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마운트시나이 의대의 로스 케이건 교수 연구진은 지난 22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스'에 노랑초파리를 이용해 대장암 환자에게 꼭 맞는 치료제 조합을 찾아냈다고 발표했다. 초파리는 환자에게만 나타나는 돌연변이 유전자들을 갖고 있었다. 말하자면 초파리가 암 환자를 대신해 약물의 임상시험을 진행한 셈이다.

'아바타(avatar·분신)' 실험동물이 맞춤형 암 치료를 실현하고 있다. 동물에게 암 환자가 가진 유전자나 암세포를 주입하고 이를 이용해 환자 맞춤형 치료법을 개발하는 방식이다. 생쥐에서 시작한 아바타 연구는 최근 어류인 제브라 피시에 이어 곤충인 초파리에게까지 확대되고 있다.

초파리가 최적의 항암제 조합 찾아내

케이건 교수팀은 53세 대장암 말기 환자의 유전자를 분석해 암과 관련된 핵심 돌연변이 9군데를 찾아냈다. 이어 초파리의 유전자에서 암 환자의 돌연변이를 똑같이 재현했다. 연구진은 이렇게 만든 아바타 초파리 30만 마리를 이용해 약물 121종을 시험했다. 그 결과, 시판 중인 피부암 치료제와 골다공증 치료제의 조합이 가장 효과가 컸다.

환자에게 두 가지 약물을 처방하자 암세포가 45%까지 줄었다. 암세포는 11개월까지 줄어든 상태로 유지됐다. 실험 대상이 한 사람뿐이고 비교 대상도 없지만 아바타 실험동물을 이용한 맞춤형 치료가 가능함을 입증한 성과로 학계에서 인정받았다.

과학자들은 1960년대부터 사람의 암세포를 생쥐에게 주입해 맞춤형 치료제를 연구했다. 암세포의 유전자에서 워낙 돌연변이가 많이 일어나 같은 항암제도 사람마다 효과가 다르게 나타나는 경우도 많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환자의 암세포를 실험실에서 배양한 다음 생쥐의 몸에 주입하는 방식을 썼다. 배양세포는 몇 년 동안 계속 키울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배양세포가 세대를 거듭하면서 유전자가 달라진다는 사실이 속속 드러났다. 동물실험에서는 효과가 있던 항암제가 사람에게는 듣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는 것도 이 때문이었다.

하버드대의 마누엘 히달고 교수는 2002년 환자의 암세포를 채취해 생쥐에게 바로 주입하는 '환자 유래 암조직 이종이식(patient-derived tumor xenografts·PDX)'으로 기존 아바타 생쥐의 한계를 극복했다. 그는 나중에 챔피언 온콜로지라는 회사도 차렸다. 환자의 암세포를 보내면 그에 맞는 아바타 생쥐를 만들어 최적의 치료제 조합을 찾아주는 서비스를 하고 있다. 아바타 생쥐로 예측한 치료제 조합은 실제 환자에게서 87% 효과를 보였다.

국내 업체들도 아바타 동물 뱅크 운영

국내에서도 PDX 방식의 아바타 생쥐를 개발하고 있다. 남도현 삼성서울병원 난치암연구사업단장은 2013년 뇌종양 환자의 암세포를 생쥐에게 이식해 실제 환자와 암 치료 효과가 흡사하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길병원 연구진도 2017년 대장암 환자의 암세포를 이식한 아바타 생쥐를 개발했다.

디엔에이링크의 이종은 대표는 "다양한 암 환자의 조직으로 만든 아바타 생쥐 뱅크를 운영 중"이라면 "항암제를 개발하는 제약사가 주고객"이라고 말했다. 최은정 우정바이오 연구소장도 "한국인이 잘 걸리는 췌장암·난소암·유방암을 대상으로 아바타 생쥐 뱅크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차세대 아바타 동물도 등장했다. 생쥐는 사람과 유전자가 비슷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실험할 정도로 자라는 데 몇 개월이 걸리는 단점이 있다. 그만큼 비용도 많이 든다. 초파리는 유전자 유사성이 낮지만 10일이면 실험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손가락만 한 어류인 제브라 피시도 2~3주면 실험이 가능하다. 스페인 연구진은 2017년 대장암 세포를 이식한 아바타 제브라 피시로 환자의 암 재발을 정확하게 예측했다. 남도현 단장은 "아바타 실험동물이 환자의 유전자, 단백질 분석 결과와 같은 빅데이터(대용량 정보)와 결합하면 환자 맞춤형 치료가 더욱 발전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