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라면 삼총사' 올 상반기 '호실적' 기록
'기생충 효과'·'유튜버 입소문' 타고 판매 실적 고공 행진

농심·오뚜기·삼양식품 ‘K라면 삼총사’가 나란히 올 상반기 어닝서프라이즈급 실적을 기록했다.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대부분의 기업들이 역풍을 맞아 불황을 겪고 있지만, 식품기업들은 오히려 순풍을 탄 모습이다. 특히 대표적인 장기보관 식품인 라면 판매가 급증했다.

이는 실적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농심(004370)은 올 상반기 매출 1조3557억원에 영업이익 1050억원을 거뒀다.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7.2%, 영업이익은 164% 늘었다. 오뚜기(007310)는 올 상반기 1조2864억원 매출에 1101억원 영업이익을 올렸다. 작년 같은 기간과 비교해 매출과 영업이익이 각각 10.5%, 21.3% 증가했다. 삼양식품(003230)은 상반기 매출 3305억원에, 영업이익 562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은 32%, 영업이익은 55.7% 신장했다.

◇'기생충'으로 유명세 타고, 맛으로 눈도장까지
농심은 올 상반기 미국법인에서 전년 동기 대비 35% 성장한 1억6400만달러의 매출을 거뒀다. 코로나19로 외식 대신 집밥 수요가 증가한 것은 비단 한국만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세계적으로 간편식 수요가 늘었고, 그 중 라면을 찾는 소비자가 많아졌다.

농심 미국 법인에서 생산하는 농심 브랜드 제품.

그동안 미국 등 해외 라면 시장은 일본 회사들이 시장을 장악하고 있었다. ‘마루찬’ 브랜드로 유명한 도요스이산(Toyo Suisan), ‘Top Ramen’을 내세우고 있는 닛신푸드(Nissin Food) 등이 대표적이다.

2005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공장을 설립한 농심은 라면시장에서 후발주자였지만, 2017년 월마트 미국 전 점포에 신라면을 공급한 것을 시작으로 수년 간 메이저 시장 유통망을 촘촘히 구축했다.

최근 들어선 영화 ‘기생충’ 효과를 등에 입고 짜파게티와 너구리 판매가 늘었다. 영화 상에서 부의 상징인 한우 채끝살과 서민 음식인 짜파구리를 조합한 ‘채끝살 짜파구리’는 빈부 격차의 심볼로 사용됐다. 한국인들에겐 예능 프로그램 등을 통해 익숙한 조리법이지만, 외국인들에겐 재밌는 레시피가 됐다.

성격이 다른 두 개의 라면을 함께 조리해 새로운 맛을 창출한다는 점에 외국의 MZ세대(밀레니얼+Z세대, 1980~2004년생)들도 열광했다. 많은 요리 유튜버가 짜파구리 레시피에 도전했고, 이들을 따라하기 위해 구매하는 팔로워들도 늘었다. 그 결과 농심의 짜파구리 해외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40%가량 늘었다.

최근 들어선 신라면이 ‘맛있는 라면’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뉴욕타임즈의 제품 리뷰 사이트 '와이어커터(Wirecutter)'는 지난달 'The best instant noodles' 기사에서 신라면 블랙을 1위로 꼽았다. 농심 관계자는 "농심 브랜드 라면이 과거엔 아시안들이 주로 찾는 제품이었다면, 이제는 미국 메이저 유통회사가 먼저 찾는 한국 대표 식품이 됐다"고 말했다.

중국에서도 영토를 꾸준히 늘리고 있다. 현재 중국에서 신라면은 공항, 관광 명소 등에서 판매하는 고급 식품 브랜드로 자리매김 했다. 신라면의 패키징 디자인이 중국인이 선호하는 빨간색인 점도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했다. 농심 관계자는 "중국에서 경험할 수 없는 한국 특유의 얼큰한 맛이 중국인들이 신라면을 찾는 가장 큰 이유"라고 했다.

농심은 1999년 한·중·일 바둑기사들이 벌이는 국가대항전인 ‘농심 신라면배’ 바둑대회를 개최하며 중국 시장 내 브랜드 인지도를 높였다. 최근에는 ‘리그오브레전드’(LOL) 게임팀 ‘다이나믹스’를 인수해 e스포츠로 마케팅 영역을 확대했다. LOL은 중국의 MZ세대들이 가장 좋아하는 게임 중 하나로, 최근 들어선 중국 팀들이 세계 대회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다.

◇ 신라면 턱 밑까지 올라온 오뚜기 진라면

오뚜기는 1988년 진한 국물맛을 강조한 ‘진라면’을 출시했다. 하지만 당시엔 진라면이라는 이름을 두고 라면 1위 브랜드로 자리매김한 신라면을 따라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일었다. 지금도 종종 발생하는 식품업계 ‘미투 상품’ 논란이 일었던 셈이다.

업계 1위 신라면의 자리를 뒤쫓고 있는 오뚜기 진라면.

오뚜기는 진라면을 출시하며 ‘매운맛’과 ‘순한맛’ 두 가지 버전을 선보였다. 비교적 부드러운 맛의 진라면은 매운 음식을 기피하는 소비자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다. 차근차근 시장 점유율을 늘려오던 진라면은 라면계의 절대강자 신라면을 턱 밑까지 쫓아왔다. 2019년 12월 기준 진라면의 시장점유율은 14.6%으로, 1위인 신라면(15.5%)과 1%포인트 아래로 격차를 좁혔다.

