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현대차그룹 내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조직은 전략기술본부다. 현대·기아차의 미래전략을 그리는 곳으로 모빌리티·자율주행·스마트시티·로봇 등 미래기술을 관리하고 연구하고 있다. 최근 현대차가 발표한 미국 자율주행 전문 기업 앱티브와의 합작회사 설립도 이 조직이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왼쪽부터)지영조 본부장, 조대식 의장, 김동수 대표, 옥경석 사장, 박근희 부회장

전략기술본부를 이끄는 사람은 지영조 사장. 미국 브라운대 석·박사 출신으로 맥킨지, 액센추어 등 컨설팅 회사를 거친 지 사장은 2007년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마케팅 담당 전무로 입사해 기획팀장(부사장) 등 10년 가까이 일한 뒤 현대차로 옮겼다. 당시 삼성 내에서는 "기업 분위기가 워낙 다르기 때문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많았는데, 핵심 역할을 맡아 이직(離職) 2년 만에 사장으로 승진했다.

기업 평가 사이트 CEO스코어가 최근 국내 500대 기업 CEO들의 출신을 분석한 결과 2018년에는 외부 경력 CEO 비율이 24.3%였는데, 올해는 27.8%로 크게 늘었다. 외부 경력 CEO들을 출신별로 분류해보니 범삼성 출신이 26명으로 가장 많았다. 그다음으로 외국계 기업 출신(25명), 관료 출신(18명) 순이었다. 범현대 출신 CEO는 9명, 범LG 출신은 6명이었다. 현대·LG 출신을 합친 것보다 삼성 출신이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LG그룹이 지난해 미국 실리콘밸리에 설립한 기업형 벤처캐피털(CVC)인 LG테크놀로지벤처스를 이끄는 김동수 대표 역시 삼성 출신이다. 미국 프린스턴대에서 전자공학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삼성전자에 입사해 삼성벤처투자 미주지사장까지 지냈다. 재계에서는 "보수적인 LG그룹이 삼성 출신을 대표로 영입한 것은 상당히 파격적 인사"라는 평가를 받았다.

SK그룹의 최고 협의 기구인 수펙스추구협의회를 이끌고 있는 조대식 의장도 삼성 출신이다. 그는 SK그룹 지주회사인 SK㈜를 지금의 투자 전문 지주회사체제로 만들어놓은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2015년 반도체용 특수가스 생산 업체 OCI머티리얼즈(현재 SK머티리얼즈)를 인수했고, 2016년 SK바이오텍(의약품 생산 회사)을 100% 자회사로 만들어 바이오 제약 사업의 기틀을 세웠다.

재계에서는 그동안 '순혈주의' 문화가 강했던 한국 대기업이 '새로운 리더십 체제'로 전환됨에 따라 전문성을 갖춘 외부 인재 영입이 활발해지는 상황에서 '삼성맨'이 더욱 주목받고 있다고 분석했다. 황창규 KT 회장, 옥경석 한화 사장, 동현수 두산 부회장, 박근희 CJ대한통운 부회장, 조병익 흥국생명 사장, 최희문 메리츠종금증권 부회장, 김용범 메리츠금융지주 부회장, 김정환 롯데호텔 부사장 등이 대표적인 삼성 출신 CEO로 꼽힌다.

과거에는 20대 그룹 선에서 주로 삼성 출신을 영입했지만, 지금은 직접적인 경쟁관계에 있는 5대 그룹 내에서도 삼성 출신 임원 영입에 적극적이다. 헤드헌터 업체인 패스파인더의 김재호 대표는 "연말 인사철이 되면 삼성 퇴직 임원 중 괜찮은 사람을 추천해달라고 요구하는 기업이 상당히 많다"며 "삼성 임원이 되기 위해서는 치열한 내부 경쟁을 거쳐야 하고, 글로벌화·시스템화 등이 잘돼 있다 보니 그런 것을 배우려고 하는 다른 기업의 수요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