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도 지스타(G-Star)에 참가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관람객을 위한 ‘쇼’만 있고, 비즈니스가 이뤄지지 않아요. 중소게임사 입장에선 비용 낭비입니다."

2004년부터 게임업계에서 일하고 있는 A씨는 올해 지스타에 참가하지 않은 이유로 ‘실속’을 들었다. 국내 최대 게임 박람회인 지스타에서 올해 9㎡ 공간을 빌리고 기본 부스를 세우는 데 드는 비용은 190만원. 9㎡로는 책상 하나 놓기도 버거워, 그럴듯한 ‘체험공간’을 꾸릴려면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이 든다. 중소 게임업체 입장에선 큰 비용이다. A씨는 "실제 계약이 이뤄지지 않는 지스타를 찾기보단 중국 차이나조이나 일본 도쿄게임쇼를 찾는 게 낫다"고 했다.

11월 14일부터 17일까지 4일간 열린 지스타 2019 총 방문자는 24만4309명. 지난해보다 3.9% 늘어난 역대 최대치다. 그러나 B2B(기업간거래)관을 찾은 바이어는 2436명에 불과했다. 작년보다 약 12% 늘었지만 방문객 100명 중 ‘비즈니스’를 위해 찾은 사람이 고작 1명에 불과한 것이다.

올해 지스타에는 ‘3N’으로 불리는 국내 3대 게임업체 중 넥슨·엔씨소프트(NC)가 불참했다. 넥슨은 2005년 첫 지스타부터 개근해오며 매년 최대 규모 부스를 꾸린 업체다. 한때 지스타를 두고 ‘넥스타(넥슨+지스타)’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였지만 올해는 자리를 비웠다. 지스타 전야제격인 2019 대한민국 게임대상에선 ‘로스트아크’가 대상을 받았지만, 제작사인 스마일게이트는 지스타 B2C관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행사가 절정으로 치닫던 지난 16일, 기자가 찾은 지스타 B2B관은 한산한 모습이었다. 일반 관람객이 찾는 B2C관은 밀려드는 인파로 이동이 힘들 정도였지만, B2B 부스에선 몇몇 관계자들이 앉아 있을 뿐 열띤 ‘비즈니스 미팅’ 분위기는 감지할 수 없었다. 누구도 관심 없는 게임이 시연되고 있는 모습은 바로 옆 B2C관, 유튜버들에게 향하는 함성에 묻혀 더욱 처량해 보였다.

B2B 부스를 낸 게임 업체들도 신규 비즈니스보다는 기존 비즈니스 유지에 의의를 뒀다. 올해 B2B로 참가한 위메이드의 장현국 대표는 "새로운 손님보다는 기존 중국 파트너들과 사업을 강화하고 있다"며 "신규 게임을 제작하고 있는 중국 개발사 등이 방문했다"고 전했다.

지난 16일 부산 벡스코 지스타 2019 B2C 전시관(왼쪽)과 B2B 전시관(오른쪽). 인파가 몰리는 B2C관과 달리 B2B관은 한산하다.

계약이 이뤄지기 위해선 신작이 나와야 한다. 눈길을 끄는 신작이 지스타에서 공개되고, 신작을 체험한 바이어들이 수입 계약을 맺어야 B2B 부스가 의미를 가진다. 하지만 지스타에서 발표되는 신작은 해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지난해 부스를 도는 데 40분이 걸렸는데, 올해는 20분이면 끝나더라." 민용재 YJM게임즈 대표의 토로다.

올해 지스타에 불참한 넥슨은 부산 대신 영국 런던을 찾았다. 넥슨은 지스타가 개막한 지난 14일 런던에서 열린 마이크로소프트(MS) 엑스박스(Xbox) 팬 페스티벌 ‘X019’에서 신작 ‘카트라이더 드리프트(KartRider: Drift)’를 공개했다. 국내 최대 게임업체가 국내 대표 게임쇼를 외면하고, 해외에서 신작을 발표한 꼴이다.

눈길을 끄는 신작 게임이 줄어드니, 업계가 굳이 부산을 찾을 이유가 없다. 신작의 빈자리는 유튜버 등 방송인이 채웠다. 장현국 위메이드 대표는 "예전 지스타는 신작의 향연이었지만, 이젠 신작은 별로 없고 ‘행사가 많은 행사’가 됐다"며 "게이머들이 ‘보는 게임’을 선호하니 따라가야겠지만, 과거 지스타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겐 씁쓸한 일"이라고 했다.

‘놀이동산’식 행사는 생명력을 지니지 못한다. 산업 전시회의 근간은 기업이다. 사업이 이뤄져야 기업이 찾고, 기업이 찾아야 행사가 커진다. 사업이 성사되려면 바이어 유치가 필요하다. 역시 부산에서 열리는 부산국제영화제가 아시아 최고의 영화제로 우뚝 선 배경엔 아시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아시아필름마켓’이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2017년 기준 국내 게임 산업 매출은 13조1422억원, 영화 산업 매출은 42% 수준인 5조4946억원에 불과하다. 이젠 게임업계도 그 매출 규모에 걸맞은 ‘아시아 최고의 게임쇼이자 게임마켓’을 지녀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