찰제안요청서(RFP)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카카오모빌리티의 상장 주관사 선정 작업은 또 다시 중단된 상태다. 지난해 하반기 골목상권 침해 논란으로 정책당국의 집중 타깃이 된 데 이어, 연말부터는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긴축 정책 영향으로 기술 성장주의 투자 매력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는 기업가치를 제대로 평가 받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며 IPO 준비를 멈춘 것이다. IB 업계에 따르면, 이 회사 기업가치는 지난해 8월까지만 해도 8조원 수준으로 추정됐으나 현재는 5조원 안팎까지 떨어졌다.

증권 업계에서는 두 계열사가 한꺼번에 연내 상장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본다. 두 계열사 중 한 곳만 연내 상장한다면, 카카오엔터테인먼트보다는 카카오모빌리티가 먼저 나설 가능성이 크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말한다.

TPG컨소시엄(TPG·한국투자증권·오릭스)은 지난 2017년 카카오모빌리티에 5000억원을 투자한 데 이어 지난해 6월에는 1307억원을 추가 투자했다. 누적 투자금은 총 6307억원이며, 지분율은 29.6%에 달한다. 사모펀드(PEF) 운용사는 보통 펀드 운용 기간 10년 중 초기 5년 동안 투자에 집중하고 나머지 5년을 회수에 할애한다. 펀드 청산 전 엑시트를 하려면 시간적 여유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TPG 입장에서는 첫 투자 후 5년이 지난 올해 중 카카오모빌리티를 상장해 엑시트에 나서야 한다.

TPG가 카카오모빌리티에 투자할 당시 대주주 카카오와 어떤 내용의 계약을 맺었는 지는 정확히 밝혀진 바 없다. 다만, 이처럼 투자 단계에서 특정 시점까지 상장해야 한다는 조건을 내거는 것은 일반적인 일이다.

IB 업계 일각에서는 TPG가 이 조건을 깨고 상장 기한을 2년 더 연장할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오지만 이는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PE가 상장 기한을 연장하기 위해 카카오모빌리티 지분을 다른 펀드로 옮기는 것도 쉽지 않다. 지분을 떠안게 될 펀드의 LP들이 반대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한 PE 관계자는 “상장 시한 연장이나 다른 펀드로의 지분 이동은 LP에 대한 배임이 될 수 있으므로 펀드 운용사(GP)가 맘대로 결정할 수 없는 문제”라며 “만약 5년 내 상장하는 것이 계약 조건에 명시됐다면, 이를 어길 경우 이행해야 할 페널티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 대주주 카카오가 계약 당시 약속한 수준 이상의 수익률을 보장해주며 TPG의 지분을 되사야 할 수 있다. TPG와 카카오의 지분을 묶어서 제3자에 매각한 뒤 카카오의 지분 매각대금 일부를 TPG측에 지급하는 것도 페널티의 일종이 될 수 있다. 대주주 입장에서 이 같은 패널티를 피하기 위해서는 당초 약속한 대로 카카오모빌리티를 연내 증시에 올리는 것이 가장 좋다.

설령 이 같은 페널티가 없다 하더라도, TPG 입장에서 카카오모빌리티의 상장을 미룸으로써 얻을 수 있는 실익은 없다. IB 업계의 한 관계자는 “재무적투자자(FI)인 PE와 달리 전략적투자자(SI)들은 향후 20~30년 간 사업 제휴를 이어나갈 생각을 하고 출자하기 때문에, SI의 투자 시점에는 이미 밸류에이션(기업 가치 대비 주가 수준)이 고점에 도달했을 확률이 높다”고 말했다. 앞으로 기업가치가 추가 상승하길 기대하기는 어려운 만큼, 상장 연기는 TPG에 리스크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카카오모빌리티는 지난해 4월 구글에 565억원을, 7월 LG에 1000억원을 투자 받았다. 같은 달 GS에너지와 GS칼텍스가 300억원을 투자했으며, 12월에는 GS리테일이 650억원을 베팅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