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이 사건' 신고 받고 3번 뭉갠 경찰
국회 입법조사처 '아동학대' 보고서로 유사사례 경고
경찰청장, 대국민사과하고 소관 양천서장 대기발령

"아동에게 상흔이 발견돼 즉각 조치가 필요했음에도 경찰 통보가 늦어지는 경우가 있다. 지구대가 먼저 가서 아이 상흔 등에 대한 사진만 먼저 촬영하고 부모가 조금 호의적이니까 일단 아이를 가정으로 돌려보낸다."

"경찰이 초동현장 조사에서 아동학대사건을 단순 가정 폭력사건으로 접수하거나 소동으로 인지해 훈방에 그치는 경우 통보 누락이 발생하는 경우도 있다."(2020년 8월 13일 국회입법조사처 보고서)

생후 16개월 입양아가 양부모의 학대로 사망한 이른바 '정인이 사건'으로 우리 사회 아동학대 안전망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쏟아지는 가운데, 국회 입법조사처는 이미 지난해 8월 '아동학대 신고를 받은 경찰이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면서 사건 처리에 미온적으로 대응하는 사례가 빈번하다'는 보고서를 발표한 것으로 7일 나타났다.

경찰은 작년 정인이가 다니던 어린이집, 소아과 등에서 여러 차례 학대 의심 신고를 했지만 세 차례 묵살했다. 아동학대 사건에 대한 경찰의 안일한 대처가 '정인이 사건'이 발생하기 이전에도 만연했다는 뜻이다. 이 사건을 두고 김창룡 경찰청장은 전날(6일) "최고책임자로서 깊은 책임감을 느낀다"며 사과했고, 담당 기관인 서울양천서장을 대기발령 조치했다.

조선DB

◇ 예고된 인재(人災)..."경찰관, 아동학대 '훈육' 인식 다수"

국회 입법조사처는 작년 8월 13일 아동보육기관 실무자 현장 목소리를 담은 보고서 '아동학대 대응체계의 과제와 개선방향'를 통해 "(아동보호전문기관이) 경찰을 통한 신고접수와 관련해 지구대 경찰의 아동학대에 대한 인식 부족, 정보 오류나 미파악으로 인한 곤란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지적했다.

아동보호전문기관 실무자들은 112 신고 접수 후 1차로 출동하는 경찰관들이 아동학대를 아직도 훈육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고 토로했다. A 사례관리팀장은 보고서에서 "아동학대를 아동의 문제행동에 대한 훈육으로 인식해 초동조치가 미흡한 경우가 있다"고 했고, B 관장은 "지구대의 인식이나 민감성이 낮다 보니 (사건을) 자체 종료해 버리기도 한다"고 했다.

정보 오류 등의 사례도 빈번했다. C 현장조사팀장은 "경찰이 정보를 준 자료에 연락처 오류나 행위자 이름이 완전히 바뀐 경우도 있다"고 했고, D 현장조사팀장은 "(아동학대) 행위자와 신고자의 연락처가 교차돼 기록된 경우도 있었다"고 했다.

또 고소·고발에도 수사, 기소, 처분, 처벌 등이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C 현장조사팀장은 "처벌은 거의 없다. 성학대나 신체적 폭력 같이 위험수위가 높고, 살해나 중상까지 갈 정도면 처벌까지 간다"며 "그렇지 않고 가정폭력이나 대부분의 학대는 상담이나
교육명령 같은 처분형태로 마무리 된다"고 했다. B 관장은 "재판까지 가더라도 대부분의 판사가 '반성하니까 불처분합니다'고 한 줄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 경찰 "책임 과다해" "민원 빈번" 변명 일관

아동학대 사건에 대한 경찰의 안일한 대처는 정인이 사건에서 반복됐다. 정인양에 대한 학대 의심 신고는 지난해 세 차례 경찰에 접수됐다. 작년 5월에는 어린이집 교사, 6월에는 가해자의 지인, 9월에는 소아과 의사가 정인양의 체중 감소와 상처 등을 이유로 신고했지만 경찰은 구체적인 학대 물증이 나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건을 무혐의 종결했다.

그런데 경찰은 전날 정인이 사건과 관련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 제출한 '양천 아동학대 사망 사건 관련 법·제도적 필요 조치 검토'에서 정인이 사건의 원인을 '과다한 책임·빈번한 민원·제도적 장애요소'라고 꼽았다.

경찰은 "학대 대응 업무 및 책임은 과중하나 빈번한 민원 제기에도 민원과 책임을 현장근무자 개인이 감당한다. 신고현장 외 경우는 피해여부 등 확인이 곤란하다"고 했다. 또 아동학대 관련 소관부처인 보건복지부와 경찰청 간 업무가 혼재돼 있다며 공동 소관이 필요하다고 했다. 경찰청이 책임의 주체가 아니었다며 변명으로 일관한 것이다.

박선권 보건복지여성팀 입법조사관연구관은 "현행 아동학대 대응체계에서는 사건 발생시 아동학대 현장에 지구대 경찰이 가장 먼저 출동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라며 "경찰의 아동학대 인식 및 사건 조사 교육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어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을 개정해 교육을 확대하고 아동학대에 대한 인식을 공유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경찰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 제출한 '양천 아동학대 사망 사건 관련 법·제도적 필요 조치 검토' 보고서

◇ 사흘새 11개 법안 쏟아낸 정치권 '뒷북 대응' 눈살

정치권의 '뒷북 대응'도 비판을 받고 있다. 정인이 사건이 지난 2일 방송 보도를 통해 알려진 후 3일동안 발의된 법안은 총 11개다. 국민의힘 김용판·김병욱·김정재·김성원 의원과 더불어민주당 강훈식·노웅래 의원이 각각 법안을 냈다. 노웅래 의원은 아동 학대 치사에 대한 처벌 수준을 현행 5년에서 2배 높이고 아동 학대범의 신상을 공개하는 '아동학대무관용법'을 발의했고, 강훈식 의원은 특정강력범죄에 아동학대범죄를 추가하는 내용을 법안에 담았다.

여야가 부랴부랴 일명 '정인이 방지법'을 오는 8일 열리는 국회 본회의에서 합의 처리하기로 한 가운데 국회에 계류된 90여건의 관련 법안과 새로 발의된 법안들의 졸속 심사 논란이 불거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치권 관계자는 "이틀 내에 법안을 제대로 심사할 수 있을 지 의문"이라며 "보여주기식 법안 처리가 돼서는 안된다"고 했다.

6일 오전 서울 양천구 양천경찰서 앞에서 한 시민이 양부모 학대로 숨진 정인 양 관련 사건 초동 대처 미흡을 규탄하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