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수 리더십 부재(不在)로 흔들리는 대한항공(003490)아시아나항공(020560)의 경영환경이 급격히 악화되고 있다. 최근 국제유가 상승으로 항공유 수입 부담이 증가한 데다, 원화마저 약세를 보이기 때문이다.

양대 국적 항공사인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주로 달러 차입금을 활용해 항공기를 구매하거나 임대하기 때문에 환율에 따른 실적 변동이 큰 편이다. 두 회사 모두 수조원 규모의 차입금을 안고 있어 원화 약세가 계속될 경우 재무구조가 급격히 악화할 수밖에 없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여객기.

◇원·달러 환율, 2년 3개월 만에 최고치…국제유가는 올해 들어 45% 상승

지난 25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미국 달러에 대한 원화 환율은 전날보다 9.6원(0.8%) 오른 1160.5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4월 2일 1056.6원을 기록한 것을 고려하면 1년여 만에 환율이 100원 넘게 오른 것이다.

일별 기준으로 미국 달러화에 대한 원화 환율이 1160원을 넘어선 것은 지난 2017년 1월 31일 이후 2년 3개월 만에 처음이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항공기 도입과 원유 수입 등을 주로 달러화로 결제하기 때문에 외화부채가 많다. 따라서 달러화 강세, 원화 약세 흐름이 이어지면 외화환산손실의 규모는 빠르게 증가할 수밖에 없다.

증권업계에 따르면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이 10원 상승하면 대한항공은 약 250억원, 아시아나항공은 200억원의 외화환산손실을 보는 것으로 추정된다. 1년 만에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이 100원 이상 오른 점을 고려하면 두 회사 모두 2000억원 넘는 손실을 보게 된 셈이다.

지난해 1월 이후 미국 달러화에 대한 원화 환율 추이(단위 : 원)

국제유가도 올해 들어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미국 정부가 이란에 대한 제재로 이란산(産) 원유의 수입금지 조치의 한시적 예외를 허용하지 않겠다고 밝히면서 유가는 가파른 오름세를 보였다.

지난 24일(현지시각)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거래되는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가격은 전날보다 0.6% 내린 배럴당 65.89달러로 거래를 마쳤다. 미국의 원유 재고량이 예상치를 넘어섰다는 소식에 전날보다 가격이 소폭 하락했지만, 배럴당 45달러 수준에서 움직였던 지난해 말에 비하면 45% 이상 상승한 가격이다.

유가 상승으로 인해 항공유의 가격도 최근 오름세다. 국제항공운송협회(IATA)에 따르면 주요 항공유 중 하나인 제트연료의 가격은 지난 18일 배럴당 84.69달러로 마감, 최근 한 달 만에 5.1% 상승했다.

올해 들어 거듭된 악재로 주요 증권사들 역시 두 항공사의 실적이 지난해보다 악화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한화투자증권은 대한항공의 1분기 영업이익이 지난해 1분기보다 13% 감소한 1445억원에 그칠 것이라고 예상했다. 순이익 부문은 원화 약세에 따른 외화환산손실 1800억원이 반영돼 적자전환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리더십 흔들리는 양대 국적항공사…경기둔화 겹쳐 실적 ‘빨간 불’

대한항공은 1999년부터 20년간 회사를 이끌어 왔던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지난 8일 별세했고 아시아나항공은 최근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그룹 회생을 위해 매각을 선언했다.

지난 16일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엄수된 고(故)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영결식에서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가운데)이 침통한 표정으로 선친의 영정을 따르고 있다.

오랜 기간 총수를 중심으로 한 경영활동을 지속해 온 두 국적항공사들은 갑작스러운 리더십 부재로 여러 대외악재 속에서 의사 결정에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조양호 회장의 장남인 조원태 사장은 지난 24일 한진그룹 회장으로 취임했다. 그러나 그룹의 지주회사인 한진칼의 경영권을 놓고 조원태 회장은 국내 행동주의 사모펀드인 KCGI가 치열한 힘겨루기를 벌이고 있어 아직 선친과 같은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아시아나항공은 새 주인을 찾을 때까지 한창수 사장이 이끌게 된다. 산업은행을 비롯한 채권단이 매각 주관사로 크레디트스위스(CS)증권을 선정해 본격적인 매각 절차에 들어간 이상 전문경영인인 한 사장이 역할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대형항공사인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이미 저비용항공사(LCC)에 중·단거리 여객 수요를 빼앗겨 경쟁력이 약화됐다"며 "여기에 반도체를 비롯한 여러 업종의 경기마저 빠르게 둔화하고 있어 화물 부문의 실적 개선도 어려워지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