진라면의 성공에는 오뚜기의 기업 문화도 한몫했다. 정규직 채용과 투명한 납세, 협력업체와의 상생은 오뚜기를 ‘갓뚜기’로 불리게 했다. 2008년부턴 진라면의 가격을 계속 동결해 서민 가계의 물가 부담을 덜어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최근 들어선 함영준 회장의 딸인 함연지씨가 TV프로그램과 유튜브 등을 통해 왕성하게 활동하며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지난 6월엔 백종원 더본 코리아 대표와 함 회장이 힘을 모아 완도산 다시마가 2장 들어간 ‘오동통면 한정판’을 출시해 선풍적인 인기를 끌기도 했다. 높은 인기에 오뚜기는 이 제품을 한정판이 아닌 정식 상품으로 출시했다.

국내에선 라면업계 2위 기업으로서 견실한 실적을 내고 있지만, 해외 수출은 아직은 경쟁업체에 비해 미미한 수준이다. 오뚜기의 올해 1~6월 라면 수출액은 350억원으로 규모는 크지 않지만, 전년 동기와 비교하면 40% 가량 신장했다. 성장 속도 만큼은 뒤쳐지지 않은 것이다.

◇ ‘미치게 매운 맛’… 해외팬 도전 욕구 자극하는 삼양 ‘불닭볶음면’

세계로 뻗어나간 ‘K라면’의 원조는 삼양식품이다. 1963년 삼양식품이 출시한 삼양라면은 국내에서 생산된 최초의 라면이다. 당시 10원에 출시된 삼양라면은 서민들의 배고픔을 덜어주는 해결사 역할을 했다. 하지만 1989년 우지파동이 터지면서 삼양식품은 하락세를 탔다. 공업용 쇠고기 기름으로 라면을 튀겼다는 익명의 제보가 보도된 것. 하지만 이는 1997년 대법원에서 무혐의로 판결하며 종료됐다. 소뼈를 먹지 않는 미국이 소뼈를 공업용으로 표기하며 발생한 오해였다.

중국 618 쇼핑 축제에서 불닭브랜드 모델로 활동한 중국 배우 곽기린.

무혐의로 결론났지만 삼양라면의 인기는 급격히 꺽였다. 삼양식품이 우지 파동으로 휘청이던 사이 국내 라면 시장은 농심이 장악했다. 우지파동 종결 후 삼양식품이 리뉴얼 출시한 삼양라면은 고정팬을 확보하는데에는 성공했지만, 옛 명성까지는 회복하지는 못했다.

삼양라면과 짜짜로니를 중심으로 라면 사업을 전개하던 삼양식품은 2012년 오랜만에 신제품을 출시했다. 바로 ‘불닭볶음면’이었다. 삼양식품가의 며느리였던 김정수 전 대표의 아이디어에서 나온 상품으로, ‘먹을 땐 괴롭지만 먹고나면 또 생각나는 매운맛’을 모티브로 삼았다.

불닭볶으면이 처음 등장했을 때 시장의 반응은 냉랭했다. 너무 맛이 자극적이었기 때문이다. 실제 출시 초기 불닭볶음면의 매출은 월 7~8억 수준으로 마니아들만 찾는 제품으로 인식됐다. 하지만 출시 3달 만에 매출이 두 배로 늘었고, 출시 1년이 됐을 땐 월 30억원대의 매출을 기록했다. 지금은 월 매출 80억원대의 매출로 라면 브랜드 순위 4위에 이름을 올렸다.

불닭볶음면의 성공엔 ‘먹방(먹는 방송)’ 유튜버들의 도움이 컸다. 특히 유튜브 채널 ‘영국남자’를 운영하는 유튜버 조쉬가 ‘불닭볶음면 도전하기’ 영상을 올린 것을 시작으로 국내외에서 ‘불닭볶음면 챌린지’가 유행했다. 식품으로 출시된 불닭볶음면은 한국을 상징하는 문화 상품이 됐다.

현재 삼양식품의 해외 매출 중 80% 이상이 불닭 브랜드에서 나오고 있다. 불닭볶음면의 해외 판매가 급증하면서 삼양식품은 매년 창립 이래 최대 수출 실적을 갱신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부터는 해외 매출이 국내 매출을 넘어섰다. 삼양식품 관계자는 "단기간의 유행으로 남을 수도 있었던 불닭 브랜드의 인기가 현재까지 지속될 수 있었던 것은 다양한 제품들로 폭 넓은 소비자층을 확보했기 때문"이라고 성공 이유를 꼽았다.

삼양식품은 하반기에도 해외사업 부문 성장세를 계속 이어갈 수 있는 다양한 전략을 고심 중이다. 회사 관계자는 "현지 시장에 구축한 온·오프라인 유통망을 안정화하고, 본격적인 브랜드 마케팅 활동을 전개할 예정"이라면서 "젊은층을 겨냥한 온오프라인 광고와 프로모션으로 해외 시장에서 브랜드 인지도를 확보해 글로벌 식품 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한 기반을 다질 계획"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