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디지털 위안의 첫 온라인 결제가 이뤄졌다. 위안화 패권을 향한 중국 정부의 야심찬 계획이 차곡차곡 진행되는 모습이다.

14일 중국 전자상거래업체 징둥닷컴에 따르면, 디지털 위안의 첫 온라인 결제는 지난 11일 오후 8시 2초에 이뤄졌다. 징둥닷컴은 이날 오후 8시 정각에 디지털 위안 결제를 허용했다.

주인공은 장쑤성 쑤저우(苏州)시에 거주하는 1990년대생으로 전해졌다. 징둥닷컴의 핀테크 자회사 징둥수커(JDD)는 해당 이용자가 주문부터 결제까지 0.5초 정도 소요했다며 "이는 기존 지불 방식과 비슷한 수준의 속도"라고 부연했다.

11일 오후 8시부터 12일 오후 8시까지 24시간 동안 디지털 위안으로 결제된 건수는 2만여건에 달했다. 단일 건수 중에는 금액이 1만위안(약 167만원)을 웃도는 상품도 있었다.

이용자는 남성보다 여성이 많았다. 대부분 연령대는 1980년대~1990년대생(60%)으로 집계됐다. 징둥수커는 "거래 시작 1시간 이내에 결제를 마친 경우가 많았다"며 "처음 사용해보는 디지털 화폐에 대한 호기심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중국의 디지털 위안.

중국 정부와 인민은행은 최근 쑤저우시에서 디지털 위안 시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추첨을 통해 선정된 시민 10만명에 각각 200위안(약 3만3000원)씩 총 2000위안의 디지털 위안을 나눠주고, 백화점·슈퍼마켓 등 1만여개 지정 상점에서 자유롭게 쓰게한 것이다.

이번 쑤저우시 사업은 사용처를 오프라인 매장에서 온라인 매장으로 확대해 갖는 의미가 남다르다. 인터넷이 연결되지 않은 오프라인 상황에서의 거래도 이곳에서 처음으로 실험한다.

중국 당국은 지난 10월 광둥성 선전(深圳)시 시민 5만명에게 1000만 디지털 위안을 나눠주며 시범 사업에 들어갔다. 앞서 슝안(雄安)신구, 쓰촨성 청두(成都)시 등에서 비공개로 실험하다가 올해 처음 전면에 나선 것이다.

당시 선전 시민 5만명은 일주일 간 총 2289개 오프라인 가맹점에서 총 880만위안(약 14억원)을 썼다. 거래건수는 4만7573건을 기록했다.

업계는 징둥닷컴에서의 거래를 시작으로 디지털 위안의 도입이 급류를 탈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 온라인 시장 규모가 워낙 큰 데다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변동성이 심한 암호화폐보다 실제 화폐를 선호하는 기류까지 생겼기 때문이다.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디지털 위안은 국가가 가치를 보장해 여타 가상화폐와는 차이가 있다.

골드만삭스는 10년 이내 디지털 위안 이용자수가 10억명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이 기간 발행액은 1조6000억위안(약 265조6000억원), 연간 결제금액은 19조위안(약 3153조8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했다. 전체 소비금액 중에는 디지털 위안이 15%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20년 1월 14일 광둥성 선전시에서 열린 선전경제특구 40주년 경축 행사에서 참석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중국 정부는 향후 베이징·톈진·상하이·광저우·충칭 등 주요 대도시를 포함한 28개 도시에 디지털 위안을 도입할 계획이다. 오는 2022년 베이징 동계 올림픽 이전 상용화를 목표로 홍콩 금융관리국과도 실험 방안을 논의 중이다.

보급 파트너로는 공상·중국·건설은행 등 국유은행과 차이나모바일 등 3대 통신사를 동원할 예정이다. 중국 1위 전자상거래업체 알리바바, IT 대기업 텐센트 등도 물망에 올랐다.

중국이 이처럼 디지털 위안 도입에 속도를 내는 가장 큰 이유로는 자금 흐름 관리가 쉽다는 점이 꼽힌다. 이와 관련, CNN비즈니스는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디지털 화폐는 현금에 비해 추적과 통제가 쉽기 때문에 돈세탁과 탈세를 막을 수 있다"며 "통화정책 효율을 높이고 금융시스템에서 민간 기술회사의 과도한 영향력 확대를 억제하는 효과도 있다"고 전했다.

미국 달러에 도전하는 의미도 있다. 디지털 위안은 미국이 구축한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를 우회해 결제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경우, 중국은 달러 지배력을 근간으로 한 미국의 SWIFT 퇴출 위협에 영향을 받지 않게 된다.

중국 정부가 일대일로(一帶一路) 참여국들을 대상으로 디지털 위안 도입을 추진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5G 기술 발전과 맞물려 디지털 위안의 위상이 높아지면 달러의 위상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다만 중국 정부가 기대하는 만큼의 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 중국 공산당이 금융시스템을 통제하는 이상 디지털 위안의 국제화는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미국이 중국에게 쉽게 주도권을 넘길 리도 없다. 실제로 미 연방준비제도(Fed)는 디지털 위안 발행에 대응해 달러의 디지털화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힌 상태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디지털 화폐가 미·중 갈등의 또다른 장(場)이 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로런스 서머스 전(前) 미 재무장관은 "중국의 디지털 위안이 미국 달러의 위상을 위협할 경우, 양국 간 디지털 화폐 전쟁이 벌어질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