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말 두산중공업은 연봉 인상을 올 연말로 5개월 넘게 연기했다. 회사는 '인상분을 소급 적용해 줄 것'이라고 했지만, 원전 업계의 경영난이 얼마나 심각한지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26일(현지 시각) 한국형 원전(APR1400)이 미 원자력규제위원회(NRC)의 설계인증(DC)을 획득했지만, 한국전력 한국수력원자력과 함께 이 원전을 공동 개발한 두산중공업은 별다른 축하 행사도 하지 않았다. 그 흔한 플래카드도 걸리지 않았다. 회사 관계자는 27일 "당장 내년부터 원자로 등 원전 주(主) 기기 일감이 끊기기 때문에 미래를 걱정하는 무거운 분위기"라고 했다.
비(非)미국 업체론 최초로 미 NRC 인증을 받으며 세계 최고 수준의 안전성을 인정받았지만, 국내에선 '탈(脫)원전' 정책으로 일감이 끊기면서 원전 산업 생태계가 붕괴 위기다.
◇밖에선 '최고' 인증… 국내선 최악 위기
두산중공업은 지난해 직원 250여 명을 두산인프라코어, ㈜두산 등 관계사로 전출시켰고, 올해는 전체 직원 6000여 명 가운데 과장급 이상 사무직 2400여 명에 대해 2개월간 순환 휴직을 실시했다. 이 같은 자구(自救) 노력에도 두산중공업의 경영 여건은 좀체 개선되지 않고 있다. 원전·화력발전·담수플랜트 설비 등이 주축인 이 회사의 작년 수주 실적은 탈원전 이전인 2016년의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정용훈(원자력·양자공학과) 카이스트 교수는 "미 NRC 인증 획득은 한국형 원전이 세계 최고 수준의 안전성을 갖췄다는 걸 증명하는 것"이라며 "그럼에도 국내에선 '원전이 위험하다'는 정치 논리 때문에 원전 산업계가 붕괴되고 있는 모순적 상황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10여년간 2300억 들여 독자 개발
NRC의 설계인증(DC)은 미국 정부가 APR1400의 미국 내 건설·운영을 허가하는 일종의 안전 확인 증명서다. APR 1400 원전이 설계인증을 취득했다는 것은 이 원전을 미국 내에서 건설·운영할 수 있게 됐음을 의미한다. 한국형 원전을 미국에 수출하게 된다면, 건설 부지의 특성에 따른 안전성만 통과하면 된다. 미국에서 APR1400 원전 인증은 15년간 유효하고 최대 15년 연장할 수 있다.
APR1400 원전은 기존 한국형 원전인 'OPR1000'을 개량한 차세대 원전으로, 한전, 한수원, 두산중공업 등이 1992년부터 약 10년간 2300억원을 들여 공동 개발했다. 방사성 물질이 대량 유출됐던 일본 후쿠시마 원전과 같은 사고를 원천 봉쇄한 모델이기도 하다. 두산중공업 관계자는 "APR1400은 대형 참사로 이어진 일본 후쿠시마 원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안전성이 강화된 모델"이라며 "후쿠시마 원전은 격납 건물 두께가 약 10㎝였지만, 우리 원전은 120㎝ 이상을 적용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