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민간 유인 왕복 우주선 일요일 발사 예정
'메이드 인 우주'신소재⋅로켓 모빌리티⋅민간 통신위성 현실화 가능성
최기혁 항우연 팀장·김승조 전 항우연 원장 "한국도 진출 안할 수 없다"
韓 유인 우주선 추진 검토… 누리호 개발비 7분의1 스페이스X 로켓

27일(현지시각) 미국 플로리다주 케네디우주센터 P39-A 발사대에 세워진 스페이스X의 로켓 ‘팰컨9’과 이에 탑재된 유인 우주선 ‘크루 드래곤’.

오는 31일 오전 4시 22분(한국시각) 미국의 민간 항공우주기업 스페이스X가 만든 유인 왕복 우주선 ‘크루 드래곤’이 로켓(발사체) ‘팰컨9’에 실려 발사된다. 당초 27일 발사될 예정이었지만 기상 악화로 발사 시점이 연기됐다. 이번 발사 임무가 성공할 경우를 두고 다양한 의미 부여가 나오고 있는 가운데, 국내 항공우주 전문가들은 "우주 상업화 시대를 여는 기폭제가 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미국 정부는 9년 전 달 궤도 거리(38만 4000km) 이내의 지구 저궤도 우주 진출을 위한 자체 연구를 중단했다. 정부는 화성 유인 탐사 등 고난도 개척 임무에 집중하고 지구 저궤도 우주로의 진출은 민간기업에 맡기는 정책(상업 승무원 프로그램)을 펼쳐왔기 때문이다. 일찍이 지구 저궤도 우주를 새로운 산업 플랫폼으로 보고 자국 기업들의 선제적인 진출을 장려한 것이다.

이로 인해 미국은 6개월마다 국제우주정거장(ISS)을 왕래하는 자국 과학자와 3개월마다 보급되는 물자를 수송하기 위한 자체 기술을 갖지 못했다. 대신 러시아에 1회 1000억여원의 운임료를 내고 소유즈 우주선을 빌릴 수밖에 없었다. 스페이스X의 성공은 그간 자체 기술 부재에 따른 손해를 감수해온 미국이 9년만에 결실을 맺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신소재, 로켓 모빌리티, 민간 통신위성 산업의 새 플랫폼 열려

최기혁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우주과학연구팀 팀장(책임연구원)은 28일 조선비즈와의 통화에서 "우주 상업화가 이뤄질 경우 당장 유망할 분야로 신소재 연구개발(R&D) 분야를 꼽을 수 있다"고 했다. 최 팀장은 2006년 한국 최초의 우주인 배출 사업을 주관했던 항우연 ‘한국우주인사업단’을 이끈 바 있다.

최 팀장에 따르면 무중력 환경에 가까운 우주에서는 지상에서 불가능했던 신소재를 합성할 수 있다. 무거운 물질을 가라앉히는 중력의 방해가 없어 정밀한 화학 반응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른바 ‘메이드 인 우주'라고 할 수 있는 우주산(産) 차세대 반도체, 신약 개발이 이뤄질 수 있다. 또 무중력 환경에서 배양이 더 쉬운 인공장기 등 바이오 분야에도 우주 공간이 활용될 수 있다.

유리 재질 광섬유 ‘지블란(ZBLAN)’은 대표적인 우주산 소재다. 지블란은 우주에서 불순물 없이 고순도 유리로 합성해, 지상에서 만든 광섬유보다 성능이 수십배 높다. 외신에 따르면 이미 2016년에 미국 기업 ‘메이드인스페이스’는 우주 공간에서 이것을 만들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2016년 메이드인스페이스가 우주에서의 생산 계획을 밝힌 유리 재질 광섬유 ‘지블란(ZBLAN)’.

메이드인스페이스처럼 우주에서 사업을 하려는 기업들이 늘고 2025년 ISS가 민간에 개방돼 과학자들의 왕래가 활발해지면, 우주로의 이동 수요도 높아질 것이다. 우주로의 이동은 사람과 화물을 빠르고 안전하고 낮은 비용으로 이동시키는 ‘로켓 모빌리티’ 기술에 달렸다.

