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밖에 없다"... 정부, 사상 첫 '반도체 전망' 내놔
올해 반도체 수출 세계 2위·투자 1위… 가격·환율은 변수

정부가 올해 반도체 수출이 전년 대비 10.2% 증가하면서, 사상 두번째로 수출액 1000억 달러를 돌파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간 수출입 통계에서 반도체 수출 실적을 언급한 적은 있지만, 이번처럼 반도체만 별도로 통계를 낸 것은 처음이다. 수출 전망을 위해 무역협회와 산업은행, 산업연구원 등 산업·수출 관련 기관들이 총출동했다.

삼성전자 연구원들이 메모리 반도체 제조에 필요한 웨이퍼(원판)를 검사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의 위기 극복 속에 반도체 선방과 올해 경제 반등을 위해 반도체 수출이 중요하다는 정부의 절실함이 반영된 결과다. 코로나19로 비대면 경제가 활성화되고 재택근무로 반도체가 수요가 급증하자, 지난해 전체 수출에서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은 20%에 육박했다. 반도체를 제외하고는 경기 회복을 이끌 수 있는 뚜렷한 주력산업이 부재하다는 한국 경제의 단면을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다만 지난 2분기 고점을 찍은 뒤, 하락세를 보이는 반도체 가격과 원화 강세 환율 상황은 올해 반도체 수출액과 수익성에 변수가 될 전망이다. 또 기존 D램 중심이었던 반도체 산업을 낸드플래시를 비롯해, 시스템반도체·이미지센서·통신칩, 파운드리 사업 등 고부가가치 영역으로 재편하는 것도 숙제다.

◇올해 반도체 수출 세계 2위·투자 1위… 빅사이클 온다

산업통상자원부는 5일 올해 반도체 수출액이 1075억 달러에서 1110억달러(기준 전망 1093억 달러)로 지난해(992억달러) 대비 10.2%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코로나19 사태로 서버, 5G(5세대), PC·스마트폰, 모바일 등의 분야에서 반도체 수요가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관별로는 무역협회가 5.1%, 산업은행 9.4%, 산업연구원이 13.1% 증가를 전망했다.

반도체 수출액이 1000억달러를 돌파한 것은, 반도체 슈퍼사이클 이었던 2018년(1267억 달러) 이후 역대 두번째다. 이를 통해 한국은 미국에 이어, 반도체 수출국 2위로 올라설 전망이다.

조익노 산업부 반도체과장은 "반도체 시장의 전망을 별도로 내놓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세계 권위있는 연구기관의 데이터와 자체 분석을 통해 전망치를 내놨다"고 했다.

반도체 산업은 지난해 코로나19에 따른 글로벌 경기침체 상황에서, 수출회복세를 주도하면서 우리 경제의 버팀목 역할을 해왔다.

실제 코로나19와 함께 화웨이 제재에도 지난해 반도체 수출은 전년(939억 달러) 대비 5.6% 증가한 992억 달러를 기록했다. 반도체 수출은 지난해 4월 코로나19 영향으로 0% 감소한 뒤, 7월 들어서 5.6% 증가세로 전환됐다. 이후 8월 2.8%→9월 11.8%→10월 10.4%→11월 16.4%→12월 30% 등 6개월 연속 증가했다.

반도체 시장조사기관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노트북 출하량은 1억8663만대로 전년 대비 14.4% 급증했다. 사실상 사양산업으로 평가받던 PC·노트북 시장이 코로나19에 따른 재택근무,온라인 교육 등에 힘입어 다시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올해 반도체 산업의 빅사이클이 올 것으로 내다봤다. 올해 세계 경제가 5% 내외, 세계교역이 7.2%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세계 반도체 시장이 이를 뛰어넘는 성장률을 기록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협회 등에서 내부적으로 나오는 전망말고 정부가 직접 반도체 시장 전망을 발표한 것은 처음 보는 것 같다"며 "그만큼 코로나19 시대, 반도체가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고 경기 반등을 위해서는 반도체가 중요하다는 위기의식 속에 통계가 나온 것 같다"고 했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Omdia), 세계반도체시장통계기구(WSTS), 가트너는 올해 글로벌 반도체 시장이 전년 대비 8~10% 증가하고, 메모리 시장은 13~20%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5G 시장 확대와 비대면 경제 확산 지속 등으로 모바일(40%), 서버(35%), PC(13%) 등 전방산업에서의 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예측했다.

