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방사광가속기 분석결과, 신라시대 주사위 '주령구'에서 해답 찾아
분자 자기조립 특성 이용, 항체보다 큰 5.3nm 크기 육팔면체 그릇 합성

연구팀이 합성한 세계 최대 크기의 분자 그릇. 5.3nm 크기의 그릇 안에 4.3nm 크기의 물질을 담은 모습.

국내 연구진이 세계에서 가장 큰 ‘분자 그릇’을 만들었다. 분자 그릇은 속이 텅 빈 구조를 가진 분자로 약물 운반, 저장, 촉매 등으로 활용된다.

기초과학연구원(IBS)은 김기문 복잡계자기조립연구단장 연구팀이 분자의 자기조립 특성을 이용해 5.3나노미터(nm·10억분의 1미터) 크기, 육팔면체 모양의 분자 그릇을 만들었다고 2일 밝혔다.

기존의 분자 그릇 대부분은 크기가 2nm 이하였다. 이 크기로는 전달할 수 있는 약물 종류에 한계가 있다. 가령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등 병원균이 가진 항원을 잡는 항체의 크기는 5nm이다.

연구팀은 신라시대 주사위인 주령구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주령구는 육각형과 팔각형으로 이뤄진 육팔면체 모양을 가졌다. 연구팀은 포항 방사광가속기를 통해 주령구 모양의 분자가 거대한 그릇이 될 수 있음을 알아냈다. 이에 분자들이 외부의 조작없이 상호작용에 의해 특정 구조를 형성하는 자기조립 특성을 이용해, 사각형 분자 12개와 굽은 막대기형 분자 24개를 주령구 모양으로 조립했다.

연구팀은 주령구 분자 그릇을 이용해 4nm 길이를 가진 막대기형 분자를 옮기는 데 성공, 약물 운반체로서의 가능성을 입증했다. 연구팀은 "지금까지 이 정도 크기(4nm)의 분자를 그릇에 담는 시도는 없었다"고 설명했다.

IBS는 지난 2015년 3nm 크기의 박스 모양 분자 그릇을 개발한 바 있다. 이번 주령구 분자 그릇은 지름이 이보다 1.8배 커진 것이다.

김 단장은 "분자 주령구를 생물학적으로 응용하기 위한 안정성 확보 연구를 추가로 진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또 5.3nm보다 더 크고 구조가 복잡한 분자 그릇 합성도 목표하고 있다.

연구성과는 국제 학술지 켐(Chem)에 지난달 28일 게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