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T-아마존, '지분 참여 약정' 통한 전략적 제휴 체결
유통 공룡 아마존의 한국 시장 진출 신호탄 되나

최태원 SK 회장과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최고경영자(CEO)가 손을 잡았다. 세계 최대 e커머스(전자상거래) 업체 아마존이 11번가를 운영하는 SK텔레콤(SKT)과 전략적 제휴를 맺고 국내 이커머스 시장 도전에 나선 것이다. SK와 아마존의 동맹전선으로 국내 유통업계 '총성 없는 전쟁'의 판도가 달라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SKT은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기업인 아마존과 이커머스 협력을 추진한다고 16일 밝혔다. 지분 참여 약정 방식으로, 아마존은 11번가의 기업공개(IPO) 등 한국 시장에서의 사업 성과에 따라 일정 조건이 충족되는 경우 신주인수권리를 부여받는다. 이번 협력으로 국내 소비자들은 이르면 내년부터 11번가에서 아마존 상품을 구매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11번가와 아마존은 "향후 서비스가 준비되는 대로 구체적인 서비스 내용을 밝힐 예정"이라고 했다.

아마존과 SK가 손을 잡았다는 소식에 국내 유통가에는 긴장감이 흐르고 있다. 공격적인 투자로 온라인 시장을 빠르게 장악해가던 쿠팡과 네이버는 아마존과의 건곤일척 경쟁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대규모 투자로 통합 이커머스 사업을 강화하고 있는 신세계와 롯데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지난달 30일 경북 안동시에서 열린 ‘21세기 인문가치포럼’에 연사로 참석해 강연하고 있다.

◇이커머스 만년 3위였던 11번가, '아마존' 날개 달다

쿠팡·이베이코리아와 함께 국내 3대 이커머스 업체로 자리 잡았지만, 추가 성장 동력이 부족했던 11번가는 아마존과 손을 잡으면서 쿠팡과 네이버의 공격적인 투자에 맞설 수 있게 됐다.

지난해 기준 한국 온라인 시장 점유율은 네이버쇼핑이 12%로 가장 많았다. 이어 쿠팡 10%, 이베이코리아(G마켓·옥션) 10%, 11번가 6%, 위메프 5%, 티몬 3% 순이었다. 미국과 일본·유럽은 아마존이, 중국은 알리바바가 시장을 장악한 것과 달리 국내 이커머스 시장은 춘추전국시대나 다름이 없었다.

하지만 아마존이 11번가와 손을 잡고 국내에 진출하면서 지각 변동이 거세게 일어날 것으로 보인다. 업계에서는 11번가가 아마존 해외 직구 서비스와 풀필먼트 능력 차별화에 성공한다면 이베이코리아를 넘어 쿠팡을 위협할 정도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11번가가 제공할 아마존 직구 서비스 방식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업계에서는 11번가가 아마존의 인기 직구상품을 국내 물류센터에 보관하고 있다가 국내 고객이 주문하면 즉각 배송하는 형태로 배송시간을 줄이는 방안을 추진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경우 11번가를 통해 아마존 제품을 직접 구매하는 방식으로 언어나 배송 시간, 관세, 환불 및 사후 처리 등 기존 직구의 불편함을 상당부분 해소할 수 있다.

11번가를 통한 국내 셀러의 아마존 판매도 가능해질 전망이다. SKT 관계자는 "11번가를 '글로벌 유통허브 플랫폼'으로 성장시킬 계획"이라며 "아마존 등 글로벌 이커머스 기업들과 협력을 확대해 고객들에게 더 나은 쇼핑 경험을 제공하고 국내 셀러들이 해외 진출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겠다"고 했다.

정보통신기술(ICT) 전분야에 걸친 SKT와 아마존의 협력 가능성도 주목된다. 박정호 SK텔레콤 사장은 올해 초 "본격화하는 글로벌 인공지능(AI) 경쟁 속에서 국내외 ICT 기업과 힘을 합치는 '초협력'을 이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클라우드 분야 최강자인 아마존웹서비스(AWS)와 SK텔레콤의 5G 등 유무선 통신서비스 역량, SKC&C의 IT서비스 등을 결합해 기업용 AI, 클라우드 시장을 공략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최고경영자(CEO).

◇설상가상 유통가… 생존경쟁 치열한데, '아마존 인베이젼(침공)'까지

춘추전국시대를 맞은 국내 유통업계에선 합종연횡 움직임이 활발하다. CJ그룹은 네이버와 포괄적 사업 제휴를 맺었고, GS리테일은 온라인에 특화된 계열사 GS홈쇼핑을 흡수 합병하기로 했다. 전통적인 유통 강자 롯데는 계열사별로 보유하고 있던 온라인 쇼핑몰을 한 데 모아 '롯데온'을 구축했다. 신세계도 롯데에 앞서 각 계열사의 쇼핑을 'SSG닷컴'으로 통합했다. 오프라인을 중심으로 사업을 하던 유통 기업들이 디지털 전환 과정에서 취한 각각의 생존 전략이다.

아마존과 SK의 동맹으로 그동안 변수 상태였던 '아마존의 한국 진출'은 상수가 됐다. 유통가에서는 아마존과 SK의 연합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주목하고 있다. 다만, 이날 발표한 '아마존 상품 국내 직구 대행' 수준에서 협력이 끝날 경우, 큰 시너지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게 유통업계 관계자들의 평가다.

이커머스 업체 한 관계자는 "이날 발표한 내용만 보면 아마존이 11번가에 셀러로 입점하는 수준에 불과하다"며 "직구 대행 사이트 등 중소업체들이 타격을 입고, 11번가의 매출은 오르겠지만 이커머스 시장 판도를 바꾸는 수준에는 미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유통업체 관계자도 "아마존의 경쟁력은 제품보다 물류에 있다"면서 "11번가가 아마존과 함께 선보일 서비스가 어떤 시너지를 낼 수 있을지가 관건"이라고 했다.

일각에선 아마존에서 판매하는 상품을 대신 판매해 수익을 창출하는 '리테일 레거시(자산·유산)'적 관점이 아닌, 아마존의 선진 물류 서비스를 국내 소비자들이 경험할 수 있도록 해 쇼핑 플랫폼으로서 11번가의 가치를 올리는 방향으로 가야 진정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이에 대해 11번가 관계자는 "아마존과 함께 제공할 서비스의 내용에 대해선 계속 내부적으로 논의하고 있다"면서 "협력 수준이 어느 레벨이 될지는 아직 미지수이지만, 국내 소비자들이 가장 편리하게 아마존 쇼핑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장기적 관점에서 아마존의 국내 행보에도 이목이 쏠린다. 한국 시장 진출을 준비해온 아마존은 SK와의 전략적 제휴로 국내 시장 진입이 수월해졌다. 현재는 아마존이 11번가와의 제휴 관계에 머무를지, 협력 관계와 별도로 독자 진출을 모색할지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11번가 상장 과정에서 아마존이 투자 비중을 높여 11번가를 아마존으로 '리브랜딩'할 가능성도 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11번가를 통한 간접 진출 이후 아마존의 한국 시장 진입 속도가 빨라질 것"이라면서 "롯데와 신세계 등 기존 유통기업은 물론 네이버와 쿠팡 등 IT 기반 이커머스 업체 모두 치열한 생존 경쟁에 내몰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어 "아마존이 11번가와 손을 잡은 것은 시장 진입 초기 안전장치를 둔 것"이라면서 "월마트와 까르푸의 한국 시장 진출 실패를 타산지석 삼아 직접 진출을 무리하게 추진하기 보다는 다소 우회하더라도 연착륙하는 방안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