올해 투자도 반도체 시황 개선에 따라 전년 대비 4% 증가한 720억 달러를 기록할 전망이다.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에 따르면 세계 반도체 설비투자액은 올해 4.1%, 내년에는 6.4% 증가할 것으로 전망됐다. 이를 통해 우리나라가 2017년~2018년 반도체 슈퍼사이클 이후 2019년에 중국·대만에 빼앗겼던 설비투자 1위 자리를 2년 만에 탈환할 것으로 기대된다.

◇바닥 찍은 D램 가격 반등하나… 환율도 변수

다만 지난 2분기 고점을 찍은 뒤, 하락세를 보이는 반도체 가격과 원화 강세 환율 상황은 수출액과 수익성에 변수가 될 전망이다. 또 기존 메모리 반도체 의존도를 낮추고 비메모리 반도체의 성과도 중요해질 전망이다.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PC용 D램(DDR4 8Gb) 1개당 가격은 지난해 6월 3.31달러를 기록한 뒤, 지난달에는 2.85달러까지 떨어졌다. 6개월 사이에 가격이 13.9%나 하락한 셈이다. 지난 2019년 12월 2.81달러였던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1년치 상승분을 반납한 상황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수출입물가지수는 91.96으로 전월대비 0.8% 하락했다. 지난 8월부터 넉 달 째 떨어진 수출물가는 1984년 12월(91.09) 이후 35년 11개월 만에 최저치를 나타냈다. 전년동월대비로는 4.9% 내려가면서 18개월 연속 하락세를 이어갔다. 이는 D램(-2.4%), 플래시메모리(-4.7%) 등 반도체 가격하락과 함께, 원·달러 환율이 급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료=산업부

주로 해외 공장에서 생산하는 가전·휴대폰 등 세트(완성품)부문에 비해 국내 생산이 많은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등 부품은 환율 변동에 민감하다. 지난 4일 원·달러 환율은 오후 한때 1080.3원을 기록한 뒤, 1082원을 회복했다. 장중 환율이 1080.3원을 기록한 것은 2018년 6월 12일(1072.70원) 이후 약 2년 7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지난 9월 평균 환율(1178.80원)과 비교하면 8.4%나 급락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올해 1분기부터 D램의 공급에 비해, 수요가 급증하면서 가격이 상승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작년 4분기까지 D램은 수요에 비해 공급이 1.2% 많았다. 하지만 올해 1분기(-0.9%)부터 2분기(-1.3%)→3분기(-3.0%)→4분기(-3.1%)에는 공급이 부족해질 전망이다.

산업부는 반도체 산업의 재편을 통해 체질 개선을 병행하겠다는 방침이다. 지난해 시스템반도체 수출은 303억 달러로 역대 최대치 기록했다. 연간 기준으로 철강·석유제품을 넘어서 5위(작년 7위) 수출품목으로 도약했다. 올해도 시스템반도체는 파운드리 위탁 수요 증가 등 5.5%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태희 성균관대 반도체시스템공학과 교수는 "국내 반도체 업계가 D램과 낸드 등 메모리 반도체 중심이지만, 이미 70% 넘는 점유율로서 추가적인 성장동력이 필요한 상황"이라며 "상대적으로 비메모리 반도체 분야는 성장한 여력이 있는 시장이다. 삼성전자는 파운드리와 이미지센서 등 고부가가치 반도체 시장에서 올해 상당한 진전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며, 하이닉스도 인텔 낸드 부분 인수로 중장기적으로 컨트롤러 분야의 경쟁력 강화가 기대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