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오후 7시 30분쯤 경기도 부천시 오정일반산업단지에서는 공장 불이 하나둘씩 꺼지기 시작했다. 오후 8시쯤 본지 취재진이 공단 중심지 반경 400m 내에 있는 공장을 세어보니 22곳 중 16곳(72%)의 불이 꺼져 있었다. 산단 한복판에 있는 금형(金型·가전·휴대폰 케이스를 뽑아내는 금속 틀) 업체 한 직원은 "지난해만 해도 이 시간에 절반 정도는 공장이 돌아갔다"면서 "올해는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야근을 점점 없애면서 저녁이 되면 텅 빈 거리로 변한다"고 말했다. 금형 업체 간부 고모씨도 "지난해와 올해 최저임금 인상에 따라 1~2년차뿐 아니라 고연차 직원들의 임금도 줄줄이 올리다보니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인건비를 감당 못해 근무 시간을 줄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불황과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해 국내 금형 산업이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다. 대표적인 중소 제조업종인 금형은 지난해 수출 세계 2위, 생산량 기준 세계 5위를 기록한 풀뿌리 기반 산업이다. 하지만 금형 산업은 최근 수년 새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2014년 역대 최대인 32억달러(약 3조6000억원) 수출을 달성했지만 지난해에는 28억달러(3조1000억원)로 줄어들었다. 글로벌 경기 침체에 인건비 상승이 겹친 탓이다.

최저임금 인상에 야근이 사라진다

수도권 유일의 금형집적화 산업단지인 오정산단의 열기도 차갑게 식어가고 있었다. 이곳에는 전국 금형 업체의 12%인 72개 업체가 4500여 명을 고용하고 있다. 전국적으로는 9만4000명이 종사한다. 최저임금 인상 전까지만 해도 오정산단 평균 근로시간은 10시간이었고 납기일을 맞추기 위해 철야 근무를 하는 일도 잦았다고 한다. 그러나 최저임금이 지난해 16.4% 오른 데 이어 올해 10.9% 오르자 업체들은 공장 문을 서둘러 닫기 시작했다.

A업체는 지난해 평일에 2시간 정도 초과 근무를 했지만 올해는 1시간으로 줄였다. 이 회사 한 직원은 "최저임금 상승으로 기본급이 오르고 이에 연동된 초과 근무 수당도 덩달아 오르자 (회사에서) 아예 일하는 시간을 줄이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2017년엔 8시간 근무에 초과근무 2시간을 한 비정규직 직원에게 월 210만원을 지급했지만 지난해에는 최저임금 인상으로 월급이 230만원까지 올랐다. 올해 또 최저임금이 오르자 이 회사는 초과 근무를 줄이는 방식으로 대응하는 것이다. 이 회사는 일감이 몰릴 때는 외부 업체 직원을 1~2주 단기 아르바이트로 고용하고 있다.

일하는 시간이 줄면서 납기를 맞추기도 갈수록 힘들어지고 있다. 보통 내수 제품은 15일, 해외 수출용은 30일 안에 배송을 완료해야 한다. 오정산단 S 업체 간부 최모씨는 "일감이 몰릴 때 특근을 하며 납기일을 맞추는 게 우리나라 금형의 경쟁력이었지만 인건비 부담으로 야근이 줄어들면서 단기간 압축 생산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고 했다.

금형 산업 위기는 전국적인 현상이다. 대구의 한 금형 업체 대표 김모씨는 "최근에는 중국, 태국에 이어 베트남, 인도네시아까지 금형 산업에 뛰어들어서 경쟁이 더욱 치열해졌다"면서 "인건비는 올라가는데 올해 대기업의 주문도 줄 것 같아 걱정"이라고 했다.

기술 전수 안 되고, 정부 규제도 장애물

기술 전수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금형은 금속 재료를 복잡하고 다양한 형태로 만드는 정밀 공정이기 때문에 기계를 다루는 고도의 가공 기술이 필요하다. 한국금형센터 관계자는 "금형은 최소 10년은 배워야 한다"면서 "그러나 최근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해 기업들이 고임금을 받는 20~30년차 숙련공을 내보내는 경우가 많아 교사 역할을 할 사람이 줄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금형 업체에 젊은이들이 취업을 꺼리는 것도 기술 전수가 끊기는 또 다른 이유다.

금형업체들은 정부가 최저임금 인상 동결뿐 아니라 기업 규제도 과감히 풀어야 금형 산업이 살아날 수 있다고 말한다. K공업의 박모 대표는 "금형은 자동차·반도체·디스플레이에서 신기술·신제품이 나와야 수주 물량이 늘어나고 함께 성장할 수 있다"면서 "정부가 반기업 정책을 유지해 대기업의 투자가 위축되면 결국 우리 같은 뿌리 업체들부터 죽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