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출범한 'KT 미디어허브' 실패
콘텐츠 제작 시도도 못 하고 그룹에 흡수
IPTV용으로 인수한 영화·드라마 제작사 매각
KT "스튜디오지니 다르다…콘텐츠 흥행 자신"
업계 "미디어 전략 부재…업(業) 이해도 낮아"

구현모 KT 대표가 KT 스튜디오지니를 통해 콘텐츠로 돈을 벌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콘텐츠 사업을 성장엔진으로 디지코(디지털 플랫폼 기업) 도약에 박차(삼성증권)’, ‘종합 미디어 기업으로 발돋움(한국투자증권)’, ‘빅데이터를 앞세운 디즈니의 꿈(KB증권)’, ‘중소형 제작사에 열리는 기회의 판(한화투자증권)’.

지난 23일 KT가 기자간담회뿐 아니라 투자자포럼을 대대적으로 열고 콘텐츠 제작에 직접 뛰어들겠다는 구상을 밝히자 증권사들은 정체된 통신사업 성장세를 보완해줄 것이라며 열광했다. 미디어콘텐츠 사업을 그룹의 성장엔진으로 가져갈 수 있다면 기업가치도 제고되기 때문이다.

이날 구현모 KT 대표는 직접 무대에 올라 지난 1월 출범한 신설 콘텐츠 전문법인 KT 스튜디오지니를 통해 연 매출 3조원 규모, 1300만명의 가입자를 보유한 KT 미디어 플랫폼에 콘텐츠를 입혀 디지코로서 한 발 더 가까이 가겠다는 구상을 구체화했다.

KT 스튜디오지니를 통해 자체(오리지널) 콘텐츠를 제작하고, 이를 스카이티브이(skyTV) 같은 실시간 채널을 비롯해 올레 tv(인터넷TV·IPTV), 스카이라이프(위성방송) 등 KT그룹 미디어 플랫폼에서 유통해 안정적인 수익을 내고 이를 다시 콘텐츠에 투자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KT는 2023년 말까지 최소 4000억원 이상을 투입해 원천 지식재산권(IP) 1000개, 드라마 100편을 확보하겠다고 했다. 업계에서는 스튜디오지니가 이제 막 발을 뗀 만큼 초반에는 흥행 작품을 보유한 제작사와 손잡고 공동 제작, 지분 투자 등의 방식으로 콘텐츠 제작 역량을 내재화해나갈 것이라고 보고 있다.

그러나 KT의 콘텐츠 사업 도전사를 아는 미디어 업계 관계자들은 콘텐츠업(業)이 아닌 플랫폼 중심으로 미디어 사업을 운영해오던 KT가 성공할지는 두고 봐야 한다고 말한다. 단기간에 ‘콘텐츠를 보는 눈’을 따라잡기 어려운 데다 빠르게 변화하는 콘텐츠 소비 트렌드를 적기에 읽어내는 의사결정, 간섭 없는 조직 내 자유도 등이 반드시 뒷받침돼야 한다는 것이다.

투자자포럼에서도 과거 KT의 콘텐츠 사업 실패 경험이 반복되는 것 아닌지에 대한 우려가 나왔다고 한다. KT는 2012년 미디어콘텐츠 사업본부를 분사해 ‘KT 미디어허브’를 출범하며 콘텐츠 시장에 도전한 바 있다. 스튜디오지니처럼 ‘콘텐츠 사업의 컨트롤타워’가 돼 글로벌 시장까지 진출하겠다는 구상이었지만, 실제 콘텐츠 제작은 시도조차 해보지 못한 채 콘텐츠 수급만 대행하다가 2년 만에 다시 그룹으로 흡수됐던 뼈아픈 전례가 있다. 이 시기 그룹 수장이 이석채 전 회장에서 황창규 전 회장으로 넘어가면서 돈 안 되는 사업은 접는 식으로 미디어 전략이 180도 달라진 것도 주효했다.

KT는 IPTV 시장 진출(2006년)을 앞두고 안정적으로 콘텐츠를 확보하기 위해 2005년 영화 제작·배급사인 싸이더스FNH를, 2006년 드라마제작사 올리브나인을 각각 인수했다가 모두 수익을 내지 못한다는 이유로 매각하기도 했다. 콘텐츠에 따라 흥행 변수가 있고, 장기간 투자를 지속해야 하는 업의 특성상 KT그룹이 포트폴리오로 수년간 감내하긴 어렵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이었다. 이를 기점으로 KT는 콘텐츠 직접 제작보다는 투자 정도만 해 왔다. 스튜디오지니는 KT가 다시금 미디어 전략을 회귀하는 것이다.

그래픽=송윤혜, 자료=KT

KT 측은 당시는 콘텐츠를 제작했다더라도 이를 유통할 수 있는 IPTV 사업이 안정화되지 않았을 때로, 현재 상황과는 완전히 다르다고 강조하고 있다. 콘텐츠 제작에서도 "1300만명 이상을 보유한 유료방송 가입자의 실시간 시청정보 등 빅데이터를 통해 흥행 예측모델을 구축한 만큼 리스크를 최소화할 수 있다"라고 자신했다.

KT 사정을 잘 아는 미디어 업계 관계자는 "구 대표가 제시한 스튜디오지니를 필두로 한 콘텐츠 전략 모델 자체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성공할 수 있는가는 별개다"라면서 "콘텐츠 제작은 투자에서 회수, 재투자에 이르기까지 시간이 소요되고 장기적으로 끌고 가야 하기 때문에 그룹 차원에서 지속적으로 투자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대규모 투자로 양질의 콘텐츠를 빨아들이고 있는 넷플릭스 등의 독보적 인기로 시청자들의 눈높이가 높아지고, 코드커팅(유료방송 해지)이 가속화하고 있다"면서 "스튜디오지니의 콘텐츠가 국내를 넘어 해외 시청자까지 만족시킬 수 있을지는 얼마나 경쟁력 있는 글로벌 파트너와 손잡는지가 관건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KT는 장기적으로 스튜디오지니를 중간지주사화해, 스토리위즈(웹소설·웹툰 제작·유통 플랫폼), 시즌(온라인동영상서비스), 지니뮤직(음원 서비스·유통), 스카이TV(콘텐츠 제작)등 미디어 콘텐츠 계열회사들을 산하에 재편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그룹 내부적으로는 예능 콘텐츠 중심으로 제작 역량을 강화하려던 스카이TV의 자원이 스튜디오지니로 넘어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윤용필 스카이TV 대표는 신설 스튜디오지니의 공동대표도 겸임 중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현재 네이버·카카오가 웹툰시장에서 콘텐츠화할 수 있는 유명 IP를 갖고 있는 작가를 데려오기 위해 전쟁을 벌이는 등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며 "KT라는 거대 조직이 얼마나 빨리 안방 갈등을 정리하고 좋은 콘텐츠를 확보해 글로벌 시장으로 나갈 수 있을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