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온라인 개학 한 달째…부실 강의는 여전히
일부 교수, 수업 대신 다큐멘터리 영상만 업로드
학생들 "교수 얼굴 아직도 몰라…등록금 아까워"
교육 당국 "수업 방식은 교수 재량…강제할 수 없어"

"1학기 내내 혼자 끙끙대며 공부해야 할 상황입니다. 저는 강사님이 직접 강의하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온라인 개강 한 달을 맞았지만 고려대 공과대학 기계공학부 재학생 A(23)씨는 전공필수 과목 강사의 강의를 단 한번도 듣지 못했다. 온라인 강의실에는 전공서적 저자의 6년 전 유튜브 강의 영상 링크와 PPT 강의자료만 올라왔다. A씨는 "강사님께 문의 메일을 넣어봐도 ‘자료와 유튜브 링크를 참고해 혼자 많이 연습하라’는 답변 뿐이었다"고 토로했다.

지난 12일 A씨는 답답한 마음에 이 같은 사실을 학교 온라인 커뮤니티 고파스에 알렸다. 그러자 A씨와 비슷한 상황을 겪고 있는 학생들의 성토가 이어졌다. "강사가 올리는 PPT 자료 또한 책 저자가 개설한 네이버 카페에 올라와 있는 강의 교안 그대로다" "그냥 (강사님) 얼굴 한번 구경하는 게 소원이다" "대면강의 안 한다고 날로 먹는다" "이런 강의 듣기 위해 등록금 내는 게 아니다" 등 댓글 수십개가 달렸다. 이 학교 기계공학부 학생 1인당 평균 등록금은 512만원 수준이다.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영향으로 온라인 등 비대면 강의를 통해 서울 시내 주요 대학들이 개강한 지난달 16일 서울 서대문구 한 가정집에서 올해 대학에 입학한 20학번 신입생이 자신의 컴퓨터로 교양영어 강의를 듣고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지역 사회 확산을 막기 위한 대학 온라인 개강이 한 달째를 맞았지만 ‘부실 강의’ 논란은 여전히 대학가를 달구고 있다. 학생들이 체감하는 강의의 질이 크게 떨어졌는데도 교수들이 직접 교단에 서기보다 외부 강의 영상과 자료로 수업을 대체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교육 당국은 "수업 방식은 각 대학과 교수의 권한이기 때문에 개입할 수 없다"며 손을 놓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 교수님은 언제 수업해요?"
올해 연세대에 입학한 새내기 B(19)씨는 "입학 후 듣는 첫 대학 강의인데 크게 실망했다"며 울상을 지었다. 영어로 진행하는 온라인 전공 수업에서 담당 교수가 수업 내내 '영어 대본'을 읽기만 한다는 것이었다. 논문 수준의 내용을 다루고 있지만 어떠한 부연 설명도 없다고 한다. B씨는 "한국어로 배워도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을 교수가 내내 원문으로 읽기만 한다"며 "이게 강의인지 낭독회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서강대 사학과의 한 전공수업에선 한 달 가까이 강의 영상이 올라오지 않고 있다. 대신 ‘과제용 다큐멘터리’라면서 교수가 올려둔 동영상 시청 링크만 교내 온라인 수강 홈페이지에 올라올 뿐이었다. 이 수업 수강생 C(24)씨는 "온라인 개강이 처음인 만큼 웬만큼 강의 질이 떨어져도 이해하려고 했는데, 아예 수업을 안 하는 건 교육자로서 양심이 없는 것 아니냐"고 했다.

그나마 ‘영상’이라도 올라온 대학은 다행이었다. 이화여대 조형예술대 디자인학부의 한 전공수업은 개강한 지 보름이 되도록 온라인 강의 플랫폼인 ‘사이버캠퍼스’가 열리지 않았다. 학교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한 강의계획안에 주차별 과제 목록이 표시된 게 전부였다. 학교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지금 수업이 진행되고 있는 게 맞느냐’는 내용의 문의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지난달 22일 이화여대 커뮤니티에 조형예술대학 전공과목 온라인 강의 관련 문의 글이 게시됐다. 해당 수업은 온라인 개강 후 2주 동안 사이버캠퍼스가 열리지 않아 혼선을 빚었다.

대학가에선 부실한 온라인 강의가 예견된 일이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교육부가 전례없는 코로나 사태로 온라인 개강에 돌입한 대학들에게 올해 1학기에 한해 원격강의 기준을 대폭 완화했기 때문이다. 기존에는 온라인 강의 1회당 최소 25분 분량의 강의 영상을 게시하도록 권장했지만 지금은 아예 이런 기준이 없어졌다. 강의 영상의 분량이나 구성 기준은 대학이 자체적으로 마련하도록 했다. 사실상 교수가 1분짜리 강의 영상을 올려도 규제할 방법이 없는 셈이다.

◇ 대학 "교수 재량" 교육부 "대학 재량"
하지만 대학들은 수업 방식이 교수의 고유 권한이기 때문에 강제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이화여대 관계자는 "학칙상 온라인 강의 자료는 교수가 직접 촬영해도 되지만 외부 동영상 활용도 가능하다. 어떤 자료를 활용할지는 교수 재량"이라고 했다. 서강대 역시 "교수의 강의 방식과 내용에 대해 학교 차원에서 강제할 방법은 없다"고 했다.

교육부는 사실상 대학에 책임을 미뤘다. 올해 1학기에 한해 온라인 강의 기준을 완화해줬으니, 대학이 자체적으로 마련한 온라인 수업 기준에 따르면 된다는 것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각 대학의 온라인 인프라가 달라 특정 방식의 강의를 강요할 수 없다"면서 "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해 노력을 기울여 달라는 내용의 공문을 각 대학에 보내고는 있지만, 결국 운영 기준은 각 대학에서 세우는 것"이라고 했다.

지난 6일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대학가 재난시국선언 기자회견에 참석한 전국대학학생회네트워크 소속 학생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부실 강의’로 인한 학생들의 불만은 등록금으로 향했다. 오프라인 수업에 비해 강의의 질이 현저히 떨어지는데도 한해 1000만원에 달하는 등록금을 받아가는 대학들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26개 대학 총학생회 연대체 ‘전국대학학생회네트워크’에 따르면 최근 대학생 6281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온라인 강의에 ‘만족’ 또는 ‘매우 만족한다’는 응답자는 6.8%에 불과했다. 반면 ‘매우 불만족’ 또는 ‘불만족’은 64.5%에 달했다. 전국대학학생회네트워크는 강의 내용이 부실한데도 온라인 강의가 연장될 경우 등록금 환불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결국 교육부와 대학 간 협의체인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는 최근 1학기 등록금 일부를 돌려주는 방안에 대해 논의하기 시작했다. 대교협은 올해 8000억원이 투입되는 대학혁신지원사업 예산을 대학들이 교내 장학금으로 활용해 학생들에게 돌려주는 방식을 교육부에 건의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