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관 투자자들이 코스피지수를 반대 방향으로 2배 추종하는 이른바 ‘곱버스’ 상장지수펀드(ETF)를 대량 매수하고 있다. 주가지수가 현 수준에서 추가 하락할 수 있다고 전망하며 헤지(위험 회피)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증권 업계 전문가들은 미국 중앙은행의 조기 테이퍼링(양적완화 축소)과 경기 피크아웃(고점을 찍고 하락하는 것) 가능성이 주가지수의 추가 조정에 대한 우려를 키우고 있다고 분석했다. 기관의 이 같은 전망은 곱버스를 대거 팔며 증시 반등에 베팅한 개인 투자자들의 선택과 상반된다.

최근 한 달 동안 KODEX 200선물인버스2X의 순매수 금액. /자료=한국거래소

19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기관은 최근 한 달 동안 삼성자산운용과 미래에셋자산운용에서 판매하는 곱버스 상품을 총 5061억원어치 사들였다. 삼성자산운용의 ‘KODEX 200선물인버스2X’를 4912억원, ‘TIGER 200선물인버스2X’를 149억원 순매수한 것으로 집계됐다.

기관은 곱버스 뿐 아니라 코스피지수를 반대 방향으로 1배 추종하는 인버스 ETF 상품도 대량 매수했다. 최근 한 달간 ‘KODEX 인버스’를 1077억원어치 사들인 것으로 나타났다.

기관은 반면 최근 한 달간 코스피지수의 상승에 베팅하는 ‘KODEX 200′ ETF를 대거 팔았다. 특히 금융투자 기관에서 총 5650억원의 매물이 나온 것으로 집계됐다.

기관 투자자들의 이 같은 선택은 개인 투자자들의 매매 동향과 반대된다. 최근 한 달 동안 개인 투자자들은 ‘KODEX 200선물인버스2X’와 ‘TIGER 200선물인버스2X’를 총 4800억원 순매도했다. 개인은 반대로 ‘KODEX 200′을 725억원어치 사들이며 증시 반등을 점쳤다.

기관이 곱버스를 대거 사들였다는 것은 그만큼 코스피지수의 추가 하락에 베팅한 기관이 많았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6월 말 3300을 넘었던 코스피지수가 최근 3100대 초반까지 하락했음에도, 현재 수준에서 더 조정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정용택 IBK투자증권 리서치본부장은 “기관 투자자들이 증시의 큰 방향성을 고려해 곱버스를 샀다기보다는, 기존에 사놓은 종목들은 펀더멘탈(체력)이 좋아 아직 매도할 수 없으니 주식시장이 출렁일 것에 대비해 헤지 수단으로 곱버스 비중을 높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 이사회 의장. /AP연합뉴스

정 본부장은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조기 테이퍼링(양적완화 축소) 가능성으로 인해 하반기 국내 증시의 상승 동력이 약할 것이라며, 코스피지수가 2800에서 3300 사이에서 등락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실제로 전세계 증시 전문가들은 미 연준의 테이퍼링 속도가 빨라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당초 테이퍼링 시점은 아무리 빨라도 내년으로 예상됐으나, 최근 미국 고용지표가 예상치를 훨씬 뛰어넘는 수준으로 호조를 나타내자 연준이 테이퍼링 시기를 앞당길 수 있다는 전망이 잇달아 나오고 있다.

16일(현지 시각)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최근 연준 위원들은 테이퍼링을 이르면 3개월 안에 시작하는 쪽으로 의견을 모으고 있다. 이르면 올해 말부터 주택저당증권(MBS)과 국채의 매입 축소 등이 시작될 수 있다는 것이다.

대다수 기관은 오는 26~28일(현지 시각)로 예정된 잭슨홀미팅에서 조기 테이퍼링 신호가 나올 것으로 전망한다. 잭슨홀미팅은 주요국 중앙은행 총재들이 참석하는 회의로, 이 자리에서 테이퍼링의 시작을 공식화할 가능성이 크다고 증시 전문가들은 예상한다.

증권 업계에서는 그 외에도 경기의 피크아웃 가능성을 하반기 증시의 불안 요인으로 꼽는다. 정 본부장은 “우리나라는 전년 동기 대비 경제 성장률이 6%였는데, 하반기에 이 정도의 성장률을 기록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올해 4분기가 국내 경기의 고점일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미국의 피크아웃은 좀 더 빠를 가능성이 크다고 정 본부장은 전망했다. 그는 “이달 초까지 바이든 정부의 1차 부양책이 모두 끝났으며, 9월부터 시작될 부양책은 향후 몇 년에 걸쳐 집행될 예정”이라며 “미국 경기의 고점은 3분기 초반에 나타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