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시장 등에서만 쓸 수 있는 쿠폰 지급
광범위한 융자 위주 中企·소상공인 지원
코로나19 펜데믹 공포… 2차 추경 나서나

정부는 4일 11조7000억원 규모의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추가경정예산안(추경안)을 발표하며 "당장의 피해 극복을 지원하는 긴박한 대책"이라고 표현했다. 정부는 지난달 24일 문재인 대통령의 지시가 나온 이후 10일 만에 추경 예산안을 발표할 정도로 긴급하게 대책을 마련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추경이 규모만큼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 지에 회의적이다. 소비 진작을 위해 내놓은 대책이 ‘쿠폰(상품권) 발행’에 치우쳐 있고, 중소기업·소상공인 지원은 대출한도를 늘리기 위한 금융기관 출자 확대 등 간접적인 방식 위주이기 때문이다. 코로나19로 인한 경제 충격을 완화해야 한다는 추경 취지는 공감하지만, 구체적인 세부 내용을 보면 ‘아쉬운 점이 많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번 추경안을 핵심 단어로 정리한다면, ‘상품권(쿠폰) 추경’이라고 할 수 있다"면서 "정부가 결연한 의지로 마련한 추경안인데, 안타깝게도 규모와 방법 면에서 매우 아쉽다"고 말했다. "정부가 현금성 지원 방식인 ‘쿠폰’ 지급으로 소비 여력을 확대하고자 하지만, 투입 재정 대비 효율성이 낮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상품권, 상품권, 또 상품권

정부는 4일 국무회의에서 11조7000억원 규모의 2020년 추경안을 의결했다. 사상 네번째 ‘벚꽃 추경(1분기 추경)’이다. ▲감염병 방역 체계 고도화에 2조3000억원 ▲소상공인·중소기업 회복에 2조4000억원 ▲민생·고용 안정에 3조원 ▲지역경제·상권 살리기에 8000억원이 편성됐다. 코로나19 확진자가 많이 발생한 대구·경북 지역 특별 지원에는 6000억원이 투입된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당장의 피해 극복을 지원하고 경기를 살리는 모멘텀을 만들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이 추경안 규모에 비해 경기진작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라고 보는 이유는 쿠폰 발행 등 간접적인 지원 위주라는 점에서다. 정부가 소비 진작·고용 안정을 위해 투입하는 3조원의 예산 중 현금성 쿠폰 발행에 2조326억원이 투입된다. ▲저소득층 소비쿠폰 8506억원 ▲특별돌봄쿠폰 1조539억원 ▲일자리 쿠폰 1281억원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각 쿠폰은 지역 여건에 따라 지방자치단체가 발행하는 지역사랑 상품권 또는 중소벤처기업부가 발행하는 온누리상품권으로 지급된다.

현금성 쿠폰 지급은 추경안에서 민간 소비 진작 부분 뿐 아니라 소상공인과 자영업자 지원 부분에도 포함돼 있다. 정부는 코로나19로 인해 위축된 전통시장 활력 제고를 위해 공동마케팅 등 ‘전통시장 바우처’를 531개 시장에 212억원 규모로 하겠다고 밝혔다. 또 전통 시장 소비 진작 유도를 위해 온누리상품권의 발행 한도를 2조5000억원에서 3조원으로 5000억원 늘린다는 계획이다. 한 사람당 온누리상품권 구매 한도는 70만원에서 100만원으로 상향한다. 2400억원을 들여 지역사랑상품권 발행규모를 3조원에서 6조원으로 확대하고, 4개월간 한시적으로 국고 지원율을 4%에서 8% 상향한다.

정부는 쿠폰 발행을 통해 저소득층 소비 여력 보강과 전통시장 등 골목상권 지원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달성할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쿠폰 발행을 통해 소비 경기를 부양한 사례가 많지 않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번 대책으로 발행되는 상품권이 전통시장 등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쿠폰이라는 점도 한계로 지목된다. 지급받은 쿠폰을 사용 못하는 상황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우 교수는 "쿠폰 등 현금성 지원의 문제는 불확실한 상황에서 이런 것들을 받아두면 소비를 늘리기보다는 모아두는 경향이 강하다"라며 "쿠폰 사용 기한을 6개월로 제한해두는 등의 방식으로 보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미국, 일본 등 다른 나라들도 과거에 현금을 나눠주는 방식으로 경기를 부양하려 했으나 효과를 본 사례가 많지 않다"고 말했다.

