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아파트 입주 이후 2년만 지나면 일시적으로 내렸던 전세금이 회복된다는 믿음이 서울 강남권에서 사라지고 있다.

보통 신축 아파트가 다 지어져 입주가 시작되면 잔금을 마련하지 못한 집주인들은 이를 내기 위해 전세로 집을 내놓는다. 이런 물량들이 쏟아지면서 새 아파트 전세는 점점 낮아지는데, 임대차 계약기간인 2년만 지나면 수급이 균형을 되찾아 전세 시세가 다시 회복된다는 것이 부동산 시장에선 그동안 정설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이런 믿음이 요즘 들어선 깨지고 있다.

서울 서초구 반포동 아크로리버파크 전경.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현재 서초구 반포동 ‘아크로리버파크’ 전용 59.98㎡ 전세 호가는 8억3000만원까지 떨어졌다. 층수와 조망에 따라 9억5000만원이 넘어가는 물건도 있지만, 2년 전과 비교하면 오히려 전세금이 떨어졌다. 전용 84.95㎡도 마찬가지. 2년 전보다 전세금이 떨어진 10억5000만~14억5000만원에 호가가 형성돼 있다.

2016년 4분기와 2017년 상반기 이 아파트 전월세 거래를 살펴보면 전용 59.98㎡ 전세가는 8억5000만~13억5000만원, 전용 84.95㎡ 전세가는 10억3000만~12억원이었다. 이를 감안하면 지금보다 전세가 크게 올랐다고 보긴 무리다.

2016년 입주가 시작된 서초동 ‘래미안서초에스티지’도 마찬가지. 전용 101.55㎡ 10층은 올해 1월 12억3000만원에 전세 거래가 이뤄졌는데, 2017년 1분기 같은 면적이 층수에 따라 11억~12억원에 거래된 것과 비교하면 2년간 전세가가 별로 오르지 않았다.

그나마 수요자들이 선호하는 전용 83.6㎡의 경우 2년 전보다 전세금이 오르긴 했지만, 매매가를 감안하면 전세가율이 부쩍 오른 건 아니다. 이 면적은 올해 1월 20층이 10억5000만원에 전세 거래가 됐고, 매매호가는 19억원 안팎이다.

집값 상승과 맞물려 거침없이 오르던 강남권 전세금은 최근 주춤하고 있다. KB국민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강남 아파트 전세금 중간값은 5억432만원으로 두 달째 떨어졌다.

여유 자금을 모아 입주하려고 했던 집주인들은 당황하고 있다. 최악의 경우 전세금이 빠진 만큼 자기 돈을 채워넣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2~3년 전만 해도 활발했던 갭(gap) 투자가 지금 거의 사그라진 것도 이런 현상과 맞닿아 있다. 전세가 하락으로 매매가와 전세가 갭이 점점 벌어지고 있어 갭 투자를 하기 위해선 과거보다 더 많은 자기자본을 투입해야 하는데 금리 인상과 대출 규제 등으로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서울 강남과 송파, 강동 등 강남권에서 앞으로 공급물량이 쏟아지면서 전세금 하락이 장기화하면 이런 현상은 더 심각해질 것으로 보인다.

서성권 부동산114리서치센터 책임연구원은 "수요가 많은 강남에서도 전세가 약세인데, 이보다 수요가 적은 강북권이나 수도권 외곽은 세입자가 전세금을 제때 돌려받지 못하는 깡통전세가 나올 수 있고, 집값 하락으로 연결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