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상용화로 뜨거워진 배터리(2차전지) 시장을 이을 미래 먹거리로 폐배터리 시장이 부상하고 있다. 전기차에 내장된 배터리 교체 주기가 다가오는 만큼, 몇 년 안에 다 쓴 배터리를 재활용·재사용하는 폐배터리 시장이 개화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전기차 'ID.3'가 생산되고 있는 폭스바겐의 독일 츠비카우공장. 경영진이 생산 공정을 둘러보는 모습./폭스바겐 제공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글로벌 폐배터리 시장 규모는 지난 2019년 1조6500억원 수준에서 2030년에는 20조2000억원으로 확대될 것으로 추산됐다. 지금으로부터 약 30년 후인 2050년에는 그 규모가 600조원에 이를 수 있다는 관측이 나왔다.

통상 전기차에 들어가는 배터리 수명은 짧게는 5년, 길어야 10년이다. 충전과 방전을 거치면서, 주행거리가 줄고, 충전 속도도 느려지는 탓이다. 2020년을 전후로 전기차 보급이 급증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2025년부터 폐배터리 시장이 본격적으로 형성될 것으로 예상됐다.

이때 폐배터리 시장은 크게 재활용과 재사용으로 나뉜다. 배터리에서 원재료를 추출해 새 배터리를 만드는 데 쓰는 게 재활용이라면, 재사용은 검수와 공정을 거쳐 배터리나 모듈이 필요한 에너지저장장치(ESS), 소형 전기차, 전기 자전거 등에 다시 사용하는 것이다.

이미 국내외 배터리, 자동차, 에너지업체들은 폐배터리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앞다퉈 뛰어든 상태다. 폐배터리를 재활용해 원재료 가격 상승에 대응하고, 폐배터리를 단순 폐기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환경 문제를 사전에 차단해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을 강화하는 계기로 삼겠다는 취지다.

조철희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전기차 내에서도 배터리의 원가 비중은 59%에 달한다”며 “전기차 시장 활성화를 위해서는 가격 안정화가 필수적인데, 완성차 가격 상승 압력을 높이는 소재 가격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려면 배터리를 재활용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임승미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글로벌 전기차 시장은 연평균 50% 이상 성장률을 보이고 있다”며 “현재 전기차 시장은 폐배터리 등으로 친환경 논란이 있는데 폐배터리 재활용이 부각되면 진정한 친환경 사업으로 인식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LG에너지솔루션(373220)은 지난해 말 북미 최대 배터리 재활용 업체 ‘리-사이클’(Li-Cycle)에 약 600억원을 투자했다. 향후 리-사이클이 폐배터리에서 추출한 니켈을 2030년부터 10년 동안 공급받는다는 계획도 있다. 경쟁사이자 세계 최대 배터리 업체인 중국 CATL은 폐배터리 재활용 시설을 짓는데 6조원을 투자했다.

SK이노베이션(096770)은 2020년 폐배터리에서 수산화리튬을 추출하는 기술을 세계 최초로 개발해 상용화를 앞두고 있다. 2025년에는 3000억원 규모 사업으로 키우겠다는 계획이다. 삼성SDI(006400)도 폐배터리 재활용업체 ‘피엠그로우’에 투자했다.

현대차(005380)는 지난해 지속가능보고서를 통해 국내에서 폐배터리 회수 체계를 구축하고, 해외로까지 확장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테슬라, 폭스바겐, 다임러도 폐배터리 관련 기술 개발이나 공장 건설 등 사업 계획을 연이어 발표한 상태다.

한편, 순수 폐배터리 관련 사업만 하는 회사 중 상장사는 미국 리-사이클이 유일하다. 지난 2016년 설립된 회사는 지난해 상반기 스팩 합병을 했고, 하반기 뉴욕거래소에 상장했다. 이외 주요 폐배터리 회사로는 벨기에 유미코어, 중국 화유코발트, GEM, CATL 자회사 Brunt, 한국 성일테크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