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 1~5년 먼저 받을수 있지만 수령액 최대 30% 깎여
이자쳐서 늦게 받는 사람과 대조…연금도 '빈익빈 부익부'

서울 도봉구에 사는 60대 남성 퇴직자 A씨는 예정된 노령연금(국민연금) 수급 개시 연도보다 3년 먼저 연금을 받기 시작했다. 수령 시기를 최대 5년까지 앞당길 수 있는 ‘조기노령연금’ 제도를 활용한 덕분이다. A씨는 "노령연금을 미리 받으면 손해라는 걸 알았지만 당장 생활비 마련이 급해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다. 조기노령연금은 1년 일찍 받을 때마다 6%씩 연금액이 깎인다.

한국에는 A씨처럼 국민연금 보험료를 10년 이상 납부해 수급권을 확보한 뒤 수령 개시 연도까지 기다리기 힘들어 조기노령연금을 받는 이가 57만명(2018년 10월 기준)에 이른다. 매년 3만5000명 이상의 노인이 조기노령연금을 신규로 신청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연금 수령 시기를 일부러 늦춰 이자까지 챙기는 것과 상반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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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 30% 감액에도 57만명 연금 조기수령

28일 국민연금공단에 따르면 조기노령연금 수급자 수(누계)는 2014년 44만1219명에서 2017년 54만3547명으로 3년새 23.19% 늘었다. 가장 최근 집계 결과인 지난해 10월 말 기준으로 보면 이 숫자는 57만3626명으로 증가했다. 이는 전체 국민연금 수급자의 약 15%에 해당한다.

조기노령연금은 수급자가 정해진 수령 개시 나이보다 1~5년 일찍 연금을 받을 수 있는 제도다. 경제적 여건이 어려운 노후 세대의 소득을 보장하려는 목적으로 도입됐다. 남들보다 먼저 받아가는 대신 수령액이 원래 금액보다 크게 줄어들게끔 설계돼 있어 ‘손해연금’으로 불리기도 한다. 조기노령연금은 1년에 6%씩 최대 30%(5년)까지 연금액이 감소한다.

큰 손해에도 불구하고 57만명이나 조기노령연금을 받아가는 건 그만큼 노인들의 주머니 사정이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6년 기준 65세 이상 한국 노인의 상대적 빈곤율(처분가능소득 기준 하위 25% 미만 인구 비율)은 43.7%다. 이는 유럽연합(EU) 국가 가운데 빈곤율이 가장 높다고 알려진 라트비아(22.9%)보다도 20%포인트 이상 높은 수준이다.

서울 강북권의 한 국민연금 직원은 "조기노령연금에 대해 문의하는 대다수 가입자가 실직·명예퇴직·사업 실패 등으로 노후 생활 여건이 궁핍한 사람들"이라며 "정해진 수급 시기까지 최대한 버텨볼 것을 권유하지만 (본인이 조기 수령을 강력히 원하면)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국민연금 관계자는 "조기노령연금 신규 수급자는 2014년 4만257명에서 2017년 3만6669명으로 매년 줄어드는 추세이긴 하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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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 쳐주는 연기연금은 여유집단 전유물

일각에선 조기노령연금 이용자가 반대 개념인 ‘연기연금’ 수혜자를 보면서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조기노령연금 신청자가 주로 저소득층인 데 반해 연기연금 제도를 적극 활용하는 이들은 대부분 국민연금을 천천히 받아도 생활에 별 지장이 없는 집단이기 때문이다. 국민연금 제도 내에서도 ‘부익부빈익빈’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 2007년 도입된 연기연금은 최대 5년간 연금액 수급 시기를 늦추면 이자를 얹어주는 제도다. 1년 연기할 때마다 7.2%씩 증액된다. 5년간 미루면 수령액이 36%나 늘어나는 셈이다. 한 국민연금 심사역은 "아무래도 연기연금은 늦춰진 연금 수령 시기까지 다른 소득이나 모아둔 여윳돈이 공백을 채워줄 수 있는 사람만 접근 가능한 제도"라고 설명했다.

특히 고소득자는 연금 감액을 피하기 위해 연기연금을 신청하는 경우가 많다. 현행 제도에 따르면 노령연금 수급권자의 소득이 국민연금 가입자 평균 소득(2018년 227만원)을 초과하면 최대 5년간 연금 일부가 감액된다. 이때 연기연금을 신청하면 매년 7.2%씩 연금액이 늘어나 줄어드는 수령액을 상당 부분 만회할 수 있다.

연기연금 신청자 수는 2014년 9185명에서 2017년 2만2139명으로 매년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권문일 덕성여대 교수는 "늦게 받는 만큼 수령액을 늘리는 건 연금 설계상 자연스러운 조치이지만, 모두가 누릴 수 없는 제도임을 감안할 때 증액 비율에 대한 논란은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