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7월 부산 사상구에 있는 국내 한 시중은행의 모라점이 사라지고, 지하철역으로 세 정거장 떨어진 곳에 있는 사상종합금융센터로 통합된다. 모라동은 2019년 기준 지역구 내에서도 65세 이상 노인 수가 가장 많고, 비율도 높은 곳으로 꼽힌다. 이곳에 사는 노인들은 앞으로 이 은행을 이용하려면 반경 3㎞가 넘는 거리를 더 멀리 나가야 할 처지에 놓였다.

지난 3월부터 예년보다 강화된 은행 점포 폐쇄 관련 공동절차가 시행됐지만, 무더기 점포 정리는 계속되고 있다. 시행 이후 지금껏 폐쇄를 예고한 5대 시중은행의 지점 수는 앞선 사례를 포함해 벌써 70곳에 달한다. 노인 등 금융 취약계층 보호를 위해 쉽게 점포를 닫지 못하도록 마련된 폐쇄 공동절차가 무색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13일 은행권에 따르면 최근 국민은행과 우리은행은 오는 7월 12일 자로 각각 28곳과 19곳의 점포 폐쇄를 예고했다. 3월 이후 한 달 반 동안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이 예고한 폐쇄 점포 수는 벌써 64곳이다. 오는 6월에는 하나은행 16곳, 농협은행 1곳 등이 사라진다. 신한은행은 지난 2월 지점 2곳의 통폐합을 공지한 것이 가장 최근이다.

그래픽=이민경

이들의 폐쇄 계획이 일찍이 예고된 것은 지난 3월 시행된 ‘은행 점포 폐쇄 공동절차’ 때문이다. 당초 은행들은 2019년 6월부터 은행권에서 자율적으로 마련한 관련 공동절차를 시행하고 있었지만, 최근 은행 점포 폐쇄 속도가 빨라지면서 이를 더 세분화하기로 했다.

이번에 달라진 내용 중 하나는 점포 폐쇄 관련 내용의 공지 시점이 기존 1개월 전에서 3개월 전으로 바뀌는 부분이다. 또 폐쇄 전 실시하는 사전영향평가의 경우에도, 금융·소비자보호 경험이 있고 은행과 직·간접적 이해관계가 없는 외부 전문가를 비롯해 은행의 소비자보호부서가 함께 참여해 평가의 독립성·객관성을 높이기로 했다.

이런 사전영향평가 결과, 점포 폐쇄를 가정했을 때 소비자 불편이 크다고 판단되면 점포를 유지하거나 지점을 출장소로 전환하는 방안을 우선 검토해야 한다. 이전까지는 현금자동입출금기(ATM)나 이동 점포 등 대체 수단을 선택해 운영하거나 타 기관과 창구업무 제휴를 해 운영하기만 해도 괜찮았다.

하지만 이런 변화가 무색하게도 은행들은 지점 폐쇄에 있어 이전보다 더 큰 부담을 느끼지 않는 분위기다. 1개월 전에 알리던 점포 통폐합 내용을 단순히 3개월 일찍 공지해야 하는 등의 규정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외부 전문가가 동참하는 사전영향평가 역시 은행마다 금융 취약계층 평가 기준 등이 들쑥날쑥할 수 있다는 문제가 있다. 한 은행 관계자는 "외부 전문가가 누구인지 공개 대상도 아닐뿐더러, 이 전문가 역시 은행이 자체적으로 선정한다"면서 "개정된 공동절차 과정으로 인해, 소비자의 불편함 등을 더욱더 객관적이고 독립적으로 평가할 수 있게 됐다고 단언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

더욱이 이렇게 달라진 내용은 '영구적 폐쇄'가 아닌 '임시 폐쇄'·'인근 지역 점포 합병' 등의 경우 적용하지 않는다는 예외 조항 때문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은행들은 이 예외 항목에 따라, 현재 통폐합 대상 지점 중에서도 외부 평가 대상과 생략 대상을 구분 지어 사전영향평가를 진행하고 있다. 공동절차에는 인근 지역의 정의로 '반경 1㎞ 이내 등 같은 도보 생활권 내에 위치한 지점'이라는 예시가 명시돼 있긴 하나, 이것이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수는 없다는 설명이다.

은행연합회 관계자는 "반경 1㎞가 넘어간다고 하더라도 각 은행이 보기에 인근 지점으로 판단할 수 있는 요소가 있다면 그렇게 정의할 수 있는 것"이라며 "이런 기준은 은행마다 다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 관계자는 "생략 대상이라고 할지라도, 은행들이 소비자 보호를 목적으로 자발적으로 외부 평가까지 하는 추세여서 큰 문제가 될 것은 없어 보인다"고 덧붙였다.

다소 실효성 없는 폐쇄 규정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가운데, 점포 감소 속도는 크게 변화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전국 은행 점포와 출장소 수는 ▲2015년 7281개 ▲2016년 7101개 ▲2017년 6789개 ▲2018년 6766개 ▲2019년 6709개 ▲2020년 6405개 등으로 매년 줄어들었다.

한편, 금융감독원은 은행들이 분기별로 제출하는 업무 보고서에 폐쇄 점포의 사전 영향평가 결과 자료를 첨부하도록 관련 감독 규정을 개정한 만큼, 강화된 점포 폐쇄 관련 공동절차의 실효성을 높이겠다는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