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적인 안전자산으로 꼽히는 금 가격이 내려가면서, 금테크(금 재테크)에 관심이 쏠린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인플레이션 헤지(위험 회피) 수단으로서 금의 역할이 희미해지고 있다고 보는 분위기다.

조선DB

11일 한국거래소(KRX)에 따르면 금값은 그램(g)당 6만4880원으로 전날보다 380원(0.59%) 올랐다. 지난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8월 7일 기록한 연중 최고치(7만8538원)에 비해서는 20% 가까이 하락한 수준이다.

최근 국내외 시장에서 금 수익률은 주식시장 뒤처지고 있다. 연초부터 전날까지 KRX 금 시장에서 g당 금값은 1.7% 하락했지만, 코스피지수는 12.1% 올랐다. 같은 기간 뉴욕상품거래소(COMEX)에서 금값은 트로이온스(약 31.1g)당 8.8% 떨어졌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는 20% 상승했다.

금값이 떨어지자 차익을 노린 투자 수요는 증가했다. 올해 상반기 KRX금시장의 일평균거래량과 거래대금은 각각 126.2kg, 82억6000만원으로 지난해 상반기보다 각각 19.4%, 13.8% 늘었다. 상반기 누적 거래대금은 1조160억원으로, 금 시장 전체 누적 거래금액은 처음으로 4조원을 넘었다.

앞서 지난 5일 신세계TV쇼핑은 상반기 순금 거래액이 지난해 하반기보다 90% 증가했다고 밝혔다. 특히 최근 3개월간 금값이 가장 낮았던 7월 순금 거래액은 한 달 전보다 205% 급증했고, 지난달 말에 진행한 순금 골드바 판매 방송에서는 목표 매출 193%를 달성했다.

문제는 금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에 힘이 실리고 있다는 점이다. 통상 금값은 지금처럼 물가가 오를 때 올라가야 하지만, 최근엔 좀처럼 반등하지 못하고 있다. ‘디지털 금’이라고 불리는 암호화폐 비트코인의 등장도 금의 지위를 위협하는 요인으로 꼽혔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8일(현지 시각) 금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는 취지의 내용을 보도했다. 1971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금본위제를 폐지한 이후, 인플레이션 헤지 수단으로서 금의 역할이 뚜렷하지 않을 뿐 아니라, 수익률 역시 주식이나 채권에 비해 낮았다는 것이다.

지난 50년간 미 소비자물가지수(CPI) 대비 금값 비율은 1.0에서 8.4로 뛰었다. 금이 인플레이션 헤지 수단이었다면, 이 비율이 일정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캠벨 하비 듀크대 교수는 “50년 동안 CPI 대비 금값 비율은 평균 3.6에 불과했지만, 최근에는 그 비율이 두 배에 달하는 6.5″라고 설명했다.

금의 장기 투자 수익률도 다른 자산에 비해 부진하다. 금값은 1971년보다 50배 올랐지만, 금본위제 폐지 이후 가격이 급등한 초기 10년을 빼고 보면, 연평균 수익률은 3.6%에 불과하다. 같은 기간 S&P500지수와, 미 국채 수익률은 각각 12.2%, 8.2%를 기록했다.

비트코인이 인플레이션 부담을 덜어주면서, 한동안 금 투자 수요 일부가 비트코인으로 대체될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됐다. 다만 금의 투자자금 유출과 비트코인 자금 유입은 지난해 4분기부터 단기적으로 나타난 현상이기 때문에,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인과관계를 확인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있다.

증권가에서는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테이퍼링(양적완화 축소) 우려가 지속되면서 당분간 금값이 반등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했다. 테이퍼링 가능성이 국채 수익률 상승과 달러 강세로 이어지면 금의 가치는 반대로 떨어진다.

심수빈 키움증권 연구원은 “금 가격은 계속해서 연준의 정책 기조에 민감하게 반응할 것”이라며 “연준의 경기에 대한 낙관론에는 큰 변화 없을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긴축의 가능성을 계속해서 열어둘 것으로 보이며, 이를 감안하면 금값 상승은 제한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황병진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델타 변이 확산과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 부진 등으로 후퇴했던 연준의 테이퍼링 가능성이 다시 주목받았다”며 “국채 10년물 수익률(명목금리) 상승기에는 위험자산 성과가 우세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