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MM "새 협력체제 준비 중에 코로나19 터져 유휴율 높아졌다" 해명

국내 최대 선사인 HMM(옛 현대상선)의 전체 컨테이너선 3척 중 1척이 유휴(遊休) 상태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세계 평균 유휴 선박 비율(11.6%)보다 3배 가까이 높고, HMM 규모의 절반도 안 되는 대만 선사 완하이(1.8%)보다 18배 이상 높은 수준이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전 세계 물동량이 위축되면서 글로벌 해운 업계가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유독 HMM의 선박 유휴율이 높은 이유는 무엇일까.

4일 프랑스 해운 조사기관 알파라이너에 따르면 5월 말 기준 HMM 컨테이너선의 32.9%가 유휴 상태인 것으로 조사됐다. 전체 글로벌 평균 유휴율은 11.6%다. HMM 전체 선복량이 약 55만1732TEU(알파라이너 기준)인 점을 고려했을 때, 20피트 길이 컨테이너 18만1500여개를 실어야 할 컨테이너선들이 비어 있는 셈이다. HMM에 이어 싱가포르 선사 PIL의 유휴 선박 비율은 26.9%이었고, 대만 양밍(14.5%), 스위스 MSC(12.9%), 일본 ONE(11.6%)이 뒤를 이었다.

알파라이너는 유휴 선박을 크게 △스크러버(탈황장치) 설치 또는 수리를 위해 조선소에 계류 중인 선박 △2주 내 항로에 투입될 선박 △항로 투입 계획 없이 계류 중인 선박 등 세 종류로 봤는데, HMM 전체 유휴 선박 중 절반가량이 당장 항로 투입 계획이 없다. 세계 톱12 선사 중에선 일본 선사 ONE 다음으로 이 비율이 높다. 나머지 절반은 스크러버 설치를 위해 조선소에 계류 중인 선박과 2주 내 항로에 투입될 선박들이다.

그래픽=이민경

이에 대해 HMM은 "지난 4월 디 얼라이언스와의 협력이 시작됐는데, 이로 인해 선박 반선과 재투입을 준비하던 중 코로나19 영향이 심해져 유휴율이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HMM 관계자는 "코로나 여파에 따라 물동량이 줄어 공급을 줄였을 뿐 영업 활동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며 "특히 전체적인 물동량이 줄어든 이 시기를 이용해 강화된 환경 규제에 맞춘 스크러버 설치를 늘리고 있다. 다른 선사도 비슷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HMM은 60척의 컨테이너선을 보유하고 있다.

HMM이 세계 최대 선사인 머스크나 MSC보다 보유 선박이 적기 때문에 유휴 선박이 한 척이라도 많아지면 유휴율이 크게 높아지는 것은 사실이다. 분모가 작으니 ‘유휴 선박’인 분자에 따라 비율이 크게 나오는 것이다.

하지만 유휴 선박 비율을 잘 관리하는 선사도 있다. 대만 선사 완하이는 전체 선박의 1.8%만 유휴 상태다. 프랑스 선사 CMA CGM은 아예 아프리카 남단인 희망봉 노선을 선택해 운항거리를 늘려 유휴 선박을 줄였고, 결과적으로 전체 선박의 2.3%만 유휴 상태다. 세계 최대 선사인 머스크의 유휴 선박 비율은 9.5%다.

HMM이 일종의 ‘과도기’에 도달했다는 분석도 있다. 한종길 성결대 동아시아물류학부 교수는 "최근 HMM이 초대형 컨테이너선을 유럽 항로에 투입하면서 기존 선박들이 다른 항로에 당장 투입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10여년 전부터 효율성 높은 대형 컨테이너선으로 선단을 교체해야 한다는 시장의 요구가 있었지만 당시 그러지 못했다"며 "지금 이 부채가 불거졌고, HMM은 언젠간 반드시 극복해야 할 문제"라고 설명했다.

HMM의 유휴율이 높은 이유에 대해 해운업계 일각에서는 "경쟁하던 한진해운이 없어지고, HMM이 채권단 관리로 들어가면서 경쟁력이 약해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다행히 세계 해운 조사기관들은 코로나 사태가 끝나면 세계 경제가 회복하면서 컨테이너선 유휴율이 점차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다만 미국과 중국 간 무역 분쟁이 새로운 뇌관이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코로나뿐 아니라 미·중 무역갈등 상황도 주의깊게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