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개의 외식 브랜드, 연 매출 500억원의 프랜차이즈 기업을 이끄는 이상윤(50) SF이노베이션 대표는 업계에서 '맨주먹의 신화'로 통한다. 서울 강남·이태원에서 외식 브랜드를 속속 성공시켰지만 요리라고는 한 번도 제대로 배워본 적 없는 중학교 중퇴 출신이기 때문이다.

이상윤 SF이노베이션 대표가 지난달 27일 서울 강남구 사무실에서‘스쿨푸드’의 대표 메뉴인 김밥·떡볶이 등을 차려놓고 환하게 웃고 있다.

그의 유년기는 순탄치 않았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부모가 이혼하면서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그는 "고아와 다름없는 삶이었다"며 "새벽에 신문을 돌리고 점심은 학교에서 수돗물로 배 채운 날이 많았다"고 했다. 중학교 2학년 때 학업을 접었다. 춤에 빠져 이태원 밤무대에서 박남정·현진영 등과 함께 비보이 생활도 했다. 1997년 댄스그룹 C4란 이름으로 데뷔까지 했지만 앨범 낸 지 두 달 만에 결핵에 걸려 춤추는 일마저 그만뒀다. 30대 무명 춤꾼이 사회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다단계 화장품 판매원, 나이트클럽 서빙·주방보조에 영업부장까지… 닥치는 대로 일했다.

신문배달·비보이…김밥으로 재기

만 서른넷이 되던 2002년. 그는 서울 논현동의 월세 40만원짜리 반지하 단칸방에 형과 단둘이 밥솥 하나 달랑 놓고 김밥 장사를 시작했다. 그는 "딴따라 출신의 호기심, 어깨너머 배운 요리솜씨, 신문 돌리며 익힌 동네 지리와 발뒤꿈치 까질 때까지 춤만 췄던 근면함이 전부였다"고 했다.

한입에 먹을 수 있게 엄지손가락만 한 작은 크기 김밥을 싸서 겉은 계란으로 두르고 장아찌 반찬을 곁들였다. 김밥을 100개씩 싸들고 무작정 인근 미용실·유흥업소에 무료로 돌렸다. 열흘쯤 지나자 주문 전화가 들어오기 시작했고 직접 발로 뛰며 배달했다. 형제가 직접 맛보며 김밥에 오징어먹물·스팸을 넣고 카르보나라 크림에 떡볶이를 만들어보는 식의 별난 실험도 했다. 점차 입소문이 나면서 2005년 가로수길에 첫 매장을 낸 것이 지금은 전국 매장 77곳의 스쿨푸드로 성장했다.

일반 프랜차이즈에서는 비용 때문에 메뉴를 최소화하지만 스쿨푸드는 지금껏 선보인 메뉴만 100개가 넘는다. 현재도 40여 종을 판매 중이고 수시로 이 대표가 개발한 신메뉴를 추가한다. 장조림버터비빔밥, 불짜장 떡볶이, 토마토돈육덮밥과 같은 독특한 메뉴들이다. 식재료도 일반 쌀보다 1.3배 큰 신동진쌀, 500g에 수만원씩 하는 이탈리아산 오징어먹물을 고집한다.

그의 사업 신조는 '최고수는 고객의 입맛을 바꾸고, 고수는 고객이 좋아하는 것을 찾아주고 하수는 고객이 하자는 대로 맞춰준다'는 것이다. 그는 이 문구를 서울 역삼동 본사 입구 벽면에 붙여놨다. 그의 열정에 반해 2014년에는 미국 최대 중식 프랜차이즈 판다익스프레스의 창업자인 앤드루 청 회장이 대기업 프랜차이즈의 제안을 물리치고 그와 제휴 계약을 맺었다.

미쉐린 2년 연속 등재…"한식 세계화 꿈"

이 대표는 한식 세계화를 꿈꾼다고 했다. 스쿨푸드는 외국인 관광객들 사이에서 '캐주얼 한식'으로 입소문이 나면서 현재 홍콩·인도네시아에 5개의 매장을 열었다. 그는 해외 유명 음식을 한국식으로 재해석하는 데도 관심이 많다. 그는 "요리 한 번 배워본 적 없지만 해외 출장을 가면 하루에 일곱끼씩 먹으며 음식을 연구한다"고 했다. 그가 대만에서 접한 우육면을 연구해 한국식으로 재해석한 '이태원 우육미엔'은 2년 연속 미쉐린의 빕 구르망(가성비 좋은 맛집) 리스트에 올랐다. 베트남 음식을 한국에 맞게 들여온 브랜드 '분짜라붐'도 곧 일본에 진출한다.

그는 "전통 한식을 핑거푸드(finger food·손으로 집어먹는 음식)처럼 만든 브랜드도 준비 중"이라며 "철저히 현지 트렌드에 맞춘 한국 음식으로 해외 시장을 공략해 장수 기업으로 성장하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