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건설사가 계열사를 대거 동원하는 방식으로 공공택지에 ‘벌떼 입찰’하는 편법이 올해도 횡행할 것으로 보인다. 공공택지 입찰 자격을 강화하겠다던 국토교통부가 이를 유지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김현미 국토부 장관은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벌떼 입찰이 횡행한다는 지적에 대해 "입찰 자격을 ‘3년간 700가구’로 높이는 제도개선 방안을 연내 마련하겠다"고 했었다. 현재 기준은 기존 ‘3년간 주택건설실적 300가구’다.

3기 신도시가 들어설 경기 고양시 창릉지구.

국토부는 택지개발촉진법 및 공공주택특별법 시행령 일부개정안을 오는 26일 입법예고한다고 25일 밝혔다. 개정안에는 △공급가 이하 택지 전매 허용범위 축소 △PFV(프로젝트금융투자) 전매 허용요건 강화 △제재처분 업체 공급 제한 △특별설계 공모 방식 공급 확대 등 내용이 담겼다.

개정안의 취지는 벌떼 입찰로 택지를 낙찰받은 뒤 모기업에 넘기는 경우의 수를 없애겠다는 것이다. 기존에는 택지 매입 2년이 지났거나 잔금을 납부하는 시점에 공급가 이하로는 전매할 수 있었다. 개정안은 잔금을 납부했더라도 전매를 못 하도록 했고, 예외적 경우만 LH가 재매입토록 했다. PFV 전매 제한 특례규정도 축소하고 폐지까지 검토한다고 했다.

하지만 대형 건설사들 사이에서는 알맹이가 빠진 개정안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김 장관이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제시한 제도개선 방안인 △주택건설 실적 요건 300가구→700가구 상향 △입찰한 건설사에 신용평가등급 요구 등 두 가지는 개정안에서 빠졌기 때문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실적 기준을 높이거나 신용평가등급을 요구하면 중소기업엔 과도한 진입장벽이 돼 경쟁을 제한할 우려가 있었다"고 했다. 이에 따라 LH는 올해 분양하는 공공택지에 기존처럼 ‘3년간 300가구’ 기준을 적용할 방침이다.

건설업계에선 개선안이 벌떼 입찰을 일부 줄일 수는 있어도 막지는 못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여전히 ‘1사 1필지’ 입찰이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애초 김 장관이 발표한 방안은 입찰사가 실제로 프로젝트를 수행할 자격을 갖추고 있는지 따지겠다는 것이었다. 입찰사 문턱을 높여 벌떼 입찰을 막는 구조다. 하지만 이번 개선안은 입찰 자격은 그대로 두고 전매만 막는 방식이다. 계열사가 벌떼 입찰로 낙찰받아 택지를 전매하지 않고 직접 시행을 맡아 모기업에 시공권을 주는 건 여전히 막을 수 없다.

대형 건설사 단체인 한국주택협회는 실적 요건을 500가구로 높이고, 자회사를 포함해 1개 회사만 응찰할 수 있도록 제도를 바꿔야 한다고 꾸준히 건의해 왔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대형 건설사들은 그룹사 전체 이미지를 고려하다 보니 편법적인 벌떼 입찰을 하지 않는데, 그러다 보니 당첨이 안 돼 공공택지사업을 제대로 못 하고 있다"면서 "공공택지에 중견 브랜드 아파트만 계속 들어서면 소비자 선택권이 제한되고 결국 국민만 손해를 보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했다.

실제 동탄신도시 등 공공택지엔 반도건설, 중흥건설, 호반건설 등 당시 중견사로 분류되던 건설사의 단지가 많다. 송언석 자유한국당 의원이 LH로부터 받은 ‘2008~2018년 공동주택용지 블록별 입찰 참여업체 및 당첨업체 현황’ 자료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LH가 공급한 473개 필지 중 호반건설과 중흥건설, 반도건설, 우미건설, 제일풍경채 등 5개 중견사가 142개 필지(30%)를 쓸어갔다.

반면 중소형 건설사 단체인 주택건설협회는 입찰 기준 강화가 대기업에만 유리하다며 기준 폐지를 주장해 왔다. 한 중견사 관계자는 "입찰 기준을 높이면 대형 건설사만 공공택지 사업을 독점하게 되고 대형사와 중견업체 간 양극화가 더 커진다"며 "일부 중소 건설사는 진입조차 하지 못하는 장벽이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호반건설과 반도건설, 중흥건설 등은 이미 중견사로 보기 어려울만큼 성장했다. 지난해 시공능력평가 기준으로 호반건설은 10위, 반도건설은 13위, 중흥토건은 17위에 각각 오른 상태다. 계열사까지 합해 평가할 경우 순위는 더 올라가게 된다.

전문가들은 택지 분양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지적한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추첨제 분양을 대폭 축소하고 설계 공모나 경쟁입찰 등 다른 방식으로 택지 분양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면서 "추첨제로 공급하더라도, 대규모 단지엔 좀 더 높은 실적 기준을 적용하고 소규모 단지엔 좀 더 낮은 기준을 적용하는 등 공급 방식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했다. 국토부의 이번 개정안에는 설계 공모를 기존보다 확대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