김승조 서울대 명예교수(전 항우연 원장)는 "우주 상업화 시대가 열리면 그 주인공인 스페이스X가 얻을 이익은 유인우주선 자체보다 로켓 기술에서 나올 것"이라고 했다. 이어 "현재 스페이스X의 운임 비용은 러시아 소유즈 우주선의 절반 이하"라며 "향후 기술이 발전하면 비용이 더 내려갈 것이고 우주 수송·관광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부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통신위성 분야도 로켓 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민간기업의 진출이 확대될 전망이다. 이미 스페이스X는 1만 2000개의 통신위성을 지구 상공에 쏘아올려 통신 사각지대를 없애겠다는 계획을 발표해 행동으로 옮기고 있다. 2024년까지 우선 6000개를 쏘아올릴 예정이다.

4차산업혁명으로 데이터가 산업의 중심이 돼가는 가운데 전세계에서 통신망을 확대하려는 움직임 또한 늘어나고 있다. 통신위성의 수요가 늘어나는 만큼 이를 발사하기 위한 로켓 기술의 수요 또한 커질 것으로 보인다. 김 교수는 "이번에 팰컨9 로켓의 기술력이 세계적으로 인정받으면 스페이스X의 통신위성 산업 진출에도 호재가 될 것"이라며 "스페이스X가 통신위성 산업의 10%만 차지해도 1000억달러(약 120조원) 규모의 경제적 이익을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성공률 99.6%, 美 후발주자들 줄지어 대기… "한국 진출 안 할 수 없다"

스페이스X의 성공과 이에 따른 우주 상업화는 장밋빛 전망이 아니다. 실제로 안전하고 빠르며 값싼 우주 비행의 실현을 앞두고 있다.

미국항공우주국(NASA)은 지난주 발사 전 최종 테스트인 ‘데모-2’ 비행 임무에서 크루 드래곤이 99.6% 이상의 확률로 인명피해 없이 안전하게 목적지인 ISS까지 비행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것은 NASA가 당초 제시한 안전 기준인 ‘270분의 1 이하의 실패 확률’을 충족한 것이다. 또 로켓뿐만 아니라 우주선에도 자체 엔진이 있기 때문에 로켓 엔진 결함으로 위험한 상황이 발생하면 안전하게 탈출할 수도 있다고 한다.

로켓의 속도와 사거리를 결정하는 추력 또한 높다는 평가다. 장조원 한국항공대 교수에 따르면 팰컨9은 멀린 1D 엔진 9개를 탑재했다. 이 엔진은 우리나라가 내년에 발사 예정인 로켓 ‘누리호’의 75톤급 엔진과 맞먹는다. 로켓 1단 기준으로 누리호는 엔진을 4개 달았지만 팰컨9은 이것의 2배 수준인 9개를 달았다.

개발 비용 또한 국가가 주도했던 과거 로켓들보다 낮아졌다. 김 교수에 따르면 로켓의 순개발비는 우리나라의 나로호와 누리호가 각각 1조원, 2조원인데 반해 팰컨9은 3000억원 수준이다.

안전과 기술력, 경제성이 높아지면서 스페이스X 뒤를 이어 후발주자들도 나서고 있다. 스페이스X와 같이 NASA의 지원을 받은 보잉은 올해 하반기에 유인 우주선 발사를 계획하고 있다. 시에라 네바다 코퍼레이션(SNC)의 ‘드림체이서’, 아마존의 자회사 블루오리진의 ‘뉴쉐퍼드’ 우주선 또한 그 뒤를 준비하고 있다.

한국은 민간기업의 우주 진출에 법적 제한을 두지 않지만 아직 이같은 기업은 없다. 최 팀장은 "이제 ‘우주탐험가(astronaut)’라는 말이 ‘우주승무원(space crew)’으로 바뀌고 있다. 세계적으로 우주 상업화가 이뤄지면 우리나라도 진출할 수밖에 없다"며 "항우연도 유인 우주선 프로젝트 계획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 교수도 "우리나라는 나로호 개발을 계기로 4500억원 규모의 로켓 인프라를 세웠다"며 "전문 인재 양성, 실험 실패를 용인하는 분위기 조성 등을 통해 충분히 우주 상업화에 참여할 수 있다"고 했다.

한국형 로켓(발사체) 누리호의 1단 체계개발모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