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취 논란에도 강경한 홍남기 "설득 노력하라"
지급 대상 전국민 확대시 3조~4조원 증액 필요
100% 줬다가 환수하는 것 "현실성 없다" 판단

기획재정부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을 위한 긴급 재난지원금은 소득 하위 70%에만 지급하겠다"는 기존 입장을 고수하면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정면 충돌이 예고되고 있다. 4·15 총선 승리로 거대 여당이 된 더불어민주당은 전 국민에 재난지원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방침을 선거 공약으로 내세웠는데, 이를 관철시키기 위해 기재부를 전방위로 압박하고 있다. 지난 19일 재난지원금 기준 확정을 위해 열린 당·정·청 회의에서 이해찬 대표, 이인영 원내대표 등이 전국민 지급을 요구했지만, 기재부의 입장 변화는 없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0일 확대간부회의를 통해 "2차 추경안의 국회심의에 철저히 대비해달라"면서 "특히 긴급재난지원금 지급 기준 70%는 지원 필요성, 효과성, 형평성, 제약성 등을 종합 검토해 결정된 사안인 만큼 국회에서 이 기준이 유지될 수 있도록 최대한 설명, 설득 노력을 기울여라"고 당부했다. 정치권의 압박에도 기재부의 기존 입장을 관철시키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다.

그는 "앞으로 더 어려운 상황에 대비해 추가 재정역할과 이에 따른 국채발행 여력 등도 조금이라도 더 축적해 놓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홍 부총리가 강경한 입장을 밝힌만큼, 지원금을 조기에 지급하는게 어려워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홍남기(가운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0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서울-세종 간 영상 확대간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계속되는 여당 압박… 기재부 입장 유지할 수 있을까

기재부는 이날 오전에도 지원금을 전국민에 지급하는 방안을 검토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단호하게 밝혔다. 기재부는 ‘정부 내부에서 긴급재난지원금 전국민 지급안을 검토하고 있고, 이를 염두에 두고 구조조정이 가능한 세출 사업 목록을 검토해왔다’는 한 언론 보도에 대해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재난 지원금 액수를 낮춰서 전국민에 지급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에 대해서도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해명자료를 냈다. 기재부 관계자는 "전국민 지급안과 이를 위한 세출사업 구조조정을 검토한 바 없다"고 했다.

앞서 정부와 여당, 청와대는 19일 고위 당·정·청 회의를 열고 지원금 지급 대상을 전국민으로 확대할 것을 논의했지만 결론을 내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여당 지도부는 이날 오전 재차 전국민 지급을 압박했다. 이인영 원내대표는 "지원금에 대한 정치권의 합의는 이미 이뤄졌다"면서 "여야가 함께 국민 모두에게 빨리 지급하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조정식 민주당 정책위의장도 총선 다음 날인 16일 "민주당은 총선 기간 전 국민 지급을 말했고 야당도 같은 목소리를 냈다"고 했다.

총선 이전부터 민주당은 홍 부총리의 거취까지 거론하며 기재부를 압박했다. 이해찬 대표는 지난 11일 비공개회의에서 "당이 나서 (홍 부총리) 해임 건의를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홍 부총리는 같은날 밤 자신의 페이스북에 "위기를 버티고 이겨내 다시 일어서게 하려고 사투 중인데 갑자기 거취 논란이 일었다"라고 반응했다. 정부는 정치권의 압박에도 지난 16일 2차 추경안에 소득 하위 70% 가구에만 4인 가구 기준 100만원을 지급한다는 원안을 담아 국회에 제출했다. 소득 하위 70%에 해당하는 가구는 건강보험료를 기준으로 가려낼 방침이었다.

소득 하위 70%가 아니라 전국민에 재난지원금을 지급하려면 정부가 제출한 7조6000억원의 추경 예산을 3조~4조원 가량 증액해야 한다. 현행법상 예산을 증액하려면 기재부 동의를 받아야 한다. 기재부의 우군은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이다. 김 실장은 소득 하위 70%에 지급하는 방안에 동의하고 있으며, 기재부가 애초 중위소득(소득 하위 50%) 이하에만 재난지원금을 지급하자고 했을 때도 이에 동의했다.

◇기재부, 전국민에 주고 나중에 환수하는 방안 "현실성 없다"

여권에서는 전국민에게 일단 재난지원금을 지급하고 고소득자는 나중에 환수하는 방안이 절충안으로 나오고 있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지난 8일 사견을 전제로 "고소득자에게는 다시 환수한다는 전제 조건이 충족된다면 (재난지원금을 모든 국민에게) 보편적으로 지급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기재부는 이 절충안에 대해서도 "현실성이 없다"고 일축하고 있다. 현실성이 없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는 국가보조금인 재난지원금을 환수할 법적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현행 세법상 국가보조금은 개인의 소득에 포함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기초연금·장애인연금·기초생활수급자급여 등 국가보조금에도 세금이 부과되지 않는다. 세법을 개정해 재난지원금만 콕 집어 환수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다른 국가보조금은 그대로 두고 재난지원금만 환수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의 법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이유에서다.

이번 재난지원금이 가구 단위로 지급된다는 점도 ‘선(先)지급 후(後)환수’가 어려운 이유다. 세법상 세금을 내는 최소 단위는 개인이다. 가구단위로 지급된 재난지원금을 개인에게 환수할 수 있는 세법상 수단이 없다는 게 기재부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세제실에서 검토해 본 결과 선지급 후환수 방식은 쉽지 않은 일로 파악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