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메모리 반도체 1위지만 기술격차 좁혀져
미국·유럽·중국·일본, 국가 차원 반도체 전폭 지원
비메모리 추격도 난항…美, 인텔 공격적 투자
"반도체 경쟁, 기업 경쟁 아닌 국가 간 전쟁"

진대제 스카이레이크인베스트먼트 대표가 30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 컨퍼런스센터에서 열린 '반도체 산업이 흔들린다 : 반도체 산업 패러다임과 미래' 세미나에 참석해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영국이 증기기관을 만들어 400년간 세계를 제패했는데 나도 그런 생각으로 반도체에 투자한 것이니 앞으로 자네들이 열심히 잘 해내라."

삼성전자 사장과 정보통신부 장관을 지낸 진대제 스카이레이크인베스트먼트 대표는 30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 컨퍼런스센터에서 열린 '반도체 산업이 흔들린다 : 반도체 산업 패러다임과 미래' 세미나에 참석해 기조연설에서 고(故) 호암 이병철 삼성그룹 선대회장과 마지막 회의에서 나눈 일화를 소개하며 국내 반도체 업계가 직면한 위기를 우려했다.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반도체 생산라인.

◇ 메모리 반도체 분야, 미국·유럽·중국·일본 거센 추격

지난 1983년 이병철 회장의 이른바 '도쿄선언' 이후 삼성전자는 반도체 D램 사업에 진출했다. 현재 삼성전자는 D램과 낸드 등 메모리 반도체 분야 세계 1위 업체로 올라섰다.

메모리 반도체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메이드 인 코리아'가 세계 시장 점유율 절반 이상을 차지할 만큼 국내 기업이 강점을 지닌 분야다. 시장조사업체 디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삼성전자의 D램 세계 시장 점유율은 43.8%, 낸드는 32.6%다. SK하이닉스는 D램 28.7%, 낸드의 경우 11.3%의 점유율을 기록했다.

그래픽=이민경

하지만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계기로 세계 각국이 반도체 산업 패권을 잡기 위해 잇달아 자립 선언에 나서고 있다. 올해 메모리 반도체 슈퍼사이클(장기호황) 국면 진입 전망은 국내 기업들에 호재로 작용할 것으로 관측되지만, 경쟁 심화가 변수로 작용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권태신 전경련 부회장은 "내년 세계 반도체 시장은 우리나라 국가 예산 558조원에 버금가는 약 520조원으로 전망돼 우리 기업들에는 기회가 될 것"이라면서도 "미국과 중국 등 글로벌 강국의 반도체 산업 육성 경쟁이 격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미국 정부는 중국 반도체 굴기(몸을 일으킴)를 막기 위해 중국 최대 반도체 파운드리(수탁생산) 기업인 SMIC 등을 블랙리스트에 등재함과 동시에 자국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해 2024년까지 투자비 40% 수준을 세액공제하고, 반도체 인프라 및 연구개발(R&D)에 228억달러(약 26조원) 규모를 지원하기로 했다. 파운드리(수탁생산) 공장 건설 지원을 위해 주정부와 지방정부도 지원 사격에 나선다.

유럽 국가들도 자동차 반도체 공급 부족을 계기로 아시아 파운드리 업체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최대 500억유로(약 67조원)를 투자한다. 독일과 프랑스, 이탈리아, 네덜란드는 보조금 지급으로 반도체 투자금액의 20~40%를 지원할 계획이다.

일본은 과거 정부 주도하에 르네사스를 만들었다. 르네사스는 세계 2위 차량용 반도체 마이크로 컨트롤 유닛(MCU) 생산 기업이다. 지난 2019년 반도체 소재에 대한 수출 규제를 단행했고 향후 자국 업체 보호를 위해 추가적인 규제 및 수출 제한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이다.

중국은 미국 제재에 따라 메모리 반도체 산업, 파운드리,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사업 등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액정표시장치(LCD) 굴기를 성공한 경험을 바탕으로 많은 팹리스 회사들이 경쟁력을 확대하고 있다. 미국 제재로 현재 위축됐지만, 도약을 위해 '도광양회(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실력을 기름)'하고 있는 상태라는 분석이 나온다.

삼성전자 서초사옥

◇ "반도체, 기업 간 경쟁 아닌 국가 간 전쟁"

국내 반도체 기업들은 메모리 반도체 위상은 지키면서 비메모리(시스템) 반도체는 선두 주자를 쫓아야 하는 상황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인텔이 최근 약 20조원을 투자해 반도체 파운드리(수탁생산) 사업 재진출을 선언했다. 경쟁 업체 증가는 기존 기업들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무이사는 "우리나라는 세계 반도체 시장 점유율 20%를 기록하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면서도 "분야별로 사정은 다르다"고 했다. D램과 낸드 등 메모리 반도체는 1등이 맞지만, 시스템 반도체는 시장 점유율 4.2%로 취약하다는 게 그의 평가다.

특히 안 전무는 "중국 리스크가 줄어들기는 했지만, 경쟁국과 (메모리 반도체) 기술 격차가 줄어들고 있어 1등에 대한 리더십 우려를 갖고 있다"며 "국내 업계 종사자들이 해외로 나가게 되면 기술 격차는 더 좁혀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전문가들은 반도체 산업이 더는 기업 간 경쟁이 아닌 국가 간 경쟁으로 확대된 만큼 정부 차원의 전폭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홍대순 글로벌전략정책연구원장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가 잘하겠지 하고 정부가 손을 놓고 있으면 안 된다"며 "반도체 산업을 기업 간 경쟁 구도로 해석해서는 안 되고 국가 간 전쟁으로 생각하고 외교전으로 인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지리적 요소와 정치적 요소를 고려해 고도의 반도체 외교술이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안 전무도 "국내 반도체 산업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신규 인력이 많이 필요하다"며 "팹리스들은 중소기업이 대다수지만, 연구개발(R&D) 중심 기업으로 고급인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하지만 필요만큼 인력 공급이 되지 않고 있다"며 "국가 교육 시스템도 문제지만 고급 인재를 양성할 수 있는 시스템조차 돼 있지 않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