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단군 이래 최대어(魚)’ LG에너지솔루션(373220)의 공모 청약에 투입됐던 대규모 자금 대부분이 여전히 증시주변자금으로 머물고 있다. 대내외 불확실성이 커지며 투자 여건이 악화하자, 부동자금은 넘쳐나는데도 막상 투자할 곳은 마땅치 않은 상황이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달 13일까지 64조원대에 그쳤던 투자자 예탁금(장내파생상품 거래 예수금 제외)은 LG에너지솔루션의 공모 청약 전날인 17일 74조원대로 급증했으며, 청약 둘째날 53조8056억원으로 줄었다. 예탁금은 21일 청약증거금 110조원이 환불되자 다시 74조원으로 증가했고, 증감을 거듭하다 27일에는 75조원을 넘었다.
증시주변자금으로 분류되는 종합자산관리계좌(CMA) 잔고 역시 LG에너지솔루션 청약증거금 환불 이후 줄곧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청약 둘째날 44조6100억원까지 줄었던 CMA 잔액은 청약증거금 환불일인 지난달 21일 63조6753억원으로 급증했으며, 이후에도 꾸준히 증가해 이달 4일에는 70조원을 넘게 됐다.
금융투자업계 전문가들은 이처럼 부동자금은 넘쳐나는 상황에 대해 마땅히 투자할 곳이 없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설태현 DB금융투자 연구원은 “지난 달 27일 LG에너지솔루션이 상장한 후 바로 구정 연휴가 있었으며, 또 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매파적 발언이 나온 데다 우리나라는 대선을 앞둬 여러모로 불확실성이 큰 상황”이라며 “증시가 전체적으로 조정을 받는 가운데 이따금씩 반등하고 있는 만큼, 지금 당장 좋은 투자처가 없다”고 말했다.
나정환 케이프투자증권 연구원도 “1월 주식 투자 수익률이 매우 저조했기 때문에, 이런 상황에서 개인 투자자가 섣불리 저가 매수에 뛰어들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지난주만 해도 코스피지수가 많이 오르는 가운데 개인은 이틀 연속 순매도를 기록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개인의 대기자금 일부는 시가총액 1위 종목인 삼성전자(005930)와 공모주로 쏠리는 모양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LG에너지솔루션 청약증거금 환불일인 지난달 21일부터 이달 4일까지 개인이 가장 많이 사들인 종목은 삼성전자였다. 총 7500억원을 순매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LG에너지솔루션을 1조7000억원어치 판 것과 상반된다.
강봉주 메리츠투자증권 연구원은 “작년 하반기와 최근 증시가 조정을 받음에 따라 개인 투자자들이 손실을 많이 봤을텐데, 요즘 투자자들은 이를 일종의 ‘수업료’라 생각하고 5~10년 간 장기 투자한다는 성향이 크다”며 “1월 하락장에서 상대적으로 덜 내린 삼성전자를 사들여 ‘1등 종목’이 주는 심리적 편안함을 안고 장기 보유하려는 투자자가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다만, 최근 삼성전자 주식을 사들인 개인 투자자들은 적잖은 손실을 봤을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달 21일 7만6000원선에 근접했던 삼성전자 주가는 27일 7만1000원대까지 떨어졌다. 현재도 7만3000~7만4000원대에서 박스권 등락을 지속하며 지지부진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개인 자금은 그 외에도 중소형 공모주에 대거 흘러들어갔다. 이지트로닉스와 스코넥은 일반 공모 청약에서 각각 887대1, 1751대1의 높은 경쟁률을 기록했다. 청약증거금은 각각 4조8000억원, 6조3000억원을 모았다. 두 회사 모두 LG에너지솔루션 청약증거금이 환불된 21일 공모 청약을 실시했다. 24~25일 이틀 간 공모 청약을 받은 아셈스 역시 2435대1의 경쟁률을 기록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청약증거금은 4조9000억원이 몰렸다.
다만 공모주에 대한 긍정적 투자 심리가 지속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나 연구원은 “예정된 기업공개(IPO)가 지나치게 많아 공모주 투자가 과거처럼 무조건 높은 수익률을 보장해주지 못한다”며 “현대엔지니어링은 기관 수요예측 결과가 부진해 아예 상장을 철회하는 일까지 벌어졌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