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가까이 서울로 출퇴근하며 교통 체증에 시달렸고 집값도 안 올랐지만 '좋아질 거다'라는 정치인들 말을 믿고 버텼습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서울과 더 가까운 곳에 신도시를 만들고 철도까지 놓는다니, 배신감을 느낍니다."

파주시·고양시 등 경기 북부 주민 400여명이 12일 저녁 경기 파주시 와동동에서 3기 신도시 건설 정책에 반대하는 촛불 집회를 열고 있다. '3기 신도시 반대' '김현미(국토교통부 장관)·이재준(고양시장) 아웃' 등의 구호가 터져 나왔다.

12일 저녁 경기 파주시 와동동 운정행정복지센터 맞은편에서 열린 촛불 집회에 참석한 직장인 김모(48·일산 거주)씨는 "평소 정치에 별 관심 없었지만 이번에는 도저히 참을 수 없어 뛰쳐나왔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날 집회에는 파주시, 고양시 주민 400여 명이 몰렸다. 이들은 '3기 신도시 반대' '김현미(국토교통부 장관)·이재준(고양시장) 아웃' 등의 구호를 외치고 서명 운동도 했다.

서울 집값을 잡기 위해 정부가 수도권 5곳에 3기 신도시를 조성하겠다고 밝힌 후 주변 지역 주민들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 1·2기 신도시도 제대로 자리 잡지 않았는데 서울과 더 가까운 곳에 신도시를 지으면 기존 신도시 주민만 피해를 본다는 주장이다. 일부 주민은 단체 민원, 집회 등 집단행동에 나섰다. 이런 와중에 3기 신도시 관련 광역교통 대책을 둘러싸고 정부 부처 간 이견까지 노출되면서 주민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3기 신도시 반대' 확산하는 파주·일산

지난 7일 국토부가 고양 창릉지구를 3기 신도시에 추가한다고 발표한 후 고양시와 파주시 지역 주민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반대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파주 운정(2기), 고양 일산(1기) 등 기존 신도시 주민들의 반발이 거세다. 정부 발표 직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3기 신도시 고양 지정은 일산신도시에 사망 선고, 대책을 요구합니다'라는 글에는 5일 만에 1만5000명 가까운 사람이 동의했다. 고양시의 창릉 공공주택지구 지정 공고에 대한 반대 의견을 제출하는 법이나 김현미(일산서구 국회의원) 장관 및 이재준 시장에게 항의 문자를 보내는 방법도 인터넷 카페 및 채팅방을 통해 퍼져나가고 있다. 일산과 운정신도시 주민들은 오는 18일 2차 촛불 집회도 열 예정이다.

◇이 판국에… 예타 면제 두고 국토부·기재부 '딴말'

이런 와중에 3기 신도시 교통망 확충을 둘러싸고 정부 부처 간 엇박자를 내고 있어 주민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국토부는 지난 9일 고양 창릉지구 광역교통대책의 핵심인 고양선과 관련해 "정부 재정이 투입되지 않기 때문에 예비타당성조사(예타)가 필요 없다"고 밝혔다. 고양선은 서울 지하철 6호선과 고양시청을 잇는 철도망이다. 건설 비용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신도시 입주 예정자들로부터 거둬들이는 광역교통 개선 부담금 100%로 충당할 계획이다. 사업비는 1조5000억원 안팎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예타 주무부처인 기획재정부는 다음 날 "시행사인 LH가 공공기관이기 때문에 재정이 투입되지 않더라도 예타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반박했다. 그러자 1조원 넘는 사업을 추진하면서 부처 간 사전 조율도 안 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반나절 만에 국토부와 기재부가 공동으로 "고양선 사업이 빠르게 추진될 수 있도록 긴밀히 협의해 나갈 계획"이라는 입장을 내며 사태는 봉합됐지만, 추후 사업 계획 수립 과정에서 예타 면제를 둘러싼 갈등이 재현될 불씨는 남아있다.

◇'교통 지옥' 2기 신도시 교통 문제는 언제 해결해주나

국토부가 광역교통망 예타까지 면제하며 3기 신도시를 서두르겠다고 밝히자, 2기 신도시 입주민들은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고 있다. 수도권 2기 신도시 10곳 중 판교와 광교 두 곳을 제외한 8곳은 계획됐던 주요 교통망 대부분 첫 삽조차 뜨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위례신도시는 입주 6년 차에 접어들었지만 계획했던 교통망 4개 모두 지지부진하다. 위례에서 강남을 관통해 신사역까지 연결되는 위례~신사 경전철은 추진 10년 만인 작년 10월에야 민자적격성조사를 통과했다. 김포한강신도시의 핵심인 김포도시철도는 작년 11월 개통 예정이었지만 올해 7월로 미뤄졌다. 양주옥정지구는 여의도, 광화문 등 주요 업무 지구로 가는 광역버스조차 없다. 고준석 동국대 겸임교수는 "3기 신도시는 예타를 면제하는 등의 방식으로 교통 문제를 해결해주면서 기존 2기 신도시 입주민들 사이엔 '10년이 넘도록 진척이 없다'는 아우성이 이어지고 있는 게 현실"이라며 "정부는 2기와 3기 신도시 주민들 사이에 형평성 논란이 없도록 정밀한 대책을 내놔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