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석유 기업인 사우디아라비아의 아람코를 비롯한 글로벌 석유 공룡들이 그린뉴딜을 추진하는 국내 기업과 손을 잡고 있다. 석유시대는 막을 내렸다는 판단하에 생존 전략을 새로 짜면서 수소·태양력·풍력 등 대체에너지 분야의 미래 먹거리를 찾아 나선 것이다. 우리나라 또한 대체에너지를 포함한 그린뉴딜에 적극적으로 임하는 편이라 글로벌 기업들이 한국에서의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 한다고 볼 수 있다.

컨설팅기업 DNV GL에 따르면, 수소 분야에 투자하려는 석유·가스업체 비율은 기존 20%에서 올해 들어서는 42%로 두배 늘었다. 태양열과 풍력 발전에 투자하려는 기업은 각각 작년 대비 95%, 83% 증가했다.

사우디아라비아 국영 석유회사 아람코는 최근 재생에너지 사업 비중을 확대하고 ‘종합 에너지 석유화학사’로 거듭난다는 목표를 밝혔다. 코로나 팬데믹에 따른 전세계적 이동제한 조치로 석유 제품 수요가 크게 감소했고, 여기에 공급 과잉으로 낮은 정제 마진이 장기간 지속되자 체질 개선을 선언한 셈이다.

향후 석유 수요가 코로나 발생 이전 수준으로 다시 돌아가지 못하고 규모와 속도의 차이만 있을 뿐 감소할 것이라고 BP는 전망했다.

아람코는 차세대 에너지원으로 주목받는 수소 사업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면서 현대차(005380)에 주목했다. 아람코 실권을 쥐고 있는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에너지 장관은 지난해 6월 방한해 현대차와 사우디아라비아 내 수소차 보급 확대를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이에 따라 지난달 현대차가 만든 수소전기차 넥쏘와 수소전기버스가 사우디아라비아에 처음으로 진출했다. 현대차의 친환경 차가 중동 수출길에 오른 건 이번이 처음으로, 수소차는 모두 아람코로 인도돼 현지 실증 사업에 활용될 예정이다.

이밖에도 아람코는 한국과학기술연구원(KAIST)에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기 위한 혁신 기술 연구 개발 비용을 투자하며 협력하고 있다. 국내 최대 규모로 시작한 이산화탄소 연구센터에는 지난해까지 6000만달러(약 648억원) 규모의 연구비가 투입됐다.

지난달 27일 울산항에서사우디아라비아에 전 세계 최초로 수출되는 '일렉시티 FCEV'를 선적하는 모습.

전세계 석유 공룡들은 친환경 사업 투자를 필수 생존 전략으로 여기고 있다. 글로벌 정유사들을 비롯해 석유수출국기구(OPEC)는 코로나 사태 이후 석유 소비가 이전 수준으로 돌아오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전기차 수요 증대와 전세계적인 에너지 전환 정책 기조 등으로 과거 석유 소비자들의 행동이 영구적으로 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이 책정한 향후 2040년까지의 평균 유가 전망치는 작년까지만 해도 배럴당 60~80달러였지만 최근 40~50달러로 낮아졌다.

글로벌 7대 에너지 기업 중 하나인 프랑스 석유업체 토탈 역시 국내 그린 뉴딜 정책에서 사업 기회를 찾고 있다. 토탈은 지난달 글로벌 신재생에너지 개발 및 투자회사인 그린인베스트먼트그룹(GIG)과 손잡고 한국에 해상풍력 발전단지를 구축하기로 했다. 이 프로젝트는 울산에서 진행하는 1.5 GW 규모의 사업 3개와 전남에서 추진하는 800MW(메가와트) 규모의 사업 2개로, 총 2.3GW 규모의 부유식 해상 풍력발전단지를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토탈이 신재생에너지 사업에 직접 참여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토탈은 주로 액화천연가스 공급, 석유화학제품과 윤활유 정제 분야만 운영해왔으나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한국과의 협력을 확대할 것이라고 밝혔다.

프랑스 석유업체 토탈은 지난달 글로벌 신재생에너지 개발 및 투자회사인 그린인베스트먼트그룹(GIG)과 손잡고 한국에 해상풍력 발전단지를 구축하기로 했다. 사진은 GIG가 개발, 운영하고 있는 714MW 규모의 이스트 앵글리아 ONE 해상풍력 단지.

토탈은 현대중공업과 세진중공업 등 부유체 제작회사와 씨에스윈드(112610), 삼강엠엔티 등 풍력타워 및 하부구조물 제작사, 두산중공업등 터빈 제조사들과도 협력하며 관련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줄리앙 푸제 토탈 신재생에너지 부문 수석부사장은 "부유식 해상풍력 사업을 시작으로 한국의 그린뉴딜 전략에 함께하게 됐다"며 "이번 프로젝트는 이산화탄소 배출을 억제하는 데도 도움이 되는 등 미래로 나아가는 사업"이라고 했다.

석유업계의 변신 노력에 대해 재계 관계자는 "국내 석유기업뿐 아니라 석유 강자로 군림해온 전세계 업체들은 미국 전기차 기업 테슬라 등이 승승장구하고 국제적인 저탄소 압박에 생존 위기에 처해있다고 여긴다"며 "일부 기업은 수소 등 대체에너지 사업을 구명줄로 보고 있어 그린 뉴딜을 중시하는 국가 사업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