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라앉은 듯 했던 정정 불안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국내 건설사들의 중동과 북아프리카 지역의 수주 시계(視界)가 흐려졌다.

정부가 재건 사업에 박차를 가하며 해외 건설사들을 끌어모으던 리비아에선 내전이 재발할 가능성이 불거졌고, 휴전 상태였던 시리아에서도 정부군과 반군이 무력 충돌한 탓이다. 올해 해외 사업 수주에 드라이브를 걸 계획이던 국내 건설사들은 지역 정세에 촉각을 기울이고 있다.

리비아 수도 트리폴리에서 서쪽으로 40㎞ 떨어진 자위야의 정유공장 설비. 리비아 정부는 원유 수출량을 다시 끌어올리기 위해 노력 중이다.

아프리카 최대 원유보유국이자 세계 10위권 산유국에 속하던 리비아는 국내 건설사들이 활발하게 문을 두드리던 시장이었다. 2011년 ‘아랍의 봄’으로 리비아 카다피 독재 정부가 전복되고 내전이 장기화하면서 국내 건설사들은 진행 중이던 사업을 중단했고, 2014년 철수한 이후로는 수주도 끊겼다.

완공하지 못한 사업장을 보유한 현대건설과, 중동·아프리카에 그간 입지를 잘 쌓아둔 편인 대우건설은 현장 점검단을 파견하는 등 지난해부터 리비아로 복귀할 여건을 살피던 중이었다.

대우건설은 일단 상황을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최근에는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수주를 늘리며 사업다각화를 추진했지만, 대우건설의 해외 텃밭인 중동·아프리카에서 그동안 쌓아둔 인적 네트워크와 브랜드 인지도를 포기하기 아쉽다는 판단에서다. 대우건설은 지난달 리비아전력청의 복합화력발전소 건설사업을 수주하고 5년 만에 리비아 시장 복귀를 기대하던 참이었다.

회사 관계자는 "리비아 정부 쪽에서 현지 정세가 안정됐으니 전후 복구 사업에 참여해달라고 먼저 요청해왔고, (발전소 건설사업은) 양해각서(MOU)만 체결한 단계라 손실이나 피해는 없다"며 "이번 발전소 공사 건은 (리비아 현지) 정세만 안정되면 언제든 착수할 수 있는 사업"이라고 설명했다.

현대건설은 리비아에서 준공하지 못한 사업장이 두 곳이나 된다. 올해 말까지 완성할 계획이던 알칼리즈 화력발전소와 트리폴리 웨스트 화력발전소다. 각각 2007년과 2010년 착공해 49%, 97%씩 공사가 이뤄진 상태로, 5년 전 철수하면서 현장에 남겨둔 중장비 등 비용과 손실 등은 이미 재무제표에 모두 반영됐다. 현대건설도 현지 안전만 확보된다면 사업을 재개할 방침이다.

시리아도 지난해 9월 휴전 이후로 내전에 완전한 종지부를 찍지 못한 상태다. 아직 국내 건설사들이 맡은 대형 사업은 없는 나라다. 다만 국경을 접한 이웃 국가들은 난민 유입 등으로 내전 영향을 받기 때문에 이라크 등에 수주 물량이 남은 건설사들이 현지 동향을 상시 살피고 있다.

시리아와 국경을 접한 이라크에서는 한화건설이 비스마야 신도시 건설사업을 진행 중이고, SK건설은 이라크 중부 카르발라에서 올해 말을 목표로 정유공장을 짓고 있다. 이 지역들은 국경과 거리가 떨어져 있어 주변 국가 때문에 큰 피해를 볼 가능성은 낮은 편이다. 리비아와 인접한 이집트는 올해 초 한국에 경제 사절단을 보내 건설·석유화학 분야에 투자를 요청했다.

SK건설 관계자는 "이전에는 가격을 낮춰 수주 경쟁을 벌였던 국내 건설사들이 (정정 불안 등으로 사업이 중단되면서) 중동에서 크게 손실을 본 이후로는 수익 분석을 철저하게 진행하고 사업에 들어가는 편"이라며 "신규 사업이 발주되더라도 (자사가) 경쟁력을 갖춘 공사인지 선별한 다음, 현지 사정을 잘 아는 현지 업체나 유럽 기업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응찰하는 식으로 수주 리스크를 줄이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