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오후 긴급재난지원금과 관련한 추가경정예산(추경) 당·정 협의안을 취재하다 더불어민주당 최운열 의원과 어렵사리 통화가 됐다. 퇴근을 준비할 시간인 오후 6시 불쑥 전화해 따져 묻는 기자가 귀찮을 법도 한데, 그는 도리어 "더 궁금한 것이 있으면 내일 오전 사무실로 오라"고 제안했다.

민주당의 경제 정책 전반에 대해 설명을 들을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해 "가겠다"고 하고, 다음날 오전 사무실로 향했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을 지낸 최 의원은 민주당 내 경제통(通)으로 꼽힌다. 민주당 소속이니 당·정의 결정에 대해서는 찬성만 할 것이라 예상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그는 "거대 여당이 됐으니 야당인 미래통합당 요구대로 '소득하위 70%' 지급안을 받아들였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민주당은 경제를 모른다"는 인식에 대한 그의 답변이었다. 그는 "매주 금요일 아침 7시 30분 ‘경국지모(경제를 공부하는 국회의원들의 모임)'를 한다"고 했다. 그는 '코로나 위기 대응을 위한 기업 고용 유지'를 위해 임금 삭감을 위한 노사 협의가 이뤄져야 한다고도 제안을 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경제는 약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의원들이 더 열심히 공부하고, 또 필요에 따라 변화도 주려고 한다"고 했다.

최 의원과 티타임을 끝내고 나서 통합당에 경제만 공부하는 의원 모임이 있는지 생각해 봤지만 떠오르지 않았다. 역설적이게도 통합당은 이번 총선에서 현 정부에 대한 '경제 실정(失政)론'을 들고 나와서 참패했다. 통합당은 선거 내내 "무능한 민주당에게 경제를 맡길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경제 문제에 있어서 통합당이 민주당보다 낫다는 근거는 없었다. 후보자들은 그저 '반문(文) 정서'에만 기댄 안티의 정치만 거듭했다. 이번 총선은 ‘민주당이 아무리 못해도 통합당은 못믿겠다’는 여론을 재확인하는 자리였을 뿐이었다.

현재 진행 중인 긴급재난지원금 처리 문제만 해도 그렇다. 당 대표는 선거 때 전국민에게 지급하겠다고 했는데, 선거가 끝나고 나니 국회 예결위원장인 김재원 정책위의장은 정부 재정건전성을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여론은 "통합당은 왜 대통령 발목 잡기만 하느냐", "반대말고는 뭘 하는 당인지 모르겠다"라고 비난한다.

이 와중에 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직을 수락한 김종인 전 총괄상임선대위원장은 뜬금없이 '경제에 정통한 40대 대선후보' 카드를 꺼내들었다. 통합당에 경제에 정통한 40대 정치인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차기 지도자 자질을 '나이'와 '경제'로 한정지어도 되는지도 의문이다. 지도자에게 필요한 자질은 그 시대가 마주한 문제를 깊이 고민하고 또 해결할 의지가 있는지 여부라고 생각한다. 경제가 문제라면 경제를 잘 아는 사람을 주변에 두고 들으면 될 일이다.

총선 후 열흘이 지나도록 새로운 지도체제도 만들지 못한 채 표류하는 당이 '차기 대통령' 이야기를 할 처지인지도 모르겠다. 김 전 위원장은 대중이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 무엇을 화두로 던져야 ‘이야기꺼리’가 되는지 잘 아는 사람이다. 하지만 마크 트웨인이 말했다. "곤경에 빠지는 건 뭘 몰라서가 아니다. 확실히 안다는 착각 때문이다." 시험을 볼 때 그렇다. 익숙한 유형이라고 생각해 감(感)에만 매달려 문제를 풀면, 꼭 어이없이 실수를 한다. 통합당이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은 차기 대선 주자를 찾아 줄을 서는 것이 아니라, 귀에 거슬리는 비판 여론을 귀담아 듣고, '내가 제일 잘 안다'는 착각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