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말 두산중공업은 연봉 인상을 올 연말로 5개월 넘게 연기했다. 회사는 '인상분을 소급 적용해 줄 것'이라고 했지만, 원전 업계의 경영난이 얼마나 심각한지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26일(현지 시각) 한국형 원전(APR1400)이 미 원자력규제위원회(NRC)의 설계인증(DC)을 획득했지만, 한국전력 한국수력원자력과 함께 이 원전을 공동 개발한 두산중공업은 별다른 축하 행사도 하지 않았다. 그 흔한 플래카드도 걸리지 않았다. 회사 관계자는 27일 "당장 내년부터 원자로 등 원전 주(主) 기기 일감이 끊기기 때문에 미래를 걱정하는 무거운 분위기"라고 했다.

국내 원전산업 생태계는 붕괴 위기에… ‐ 한국형 원전(모델명 APR1400)이 미 원자력규제위원회(NRC)의 설계인증(DC)을 취득하며 세계 최고 수준의 안전성을 인증받았다. 하지만 국내 원전산업계는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생사의 기로에 처해 있다. 사진은 지난 5월 경남 창원시 봉암공단에 있는 원전 부품 업체 A사 공장의 한산한 모습.

비(非)미국 업체론 최초로 미 NRC 인증을 받으며 세계 최고 수준의 안전성을 인정받았지만, 국내에선 '탈(脫)원전' 정책으로 일감이 끊기면서 원전 산업 생태계가 붕괴 위기다.

밖에선 '최고' 인증… 국내선 최악 위기

두산중공업은 지난해 직원 250여 명을 두산인프라코어, ㈜두산 등 관계사로 전출시켰고, 올해는 전체 직원 6000여 명 가운데 과장급 이상 사무직 2400여 명에 대해 2개월간 순환 휴직을 실시했다. 이 같은 자구(自救) 노력에도 두산중공업의 경영 여건은 좀체 개선되지 않고 있다. 원전·화력발전·담수플랜트 설비 등이 주축인 이 회사의 작년 수주 실적은 탈원전 이전인 2016년의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정재훈(오른쪽) 한수원 사장이 26일(현지 시각) 미국 워싱턴의 원자력규제위원회(NRC) 본부에서 애니 카푸토 NRC 위원으로부터 설계인증서를 받고 있다.

정용훈(원자력·양자공학과) 카이스트 교수는 "미 NRC 인증 획득은 한국형 원전이 세계 최고 수준의 안전성을 갖췄다는 걸 증명하는 것"이라며 "그럼에도 국내에선 '원전이 위험하다'는 정치 논리 때문에 원전 산업계가 붕괴되고 있는 모순적 상황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10여년간 2300억 들여 독자 개발

NRC의 설계인증(DC)은 미국 정부가 APR1400의 미국 내 건설·운영을 허가하는 일종의 안전 확인 증명서다. APR 1400 원전이 설계인증을 취득했다는 것은 이 원전을 미국 내에서 건설·운영할 수 있게 됐음을 의미한다. 한국형 원전을 미국에 수출하게 된다면, 건설 부지의 특성에 따른 안전성만 통과하면 된다. 미국에서 APR1400 원전 인증은 15년간 유효하고 최대 15년 연장할 수 있다.

APR1400 원전은 기존 한국형 원전인 'OPR1000'을 개량한 차세대 원전으로, 한전, 한수원, 두산중공업 등이 1992년부터 약 10년간 2300억원을 들여 공동 개발했다. 방사성 물질이 대량 유출됐던 일본 후쿠시마 원전과 같은 사고를 원천 봉쇄한 모델이기도 하다. 두산중공업 관계자는 "APR1400은 대형 참사로 이어진 일본 후쿠시마 원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안전성이 강화된 모델"이라며 "후쿠시마 원전은 격납 건물 두께가 약 10㎝였지만, 우리 원전은 120㎝ 이상을 적용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