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 정기세일이 사라지면 굳이 안 올 것 같아요. 온라인에서 사면 되는걸요. 세일한다고 하면 구경이라도 오는데, 정기세일이 없어지면 일부러 찾아올까요?" -직장인 이수지(28)씨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가 유통업계 판촉 행사와 관련한 심사지침 개정을 추진하면서 백화점들의 정기세일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소비자들은 정기세일이 사라지면, 더욱 백화점을 찾지 않게 될 것이라며 싸늘한 반응을 보였다.

4일 오전 서울 용산구 아이파크몰에서는 가을 정기세일이 한창이었지만, 매장은 한산한 편이었다.

공정위는 오는 31일 ‘대규모 유통업 분야의 특약매입거래에 관한 부당성 심사 지침’을 3년 연장할 예정이다. 문제는 여기에 백화점, 아웃렛 등 대규모유통업자가 할인 행사를 진행하면 최소 50% 이상의 비용을 분담하는 내용이 추가된 것이다.

그간 할인행사에 따른 비용 중 약 10%를 백화점이 부담하고 나머지는 입점 브랜드가 부담해 왔다. 예컨대 정가 20만원짜리 원피스를 10만원에 팔 경우 할인된 비용 10만원 중 절반인 5만원을 백화점이 부담해야 한다는 의미다. 지금까지는 백화점이 1만원만 부담하면 됐다.

백화점들은 공정위의 심사 지침 규정대로라면 할인행사를 더는 진행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할인행사에 따른 집객 효과보다 손해가 크기 때문이다. 백화점 협회에 따르면, 공정위 지침에 따라 할인 비용 절반을 부담하면 연간 영업이익이 25%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기세일을 없앨 경우는 영업이익의 7~8% 감소에 그친다. 브랜드들도 별다른 판촉비용 없이 할인행사를 통해 재고를 소진해 왔는데, 이번 정부 대책으로 매출 감소를 우려하는 분위기다.

◇ 정기세일에도 싸늘한 소비자들… "차라리 온라인서 구매"

4일 오전 찾은 서울 용산구 아이파크몰은 가을 정기 세일기간이었지만, 한산한 편이었다. 여성복 매장은 서 너 곳중 한 곳꼴로 손님이 있었고, 겨울 의류, 아동복을 70% 할인하는 이벤트 홀에도 손님이 거의 없었다. 동작구에 사는 연수정(34)씨는 "정기 세일 기간이라지만 저렴한 편은 아닌 것 같다"라며 자리를 떴다.

백화점 정기세일이 사라질 경우에 관해 묻자 연령층에 따라 의견이 크게 갈렸다. 중장년층은 백화점 정기세일이 사라지면 상품 구매가 어려워질 것이라고 우려하며 아쉬움을 내비치는 반면, 젊은 층은 기존 할인행사에도 관심이 없다는 의견이 다수였다.

한 달에 세 번 정도 백화점을 찾는다는 권애자(56)씨는 "백화점 할인행사 알림이 오면 가서 쇼핑하는 편인데, 정기 세일이 사라지면 백화점에서 구매를 거의 하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고, 이연주(53)씨도 "백화점 가기가 부담스러워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손님들은 상품을 70% 할인하는 이벤트홀에도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젊은 층은 기존에도 백화점 쇼핑을 거의 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강혜연(31)씨는 "상품 질에서 큰 차이가 나지 않아 아웃렛을 가거나 해외 직구를 한다"며 "세일하지 않으면 온라인으로 더욱 많이 구매할 것"이라고 했다. 직장인 조은혜(27)씨는 "이제는 정기할인이라는 말에 감흥도 없다. 주변에서 백화점에서 상품을 구매하는 사람을 거의 못 봤다"고 했다.

◇ 백화점 "코리아세일페스타 어쩌나"...패션업계도 촉각

소비자들의 차가운 태도에 백화점들은 생존의 위협을 느끼고 있다. 당장 11월에 진행되는 코리아세일페스타와 연말 정기 세일도 걱정이다.

특히 중소중견 백화점은 더욱 걱정이 크다. 대형 백화점은 자금에 더 여유가 있어 할인행사를 진행할 수도 있지만, 중소중견 백화점들은 자금이 없어 할인행사가 어려워질 것이라는 예상에서다.

한 백화점 업계 관계자는 "롯데, 현대, 신세계 등 ‘빅3 백화점’은 자금이 있어 그렇게라도 할인행사를 진행한다 해도, 우리는 아예 할인행사를 진행하지 못할 수도 있다"며 "오프라인 매장이 어려워지고 있는데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다"고 한숨을 쉬었다.

패션업계는 당장 제도변화에 환영의 뜻을 밝히면서도 백화점이 정기세일을 하지 않으면 타격이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국패션산업협회 관계자는 "제도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바라보지만 제도 시행으로 백화점이 정기세일을 없애거나 축소한다고 하면 집객 효과가 사라지고, 매출이 떨어질 수 있어 걱정이 크다"고 말했다.

또다른 패션업계 관계자는 "백화점, 아웃렛 등이 할인을 강요하기 보다는 브랜드 자체적으로 할인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재고 소진이 돼야 현금이 돌기 때문에 브랜드들도 시기에 맞춰 할인하고 싶어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이에 대해 공정위 측은 대규모유통업법 제11조(납품업자의 판촉 비용 분담 비율 50% 초과 금지)에 이미 규정돼 있는 사항이고, 세일을 못 하게 하는 정책이 아니라면서 ‘당연한 규정’이라는 입장을 보였다.

신동열 공정위 유통정책관실 유통거래과장은 "백화점과 브랜드 모두 이익을 보는 가운데, 비용을 양측이 나눠 부담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원칙"이라며 "제도 때문에 할인 행사를 못할 이유가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행정예고를 한 뒤 여러군데 의견수렴을 했고, 의견 수렴 기간이 지났지만 앞으로도 계속 검토할 것"이라며 "최종안을 만들어서 10월 31일부터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