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사태로 경기침체, 소비감소 등 전 산업이 위축되고 있지만, 개인 또는 가구당 소비하는 영상서비스 이용량은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영상서비스 이용량 증가에 비례해 국내 방송시장 규모가 증가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이유는 국내 영상서비스 이용량이 늘어난 게 아니라, 넷플릭스, 유튜브 등 해외 영상서비스 이용량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국내 방송시장은 재원을 둘러싼 사업자간 끊임없는 분쟁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지상파 방송사는 재송신료, 종합편성채널사는 종편 수신료, 콘텐츠를 제작하는 방송채널사용사업자(PP)는 프로그램사용료를 인상해달라고 매년 케이블TV IPTV 위성방송 등 유료방송사에게 요구하고 있다.

CJ ENM은 2019년말 LG유플러스와 프로그램사용료로 갈등을 빚었지만, 정부 중재로 해결된 바 있다. 최근 CJ ENM은 또 다시 케이블TV에 프로그램사용료 인상을 요구하여 갈등이 발생했으나 이 또한 정부 중재로 송출중단은 피한 상태이다. 반대로 TV홈쇼핑사는 IPTV의 송출수수료 인상에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이외에도 홈쇼핑사간 황금 번호 선점을 위한 채널 경쟁이 치열한 상황이다. 이처럼 사업자간 재원 분쟁은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으며 종식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런 일이 왜 발생할까. 방송사업자의 재원구조를 살펴보면 방송시장이 구조적으로 성장하지 못하는 문제점을 확인할 수 있다. 지상파방송사는 유료방송사의 재송신료, 유료방송사는 TV홈쇼핑사의 송출수수료, PP는 유료방송사의 프로그램사용료가 중요한 재원이다. 즉, 자사의 주 서비스 수익이 아닌 타 사업자의 재원이 수익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렇게 수익원을 뺏고 뺏기는 구조다보니 방송시장 규모가 증가할 수 없는 것이다.

사업자들의 이러한 재원 확보 구조는 미래지향적으로 볼 때 방송시장 성장의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다. 자사의 주 서비스 수익을 중심으로 가입자 및 매출을 확보해야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 이미 동영상서비스를 포함하여 각종 서비스를 제공하며 수익을 창출하고 있는 포털사업자와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사업자는 타 사업자의 수익을 재원으로 삼지 않는다.

이들은 각자의 자원과 역량, 비즈니스 모델을 가지고 자체적인 경쟁력을 통해 수익을 창출하고 있다. 그러나 지상파방송사와 유료방송사, PP, TV홈쇼핑사는 서로의 재원을 수취해가는 구조이다 보니 제로섬 게임 속에서 지속적인 분쟁으로 인해 투자와 혁신을 생각하기 어렵다.

국내 미디어사업자가 자신의 주 서비스를 통해 수익을 확보하지 않고 타 사업자의 재원에 의존하는 형태를 과감하게 손봐야 한다. 이러한 기형적 형태의 재원 확보구조는 사업자의 예측가능성을 상실케 하여 궁극적으로 산업 생태계를 망가뜨리게 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다양한 제도 개편이 필요하다.

첫째, 케이블TV, IPTV 등 유료방송사의 사업 자율성을 확보해줘야 한다. 유료방송사는 이용요금을 자율적으로 인상할 수 없다. 유료방송시장에서 유료방송사의 주 수익원은 방송서비스 이용료인데 이용료 자체가 낮으니 주 서비스에 대한 수익이 낮을 수밖에 없다. 저가 이용료는 콘텐츠 사용료 배분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치므로 이를 극복하기 위해 요금 신고제를 즉각적으로 시행하고 유료방송 이용요금을 현실화할 필요가 있다.

둘째, 콘텐츠에 대한 적정 대가가 필요하다. 콘텐츠사업자는 콘텐츠제작에 대한 보상으로 콘텐츠사용료를 받는다. 그러나 콘텐츠사용료의 적정수준은 아무도 모른다. 수많은 전문가가 콘텐츠사용료에 대한 대가산정 방식을 제안했지만, 번번이 제도화하지 못했다. 이해관계자들의 반대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반대만이 능사가 아니다. 대가기준이 없는 상태에서 모든 콘텐츠사업자의 콘텐츠사용료 인상을 유료방송사가 매년 수용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정부와 같이 신뢰성있는 기관이 적정 콘텐츠사용료 기준가를 마련하여 사업자간 협상의 기초 자료로 활용할 수 있게 해야 터무니없는 인상이나 하락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

셋째, 지상파방송에 대한 명확한 개념 정립과 시장획정이 개선되어야 한다. 현재 방송시장 경쟁상황 평가에 따라 지상파방송시장과 유료방송시장이 구분되어 있지만, 콘텐츠 거래에서 다른 시장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공영방송(더 나아가 공공서비스방송)의 정의와 범위를 명확하게 설정하고 공영방송 운영 재원을 별도로 마련하여 유료방송과의 거래에서 분리해야 하며 공영방송이 아닌 지상파방송사에 대해서는 자율적 협상과 선택권을 줘야 한다.

이러한 구조 개편이 선행되어야 국내 방송시장이 사업자 간 소모적 분쟁 및 재원 수취의 장이 아닌 경쟁력 확보를 통한 성장의 장으로 변화할 수 있을 것이다. 가뜩이나 넷플릭스, 유튜브와 같은 글로벌 미디어 기업의 콘텐츠 파워로 국내 사업자의 입지가 위축되고 있는데 혁신적인 체질 개선책이 하루속히 나오지 않는다면 국내 방송사업자가 재기할 기회는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