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경남 창원시 진해구에 있는 스타코(STACO) 공장. 입구에 들어서자 어른 키 두 배 높이의 직사각형 구조물이 보였다. 가로 3m, 세로 6m, 높이 3.9m짜리로, 오피스텔 한 채를 통째로 뜯어다 놓은 모습이었다. 내부는 복층형 구조로, 간단한 집기만 들이면 당장 거주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였다. 단열재와 내화재로 둘러싸인 모듈 겉면에는 전기 배선과 상하수도 배관, 통신선이 가지런히 정리돼 있었다. 최영일 생산부 이사는 "현재 2개 동(棟), 69실(室)을 짓고 있는 용인 동천지구의 한 오피스텔 공사 현장에 공급한 것과 같은 종류의 모듈(module)"이라며 "건물 골조에 끼워넣은 뒤 배선과 배관 등을 건물과 연결하는 작업을 거치면 바로 사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스타코 관계자들이 제작한 오피스텔 모듈을 점검하고 있다.

이 모듈은 스타코 전문 기술자 6명이 투입돼 1주일간 만든 것이다. 벽체와 창문 등 형태를 만든 뒤 미리 주문 제작한 화장실과 주방, 계단 등을 차례로 조립했다. 바닥은 시멘트 마감 공사 대신 간단히 전기 패널만 붙이면 난방 등이 해결되도록 했다. 계단 아래 공간을 활용해 수납 공간도 마련했고, 드럼형 세탁기와 에어컨을 '빌트 인'으로 달았다. 보통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이뤄지는 내부 설치 작업을 모듈 제작 공장에서 대부분 마무리한 것이다. 모듈 한 개의 무게는 4t으로, 트럭에 실어 공사 현장으로 보낸다.

◇공장에서 미리 만드는 모듈 … 工期 최대 절반으로 단축

공장에서 미리 모듈을 만들고 공사 현장에서는 조립만 하는 '모듈러(modular) 건축'은 최근 건설업계 미래 성장동력으로 꼽히는 분야다. 모듈러 건축에는 골조에 모듈을 서랍처럼 끼워넣는 '인필(infill) 방식'과 모듈을 차곡차곡 쌓아 올리는 적층(積層) 방식이 있는데, 스타코는 인필 방식의 대표 업체다.

이상돈 스타코 사업총괄 전무는 "모듈러 건축은 공기(工期)를 일반 방식보다 20%에서 최대 50%까지 단축할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장에서 기초 및 구조공사를 할 때 공장에서 모듈 제조가 동시에 이뤄지기 때문이다.

경기도 용인시 ‘모듈러 오피스텔’ 공사 현장. 방과 거실, 주방과 화장실 등을 한데 모은 상자형 모듈을 건물 골조에 끼워 넣고 있다. 최근 건설업계에선 공장에서 미리 제작한 상자형 모듈을 공사 현장에서 조립해 설치만 하는 형태의 ‘모듈러 건축’이 미래 성장 동력으로 꼽히고 있다.

크루즈선 객실을 제작하던 스타코는 10여년 전부터 모듈러 건축으로 사업 영역을 넓혔다. 중국 항저우와 쑤저우 호텔에 100~300개 모듈을 공급했다. 인천국제공항 제2터미널에 들어선 캡슐형 호텔 '다락 휴(休)' 모듈도 스타코 제품이다. 이 전무는 부산 강서구 신호산단에 있는 10층짜리 모듈러 오피스텔 건물을 소개하며 "층간, 벽간 소음이 일반 건축 방식 주택보다 적고, 벽체 사이에 공간이 있어 단열 효과도 높다"고 말했다.

배규웅 한국건설기술연구원(KICT) 중고층 모듈러 건축 연구단장은 "모듈러 건축은 지상 작업을 통해 대부분 만들기 때문에 건설 안전사고를 줄이는 데도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건설 사고로 매년 500명 정도가 목숨을 잃는데, 상당수가 추락 사고 사망자다. 건물을 해체할 경우 모듈을 재사용할 수 있어 건설 폐기물 발생도 크게 줄일 수 있다.

◇해외선 40층 넘는 고층 건물도 모듈러 방식으로

국내에선 2017년 서울 가양동을 시작으로 지난 8월 천안 두정동 등에서 공공주택을 모듈러 방식으로 건설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모듈을 쌓는 방식이 갖는 안전 등에서의 문제점 때문에 6층 이하 저층 건물에서 대부분 이뤄졌다. 따라서 수십 가구 공사에만 적용되다 보니 단위 면적당 공사비가 일반 주택보다 높아 확산에 한계도 있었다. 하지만 최근엔 건설기술연구원 등에서 10층 이상의 건물에서도 적용할 수 있는 신기술 개발에 착수한 상황이다.

해외에선 모듈러 건축 시장이 팽창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지온마켓리서치는 글로벌 모듈러 건축 시장 규모가 지난해 1112억달러(133조원)에서 2023년 1751억달러(209조원)로 매년 6% 이상의 증가세를 보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해외에선 미국 뉴욕의 'B2' 빌딩(32층), 호주 멜버른의 '라 트로브 타워', 영국 런던 '조지 로드 타워'(44층) 등 고층 건물에도 적용되기 시작했다. 한승헌 한국건설기술연구원장은 "모듈러 건축은 대표적인 3D 업종으로 불리는 건설산업을 안전하고(safe) 지속가능하고(sustainable) 스마트(smart)한 '3S' 업종으로 변신시킬 핵심 기술"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