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주식형 펀드 인기가 계속 시들해지고 있다. 해외 주식형 펀드로 자금이 분산되는 가운데 간접투자보다는 직접투자, 대체투자 선호도가 높아지면서다. 레버리지·인버스 상품이나 가상자산처럼 수익률이 높은 고위험자산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는 것도 영향을 미쳤다.

여의도 증권가. /조선DB

4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올해 들어 지난달 말 기준 국내 주식형 펀드 930여 개 중에서 설정액이 1조원을 넘는 이른바 대형펀드는 한 개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020년 12월 말까지만 해도 미래에셋자산운용의 TIGER200(1조6300억)을 포함해 1조원대 펀드에 6개 상품이 이름을 올렸다.

지난달 24일 기준 국내에서 설정액이 가장 큰 주식형 펀드는 신영밸류고배당펀드로 그 규모는 약 9965억원으로 집계됐다. 신영밸류고배당펀드는 신영자산운용의 대표 상품 중 하나로 고배당주, 대형 가치주에 투자한다. 신영밸류고배당펀드에선 1년이 조금 넘는 기간 동안 4500억원이 넘는 자금이 빠져나갔다.

다음으로 규모가 큰 상품은 코스피200지수를 추종하는 교보악사파워인덱스(8055억원)였다. 하나UBS인Best연금(4638억원), NH아문디코리아2배레버리지(4119억원), 신영마라톤(4114억원) 등이 뒤를 이었지만, 모두 설정액이 5000억원 미만으로 규모 차이가 크게 나는 편이다.

같은 기간 해외 주식형 펀드에서는 1조원대 펀드에 2개 상품이 새로 이름을 올렸다. 한국투자글로벌전기차&배터리(1조882억원), 피델리티글로벌테크놀로지(1조810억원)다. 2020년 말 기준 설정액이 1조원을 넘는 해외 주식형 펀드는 없었다. 당시 피델리티글로벌테크놀로지가 약 7613억원 규모로 몸집이 가장 컸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국내 증시가 지지부진한 흐름을 이어가는 반면, 미국 증시는 연일 강세를 보이면서 해외 주식형 펀드에 대한 수요가 증가했다는 분석이다. 지난해 말 기준 해외 주식형 펀드 설정액은 일 년 만에 12조1000억원(43.6%) 증가했고, 국내 주식형 펀드 설정액은 8조원(12.7%) 늘어나는 데 그쳤다.

권민경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원은 “공모펀드 시장은 2008년 금융위기 때 엄청난 손실을 기록하면서 외면받기 시작했고 이후에도 침체가 계속되고 있다”며 “최근에는 직접투자가 더 인기인데 전문적인 지식이나 경험이 있으면 시장 대비 초과 수익률을 거둘 수 있고, 별도 보수나 수수료를 내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자산운용업계에서도 비슷한 공감대를 형성하는 분위기다. 통상 과거에는 증시가 부진할 때면 펀드를 비롯한 간접투자 시장이 활성화되는 흐름이 반복됐지만, 지난 몇 년 사이 이런 사이클 자체가 아예 사라졌다는 것이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시장 전반의 투자 성향 자체가 달라졌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예전에는 증시 변동성으로 손실을 내면 펀드를 찾는 경우가 많았다”며 “차라리 전문가 손에 맡겨 안정적인 수익률을 내는 게 합리적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요새는 코인이나 레버리지·인버스 상품 등에 투자해 그 손실을 만회해보려는 투자자들이 늘고 있다”며 “코로나로 유례없는 증시 호황을 학습한 효과”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지난해 6월 1일부터 지난달 24일까지 국내에서 거래대금이 가장 많았던 상장지수펀드(ETF) 가운데 5개 중 4개는 레버리지, 인버스 ETF였다. KODEX레버리지 ETF 일평균 거래대금이 4179억원으로 가장 규모가 컸다. 이때 개인투자자는 KODEX레버리지 ETF를 8348억원 순매수했고, 기관과 외국인은 각각 8047억원, 652억원 순매도했다.

한국투자증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4대 가상자산 거래소 업비트·빗썸·코인원·코빗의 연간 거래대금 총합은 4조달러(한화 약 4790조원), 일평균 109억달러(13조528억원)로 집계됐다. 개인이 보유한 가상자산 규모는 한 해 전보다 50조원 가량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개인의 주식 거래대금은 4936조원, 일평균 19조9000억원 수준이었다.

한편, 새해부터 국내 주식형 펀드 자금 이탈 속도는 더욱 빨라지는 상황이다. 지난달 말 기준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국내 주식형 펀드 설정액은 52조3498억원으로 한 달 전보다 약 6조9053억원(11.5%) 감소했다. 같은 기간 해외 주식형 펀드는 29조3646억원으로 약 1조4602억원(4.7%) 감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