◇치명적 타격입은 산업 집중 지원 대신 ‘융자’로 지원

앞서 전문가들은 코로나19 추경에는 피해 규모가 큰 여행업, 요식업 등을 집중적으로 지원하는 내용이 담겨있어야 한다는 의견을 밝혀왔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가 추경을 편성할 때 광범위한 지원책을 담은 거시적인 추경이 아니라 타격을 심하게 입은 업종을 집중 지원하는 ‘미시적 추경’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번 대책에서는 개별 업종에 대한 지원 방안이 없다. 대신 광범위한 융자 위주의 중소기업·소상공인 금융 지원 방안이 담겼다.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의 회복을 지원하기 위해 배정한 2조4000억원 중 1조6000억원이 ‘금융기관에 대출을 신청해야 받아갈 수 있는’ 자금으로 채워졌다. 신용도가 열악한 소상공인은 대출 지원 대상에서 배제될 가능성이 있는 자금이다.

소상공인·중소기업진흥자금에서 7800억원은 기금변경으로, 1조2200억원은 추경으로 마련해 융자를 2조원 확대하고, 연 금리 1.48%인 기업은행의 소상공인 초저금리 대출을 2조원 늘렸다. 신용보증기금과 기술보증기금에 1600억원을 추가 출연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수출기업 수출채권의 조기현금화 보증 5000억원 확대를 위해 500억원을 출연한다.

반면 코로나19 확진자의 방문으로 피해를 입은 곳을 선별해 직접 지원하는 방안은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았다. 코로나19 확진자가 경유해 일시 폐쇄한 영업장 등에 대한 지원 금액으로는 372억원이 배정됐다. 여행업 등 특정 피해 산업을 지원하는 예산은 없다.

우석진 교수는 "금융 지원의 경우 정부가 돈을 많이 투입하지 않으면서도 빠르게 자금을 시장에 풀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코로나19 사태 이전에는 건실하게 영업하던 곳인데 일시적인 어려움을 겪는 곳을 골라 지원하는 ‘옥석 가리기’가 어렵고 부실한 곳까지 폭넓게 지원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사고(대출 회수 등이 불가한)가 많이 나는 방식"이라고 말했다.

◇"2차 추경 요구하는 목소리 강해질 듯"

정부는 이번 추경으로 인한 성장률 제고 효과 등을 수치로 제시하지 않았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지금은 성장률을 몇 퍼센트 올리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라면서 언급을 피했지만, 정부 스스로도 이번 추경의 효과를 자신하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이 때문에 이번 추경으로 경기 진작 효과가 충분하지 않을 경우 정부가 2차 추경 편성에 나서야 하는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코로나19가 중국, 한국, 일본 등 동아시아 지역을 넘어 전세계로 확산되는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형태로 번지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시장에서는 올해 1분기 한국의 GDP(국내총생산) 성장률이 -1%(전기 대비)에 가까운 수준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한국은행은 1분기 성장률을 -0.4~-0.6% 가량으로 전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은 예상보다 경기가 더욱 침체될 수 있다는 게 시장의 전망이다.

지난 2일 중간 경제전망을 발표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올해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9%에서 2.4%로 하향 조정했다. 그러면서 "코로나19가 더 오래 지속되고, 더 강력해진다면 세계 경제성장률이 당초 전망치의 반토막(1.5%) 수준으로 떨어질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금융시장 공포를 진정시키기 위해 3일 긴급 성명을 내고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전격 인하했다. 이에 따라 미국 기준금리는 1.00~1.25%가 됐다. 연준은 성명서에서 "미국 경제 펀더멘털은 여전히 강하지만, 코로나바이러스가 경제 활동에 점차 진화하는(evolving) 위험을 가하고 있다"면서 "이런 위험에 비춰, 완전고용과 물가 안정 목표 달성을 지원하기 위해 금리를 0.5%포인트 낮추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김현욱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한국은행의 금리동결 결정, 정부의 이번 추경 예산안 규모와 사업 구성 등은 코로나19 확산에 대한 국제기구나 다른 주요국들의 정책 대응에 비해 적극성이 떨어지는 느낌"이라며 "이번 추경안에도 불구하고, 시장에서는 2차 추경 등 추가적인 경기부양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강해질 것 같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