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국내 투자자들이 해외 주식을 통해 벌어들인 배당 소득이 8조원이 넘는 가운데, 이 소득에 대한 과세 시스템에 허점이 있는 것으로 2일 확인됐다. 해외 주식 배당금이 국세청 홈택스 상에서 조회되지 않아 납세자가 직접 입력해야만 하는데, 문제는 이렇게 자진 신고하지 않는다 해도 국세청에 당장 적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납세자 입장에서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탈세를 할 수 있는 셈이다.
현행 세법에 의하면, 국내 증권사를 이용해 해외 주식에 투자할 경우 해당 주식이 상장된 국가에서 먼저 배당 소득에 대한 세금을 원천징수한다. 해당 국가의 소득세율이 국내 배당 소득세율(14%)보다 높으면 문제가 없지만, 반대로 국내 세율이 더 높다면 그 차액과 지방소득세를 국세청에 내야 한다. 중국 주식(세율 10%)이 대표적인 예다.
일본 주식에 투자할 경우, 현지 세율에 따라 통상 배당금 중 15%가량 원천징수된 후 남은 돈이 통장에 입금된다. 이 경우 소득세를 기준으로 보면 해당 국가의 세율(15%)이 국내 세율(14%)보다 높기 때문에 국세청에 추가로 낼 돈은 없다. 미국 주식에 투자할 경우에는 투자한 주식 종목에 따라 0~30%범위 내에서 소득세를 원천징수한다. 미국도 보통 15%정도를 원천징수로 세금으로 부과하기 때문에 15%가 넘는 세금을 부과받은 경우에는 국세청에 추가로 부과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국내 세율보다 낮은 세금을 부과받거나 세금을 전혀 내지 않은 경우(세율 0%)도 많이 있어 이 경우에는 투자자가 국세청에 직접 자진 신고를 해서 15.4%(소득세 14% + 지방소득세 1.4%)의 배당 소득세를 내야 한다.
국세청에 따르면, 현재 홈택스 시스템에서는 해외 주식에 대한 배당 소득과 원천징수 내역이 자동으로 조회되지 않는다. 납세자가 직접 증권사에서 외국납부세액 명세서를 받아, 원천징수된 배당 소득세를 홈택스 ‘세액 감면' 탭에 기입해야만 차액과 지방소득세를 납부할 수 있는 구조다.
국세청 관계자는 “선진적인 시스템으로 최고 수준의 편의 서비스(홈택스)를 제공하고 있지만, 개인이 해외 주식 배당금을 얼마나 받았는지까지 파악하지는 못한다”며 “납세자가 직접 타발송금자료를 토대로 입력해서 신고하면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많은 납세자들이 이 같은 작업에 상당한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 일부 증권사의 경우에는 외국납부세액 명세서 양식조차 없으며 금액을 달러화로만 표기하고 있다. 이 때문에 납세자가 엑셀 파일을 만들어 일일이 배당금을 원화로 환산해 기입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일부 납세자들은 세무사에게 대리 신고를 의뢰하기도 하며, “일일이 입력해야 하는지 몰랐다”는 핑계로 자진 신고를 생략하는 사례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해외 주식 배당금으로 상당한 돈을 번 투자자 중에는 ‘홈택스 상에서 안 보이는데 날더러 어쩌라는 거냐'며 소득을 신고하지 않고 버티는 사람들도 있다”며 “그렇게 버텼더니 세무당국에서 ‘알겠다'며 넘어갔다더라”고 전했다.
문제는 이 같은 홈택스 시스템의 허점 때문에 새어나갈 수 있는 세금 규모가 상당하다는 것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투자자들이 해외 주식 투자로 받은 배당금은 총 74억1000만달러(약 8조2500억원)로, 전년 대비 7.7% 증가했다. 이는 외국인 투자자들이 국내 상장사에서 받아간 배당금 총액(39억2000만달러)의 2배에 달하는 규모다.
배당금 누락으로 인한 문제는 납세자의 배당 소득이 2000만원을 넘을 경우 더욱 심각해질 수 있다. 배당 소득이 2000만원을 넘을 경우 종합소득세로 합산 과세되는데, 종합소득세는 누진세율에 따라 부과되기 때문에 소득이 많을 수록 금액이 크게 늘어난다. 만약 소득이 5억원 이상인 사람이 2000만원 이상의 배당 소득을 얻었을 경우에는 세율이 42%까지 올라간다. 배당 소득도 종합소득에 포함되는 만큼, 금액이 2000만원 이상인데도 이를 누락할 경우 세수에 심각한 손실이 발행할 수 있다.
다만, 국세청에서는 이 같은 배당 소득 누락을 추후에도 전부 적발해낼 수 있다는 입장이다. 국세청 관계자는 “요즘은 서학개미들이 워낙 많아 금융 배당 내역 등 납세자들에 관한 많은 자료들이 국세청에 들어오고 있다”며 “세금을 고의로 신고하지 않았다가 추후에 적발될 경우 가산세가 최대 50% 가까이 붙기 때문에, 자진 신고가 최고의 절세 방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