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불법 추심 행위를 차단하기 위해 무료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채무자 대리인’ 제도를 시행한 지 10개월이 흐른 가운데, 최근 들어 이용 건수가 급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3일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2월 채무자 대리인 제도 시행 이후 지난 11월까지 10개월간 총 530건의 지원이 이뤄졌다. 11월 한 달간 채무자 대리인 제도 실적은 173건이었는데, 시행 초반 10여건 안팎에 불과했던 것과 비교하면 큰 폭으로 증가한 셈이다. 채무자 대리인 제도 실적은 ▲3월 6건 ▲4월 18건 ▲5월 37건 ▲6월 17건 등 상반기에 매달 소폭 증가하다가 ▲7월 41건 ▲8월 54건 ▲9월 98건 ▲10월 121건 ▲11월 173건 등 하반기부터 급증했다.

2018년 tvN에서 방영된 드라마 ‘나의 아저씨’ 중 한 장면. 극 중 ‘지안’(오른쪽)은 사채업자 ‘광일’에게 매일 빚 독촉과 함께 폭력·협박에 시달린다. 채무자에 대한 직접적인 폭행과 협박은 불법 추심에 해당한다.

현행법은 불법 추심으로 인한 피해나 우려가 있는 경우 변호사를 선임하면 그 이후부턴 추심업자가 변호사를 통해서만 연락 등 추심행위를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기존에 채무자는 추심 과정을 대리할 변호사를 선임하기 위해서 30만원에 이르는 가격을 지불해야 했다. 소송까지 이르면 150만~200만원이 들었다. 법률구조공단의 지원을 받는다고 해도 시중 선임 가격의 20~30% 선을 지불해야 했다. 이는 빚 갚기에도 급급한 채무자에게는 부담스러운 가격이어서, 추심 과정에서 법적 조력을 받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문제가 있었다.

금융위는 이를 개선해 올해 초부터 채무자에게 무료로 추심 변호사를 지원하는 채무자 대리인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채무자 대리인은 연 24% 금리 초과분 대출에 대한 부당이득 반환청구, 불법 추심 등으로 입은 피해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 등의 소송을 대리하는 역할도 한다. 금융위가 법률구조공단에 추심 대리 건당 20만원, 소송 건당 38만원 등의 비용을 지원해 채무자는 한푼도 들이지 않고 변호인을 선임할 수 있게 됐다.

그래픽=박길우

금융위는 지난 4월부터 모바일과 인터넷으로도 채무자 대리인 신청을 할 수 있도록 플랫폼을 구축했다. 또 지난 8월에는 법률구조공단 관련 규정을 개선해 ‘채무자 대리인이 선임됐으니 변호인에게만 추심 행위를 할 수 있다’는 내용의 통지문을 서면뿐만 아니라 ‘알림톡(카카오톡 메시지)’을 통해서도 채권자가 받아볼 수 있도록 했다.

여전히 채권추심법 위반 사례가 횡행하고 있다는 점 역시 채무자 대리인 제도의 이용률을 끌어올린 것으로 보인다. 대부업체 산와머니를 운영하는 산와대부는 최근 채권추심법 위반 등으로 금융감독원으로부터 과태료 3700만원과 일부 영업정지(신규 연체 채권에 대한 추심 업무 정지) 3개월 처분을 받았다. 산와머니는 2016년부터 지난해까지 5명의 채무자로부터 채권 추심에 응하기 위한 대리인 선임 통지서를 수령한 후에도, 채무자를 방문하거나 해당 채무자에게 전화를 비롯해 우편과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최근 대부업계는 최고금리 20% 인하안이 발표된 이후 신규 대출을 일으키는 대신 적극적인 추심 행위에 나서고 있다. 당국 감시망에서 벗어나 있는 불법사금융 영역까지 확장하면 불법 추심 피해자는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불법 추심 피해자는 금감원 홈페이지 불법금융신고센터 ‘채무자 대리인 및 소송변호사 무료지원 신청’에서 온라인으로 서비스를 신청할 수 있다. 인터넷 포털에서 ‘불법사금융’을 검색해도 신청 화면이 연결된다. 금융위 관계자는 "해당 사업을 채무자들에게 적극적으로 알리는 일이 더욱 필요하다고 본다"며 "내년에는 채무자 대리인 제도 홍보비로 1억5000만원의 예산을 책정해 활용할 예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