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으로 한국 영화 위상 높여"
"아카데미·美 사회의 진화…우리도 배워야"
"여성 원로배우의 쾌거…韓 사회 전체에 귀감"

배우 윤여정(74)이 제93회 아카데미 영화상 시상식에서 한국 배우 최초로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한국 영화계는 윤여정의 쾌거에 박수를 보내고 있다.

25일(현지 시각) 로스앤젤레스(LA) 유니언 스테이션에서 열린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윤여정은 ‘미나리’ 순자 역할로 여우조연상 트로피를 거머줬다. 한국 배우가 아카데미에서 여우조연상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아시아 배우로는 두 번째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LA) 유니언 스테이션에서 열린 제93회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한국 배우 최초로 여우조연상을 받은 배우 윤여정이 트로피를 들고 할리우드 스타 브래드 피트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날 여우조연상 시상은 할리우드 배우 브래드 피트가 맡았다. 브래드 피트는 ‘미나리’ 제작사 플랜B 설립자이자 배급사 A24의 대표다.

‘미나리’는 한국 영화는 아니다. 순제작비 200만달러(약 22억2580만원)를 들인 저예산의 미국 독립 영화다. 이는 2019년 기준 한국 상업 영화의 평균 순제작비(76.5억원)에도 크게 못 미치는 규모다. 지난해 아카데미 4관왕에 올랐던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 제작비(약 150억원)와 비교하면 약 7분의 1 수준이다.

그런 점에서 윤여정의 수상은 남다른 의미라는 평가가 나온다. 정지욱 영화평론가는 "한국 영화도 아닌 미국 영화에 출연한 윤여정 배우의 50년의 연기가 높이 평가받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윤여정의 수상은 한국어 연기로 이룬 것이어서 의미가 남다르다. 윤여정은 ‘미나리’에서 "원더풀" "프리티 보이" "스트롱 보이" 등의 몇몇 영어 단어를 쓴 것을 제외하고 90% 이상 한국어를 사용했다. 아카데미에서 남녀 주·조연 전체에서 비영어 연기로 수상한 배우는 ‘두 여인’의 소피아 로렌(이탈리아어), ‘대부2’의 로버트 드 니로(이탈리아어), ‘인생은 아름다워’의 로베르토 베니니(이탈리아어), '라비앙 로즈(2008)’의 마리옹 코티야르(프랑스어) 등 유럽권 배우 뿐이었다.

이는 한국 영화의 세계적 위상을 높일 것이라는 기대감도 높아지고 있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윤여정 배우의 수상은 한국 영화가 더 주목받을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기생충’에 이어 세계적으로 한국 영화의 위상을 한 단계 더 올릴 것"이라고 말했다.

윤여정의 수상은 ‘아카데미의 진화’를 보여줬다는 평가도 나온다. 윤여정은 역대 두 번째로 아카데미 연기상을 받은 아시아 여성 배우가 됐다. 영화 ‘사요나라’의 우메키 미요시 이후 64년 만이다. 아카데미 시상식은 ‘백인 남성들의 잔치’라는 악평을 받을 정도로 보수적인 성격을 가진 영화제로 꼽힌다.

‘미나리’ 배급사 A24가 윤여정의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수상을 축하하고 있다.

정 평론가는 "윤여정의 수상은 아카데미가 편견을 깨고 사회를 바꿔나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며 "일례로 한국이 살고 있는 동남아시아계 한국인 감독이 자신의 부모님의 얘기를 영화로 만들었을 때 한국 영화계가 이를 얼마나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인지를 생각해 보면 쉽지 않은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그런 미국 문화계의 개방성이 큰 울림을 주고 있고, 이를 배워야 윤 배우의 수상이 더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74세 한국 노장 여배우의 수상이라는 점도 의미가 남다르다. 황진미 영화평론가는 "한국에서 여배우는 미모, 나이 등 외적인 것으로만 소비되는 경향이 짙다"며 "심지어 유수의 영화 시상식에서도 ‘주목도가 높은 젊은 여성이 수상을 해야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고 했다.

황 평론가는 "윤여정씨는 젊은 시절부터 착실히 필모그래피를 쌓아간 한국 여배우로서 노후에 누구도 예상치 못한 꽃을 피웠다"며 "이는 영화계 후배들은 물론, 한국 사회 전체에도 큰 귀감이 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