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해배상 소멸시효 지나 은행들은 배상 안해도 되지만
키코 사건 금융 적폐로 규정한 여권 압박에 고심 거듭

외환파생상품 '키코(KIKO)' 사건에 대한 금융감독원의 분쟁조정안이 7월 중순쯤 나온다. 금융당국 안팎에서는 금감원이 키코 상품 판매를 불완전판매로 보고 피해액의 20~30%를 배상하라는 권고안을 낼 것으로 보고 있다.

30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금감원은 7월 9일이나 16일에 분쟁조정위원회를 개최해 키코 사태 재조사 결론을 낼 예정이다.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이 지난해 7월 취임하면서 키코 사태 재조사에 착수한 지 딱 1년 만이다.

키코는 환율이 일정 범위 안에서 움직이면 약정한 환율에 외화를 팔 수 있는 외환파생상품이다. 수출 중소기업이 은행들의 권유로 환 헤지를 위해 대거 가입했다가 2008년 금융위기 때 큰 피해를 봤다. 당시 732개 기업이 3조3000억원 정도의 피해를 본 것으로 집계됐다. 피해 기업들이 은행들을 상대로 대거 소송을 제기했고, 대법원은 2013년 키코 계약은 문제가 없지만 상품의 위험성을 제대로 알리지 않은 것은 문제라고 판결을 내렸다.

이번에 금감원이 재조사에 나선 기업은 모두 4곳이다. 일성하이스코와 남화통상, 원글로벌미디어, 재영솔루텍 등으로 지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분쟁조정이나 소송을 거치지 않은 곳들이다. 피해금액은 총 1500억원 정도에 달한다.

금융당국 안팎에서는 금감원이 피해기업 손실의 20~30% 정도를 은행에 배상시키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 중인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20~30%는 기준점이고 은행이 피해기업에 상품 위험성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다면 배상액은 더 늘어날 수 있다. 은행의 배상액은 대략 총 400억원 정도에서 결정이 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다.

은행들은 난감한 상황이다. 키코 사건은 손해배상에 대한 소멸시효(손해 발생일로부터 10년)가 완성됐기 때문에 금감원의 결론과 상관없이 은행이 피해기업에 배상을 할 책임이 없다. 더군다나 이번에 어떤 결론이 내려지느냐에 따라 전선이 확대될 가능성도 있다. 이번에 분쟁조정 신청을 한 기업 외에도 150여개 기업이 키코 피해에 대한 소송이나 분쟁조정을 거치지 않았다.

금융권 관계자는 "이들 기업의 피해액을 모두 합치면 4000억원에 달한다는 분석도 있다"며 "은행 입장에서는 분쟁조정에 나선 4개 기업 말고 뒤에 있는 150개 기업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2018년 4월4일 서울 중앙지방검찰청 앞에서 열린 '키코(KIKO) 사기사건' 검찰 재고발 시민사회단체 기자회견.

지난해 즉시연금 사태 때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금감원 분쟁조정위원회가 즉시연금 과소지급 1건에 대해 지급하라는 권고를 내렸고, 삼성생명(032830)은 이를 받아들였다. 그러자 그 뒤에 5만5000여건에 대한 일괄지급 요구가 이어졌고, 삼성생명을 이를 거부하면서 사태가 커졌다.

삼성생명의 전례를 지켜본 은행들이 금감원의 분쟁조정안을 거부할 가능성이 큰 이유다. 다만 금감원뿐 아니라 여권에서도 은행들을 압박하고 있기 때문에 적당한 선에서 타협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금감원이 키코 문제를 들고 나온 것 자체가 윤 원장 개인의 소신보다는 여권의 요구를 금감원이 대신 수행하는 차원이 크다. 더불어민주당 적폐청산위원회는 2017년 키코 사건을 '금융 3대 적폐'로 규정한 바 있다. 이후 금융위가 금융권 적폐 해결을 위해 만든 금융행정혁신위원회에서도 키코 피해 구제를 혁신안의 하나로 제시한 바 있다.

키코에 대해 "문제가 없다"는 식으로 언급해온 금융당국 고위 관계자들도 최근 말을 바꾸거나 업무에서 제척되고 있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지난 10일 "키코가 분쟁조정 대상이 되는지 의문"이라고 했다가 논란이 되자 "피해기업과 은행들이 모두 받아들일 수 있는 안이 나오면 좋겠다"고 한 발 물러섰다.

금감원 분쟁조정위원회를 이끄는 이상제 금감원 소비자보호처장(부원장)도 최근 키코 분조위 업무에서 제척당했다. 이 부원장은 금융연구원에서 일할 때인 2008년 10월 국정감사에 출석해 "키코는 공정한 계약"이라고 말한 바 있다. 당시의 발언 때문에 이 부원장은 최근 키코 분조위 업무에서 제척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