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5월 경남 창원시 성산구 한 아파트 주차장. 남성이 흉기를 쥐고 "죽어라" 소리를 치며 50대 여성에게 달려들었다. 여러 차례 칼에 찔린 여성은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심한 출혈로 사망했다. 피해자 A(59)씨는 이 동네에서 10년 넘게 식당을 운영하던 여주인. 가해자 B(43)씨는 이 식당이 개업할 때부터 자주 드나들던 단골손님이었다.

B씨는 피해자를 살해하기 직전 두 달간 100여통의 전화를 하고 문자도 수십통을 보낸 사실이 알려졌다. B씨가 가게에서 난동을 피우자 A씨는 경찰을 부르고 B씨가 자신을 지속적으로 괴롭혀왔다고 신고했지만, 경찰은 증거가 없다며 단순 영업방해로 보고 B씨를 풀어줬다. 경찰에서 풀려난 다음 날 B씨는 피해자를 살해했다.

상대방의 의사와 상관없이 집요하게 쫓아다니면서 괴롭히는 스토킹 범죄가 지금까지는 10만원 이하의 벌금 정도만 받았지만, 앞으로 최대 징역 5년의 처벌을 받는다. 스토킹을 범죄로 간주해 처벌할 수 있는 ‘스토킹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스토킹처벌법)’이 국회에서 논의된 지 22년 만에 지난 24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기 때문이다.

일러스트=정다운

경찰청에 따르면 2019년 한 해 스토킹 범죄 검거 건수는 583건이다. 같은 기간 5468건이 신고된 것을 감안하면 10% 정도만 처벌받는 셈이다. 그마저도 경범죄 처벌법을 적용해 10만원 이하 벌금 등 처분에 그친 것이 대부분이다. 장난 전화와 비슷한 정도의 가벼운 범죄로 본 것이다.

이번 스토킹처벌법 통과로 과거 ‘순애보’나 ‘구애’, ‘괴롭힘’ 정도로 취급됐던 스토킹 행위가 이제는 범죄로 인정된다. 스토킹 행위를 판단하는 기준은 크게 3가지다. 피해자의 의사에 반해, 정당한 이유 없이, 불안감이나 공포심을 일으켰는지 여부다. 이런 행위가 지속적으로 반복되면 스토킹 범죄가 된다.

박찬성 변호사(포항공대 인권자문위원)는 "가만히 지켜보는 경우 스토킹 범죄를 구성할 만한 상황이었냐는 점이 다툼이 될 여지가 있을 수 있다"면서 "이 때문에 지속성이나 반복성을 형벌 규정에 넣은 것"이라고 말했다.

법안에 따르면 스토킹은 상대방의 의사에 반해 정당한 이유 없이 상대방 또는 그의 동거인, 가족에 대해 접근하거나 따라다니기, 주거 등 부근에서 기다리거나 지켜보기, 주거 등 또는 그 부근에 놓여 있는 물건 등을 훼손하는 행위 등이 해당된다.

신민영 법무법인 예현 변호사는 "연예인 집 앞을 지키던 이른바 ‘사생팬’은 물론 마음에 드는 이성에게 고백하기 위해 집 앞에 기다리는 행위도 반복적으로 벌어지면 처벌이 가능해진 것"이라며 "같은 행위가 반복돼 상대방을 괴롭힌다고 인정받으면 징역형까지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스토킹 범죄 예방을 위해 경찰의 즉각적인 제지와 접근금지 조치, 구치소 유치 등의 잠정조치도 가능해진다. 지속적·반복적으로 스토킹을 하는 경우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흉기 등 위험한 물건을 이용하면 5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으로 가중 처벌된다. 스토킹처벌법은 6개월 뒤인 9월 말부터 시행된다.

스토킹 피해자 입장에서 가장 먼저 체감할 수 있는 변화는 경찰이 신고를 받은 직후에 즉각적으로 개입할 수 있게 됐다는 점이다. 정춘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스토킹을 신고하면 기존에는 경찰이 피해자를 즉각적으로 보호할 법적 근거가 없었다. 법 통과 이후에는 긴급조치와 잠정조치를 통해 신속한 개입이 가능해졌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고 했다.

경찰은 스토킹 범죄 발생 우려가 있거나 긴급 조치가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직권으로 스토킹 피해자나 주거지 등으로부터 100미터 이내 접근 금지 등의 긴급응급조치를 우선 취하고 지방법원 판사에 사후 승인을 받을 수 있다.

더불어민주당 임호선(왼쪽부터), 황운하, 정춘숙, 박주민 의원이 15일 국회 소통관에서 스토킹처벌법의 3월 국회 처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오랜 시간 기다려온 법이지만 한계점도 지적된다. 스토킹 조건이 지나치게 까다롭다는 것이다. 여성단체 ‘한국여성의전화’는 스토킹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에 대해 "스토킹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한 누더기법"이라며 "22년의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는 사실이 개탄스럽다"고 밝혔다.

이 단체는 스토킹 범죄 정의 자체가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여성의전화는 "법률안에 따르면 스토킹 행위가 지속적 또는 반복적으로 행해질 때만 범죄로 인정받을 수 있다"면서 "단 한 번의 행위만으로도 피해자는 공포나 불안을 느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공포와 불안을 느껴야만 피해로 인정하는 것은 피해자다움에 대한 강요"라고 지적했다.

반의사불벌 조항의 존속, 피해자 보호 명령의 부재, 피해자 일상회복 지원 제도의 미비 등도 법 조항의 한계로 꼽았다.

스토킹 범죄 처벌법을 발의한 장혜영 정의당 의원도 "분명 몇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 성폭력 처벌법상 처벌이 가능하다는 이유만으로 카메라 등 디지털 촬영을 이용한 스토킹 행위를 법안에서 규정하지 못한 점, 피해자 보호 명령 및 신변안전 조치에 대한 규정이 명시되지 않은 점 등은 반드시 향후 보완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