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업계 장기 불황이 이어지면서 국내 패션회사들이 앞다퉈 체질 개선에 나서고 있다. 국내 1위 패션회사인 삼성물산(028260)패션부문은 부실 브랜드 정리에 들어갔고 2위인 LF(093050)는 신사업을 키우는 등 사업 다각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삼성물산 패션부문은 최근 YG엔터테인먼트와 합작해 세운 의류 브랜드 네추럴나인을 청산하기로 했다. 네추럴나인은 지난 2014년 인기 아이돌 그룹 빅뱅을 모델로 내세운 스트리트(길거리 패션) 의류 브랜드 ‘노나곤’을 선보였으나, 4년 연속 적자가 지속되자 영업을 잠정 중단하기로 했다. 회사 관계자는 "브랜드의 실적을 중시하는 경영원칙에 따라 네추럴나인의 사업 중단을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삼성물산 패션부문은 지난 2일 정기주주총회에서 네추럴 나인 해산 결의를 진행했다고 9일 공시했다.

네추럴나인 청산을 시작으로 삼성물산(028260)패션부문이 올해도 사업 개편을 통한 대대적인 비용 절감에 나설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기존 의류 브랜드의 성장이 멈춘 데다 2012년 야심차게 선보인 패스트패션(SPA) 브랜드 에잇세컨즈가 기대 이하의 성과를 내면서 실적이 부진하기 때문이다. 삼성물산 패션부문의 매출은 2015년부터 작년까지 1조7000억~8000억원대로 4년째 정체됐다.

삼성물산 패션부문은 2015년에 89억원, 2016년 452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하자 브랜드 효율화 작업에 들어갔다. 2016년 남성복 브랜드 ‘엠비오’와 잡화 브랜드 ‘라베노바’ 등 부실 브랜드를 정리하면서 이듬해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그러나 지난해 신규 브랜드 출시 여파로 1~9월 125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하면서 다시 선택과 집중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박철규 삼성물산 패션부문장

지난해 삼성물산 패션부문은 스웨덴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그라니트’를 선보이는 등 처음으로 패션 사업이 아닌 인테리어·소품 분야로 사업을 확장했다.

일각에서는 삼성물산이 패션부문 매각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최근 이서현 전 사장이 패션부문에서 손을 떼고 박철규 부사장이 이끄는 전문경영인 체제로 바뀐 점도 삼성물산에서 패션사업의 비중을 낮추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삼성물산 내에서 패션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출 기준으로 2015년 13%에서 2년 만에 6%로 줄었다. 상사부문(42.9%), 건설부문(40.9%)과 비교하면 미미한 수준이다.

올 들어 소폭의 조직 개편도 단행했다. 박철규 부사장은 남성복 1·2사업부를 하나로 통합하고 박 부사장이 기존에 맡았던 상품총괄직을 없애는 등 임원 수를 줄였다. 삼성물산 관계자는 "노나곤은 실적 목표를 달성하지 못해 중단을 결정한 것이며, 아직 정리를 결정한 다른 브랜드는 없다"면서도 "브랜드 효율화 작업은 이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오규식 LF 부회장

닥스·헤지스·마에스트로 등의 의류 브랜드를 운영하는 LF는 본업인 패션보다 부업에 주력하고 있다. 본업인 패션 사업의 의존도를 낮추고 식품과 주거 사업을 키워 의(衣)·식(食)·주(住)를 고루 갖춘 생활문화기업으로 거듭나겠다는 전략이다. 지난 2007년 이후 실시한 인수·합병(M&A)만 30여건에 달한다.

LF는 지난 5년간 식품·유통 기업을 인수하면서 몸집을 키웠고 화장품, 홈퍼니싱(집꾸미기)에 이어 부동산 자산운용까지 출사표를 던졌다. 2017년에는 일본 식자재 유통기업 모노링크와 유럽 식자재 전문기업 구르메F&B코리아, 와인과 수제맥주 등을 수입·판매하는 인덜지 등을 인수했다. 지난해 말에는 국내 3위 부동산 신탁회사 코람코자산신탁을 1898억원에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LF 측은 코람코 인수로 패션, 식품, 주거 등 사업 부문별 시너지 효과는 물론, 실적 개선 효과도 기대하고 있다. 유정현 대신증권 연구원은 "코람코자산신탁 지분 50.7% 인수로 LF의 2019년 매출액과 영업이익이 각각 12%, 40% 증가할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지난해 말 문을 연 LF의 쇼핑문화공간 ‘라움 이스트’. 패션, 뷰티, 푸드, 키즈 관련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를 판매하는 공간으로, 의식주를 아우르는 생활문화기업으로 변신하겠다는 LF의 청사진을 담았다.

국내 3위 패션회사인 신세계인터내셔날(031430)도 자체 화장품 브랜드 ‘연작’을 출시하는 등 화장품 사업을 통해 성장 활로를 모색 중이다.

의류 소비 흐름이 유니클로를 필두로 한 중저가 SPA 브랜드와 고가 명품으로 양극화되면서 올해 패션 업계의 어려움도 지속될 전망이다. 한국섬유산업연합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패션시장 규모는 42조4300억원으로 2017년(42조4704억원)과 비교해 역신장한 것으로 나타났다.

패션업계 한 관계자는 "옷보다 음식·가구 등에 돈을 쓰는 소비자가 늘면서 중고가 가격대의 의류 브랜드가 설 자리가 없어졌다"면서 "불황을 극복하기 위해 패션 업계가 성장성이 높은 화장품이나 홈퍼니싱 등 신사업에 진출하는 양상은 올해도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