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선(無線)이 마침내 유선(有線)을 꺾었다. 2일 본지가 이베이코리아에 의뢰해 쇼핑 사이트 옥션에서 팔린 청소기·선풍기·이어폰의 최근 3년간 유·무선 판매 비중을 집계한 결과 올해 무선 제품의 판매량이 일제히 유선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청소기의 유선 판매 비중은 2016년 85%였지만 지난해 63%로 떨어졌고, 올해(1~10월 누적)는 45%가 됐다. 2년 만에 유선 판매량이 절반 수준으로 급락할 만큼 시장 트렌드가 변한 것이다. LG전자·다이슨의 무선 청소기가 인기를 끈 데다 중국 짝퉁 제품인 '차이슨(차이나+다이슨)', 샤오미까지 합류한 덕분이다. 한국식 청소 문화를 접목한 중소기업 휴스톰의 무선 물걸레 청소기, 로봇 청소기도 잘 팔렸다. 같은 기간 유선 선풍기의 판매 비중은 77%에서 48%로 꺾였다. 유선 이어폰도 올해 판매 비중이 47%에 그치면서 처음으로 50% 밑으로 떨어졌다. 이베이코리아 홍순철 팀장은 "배터리 구동 시간 등 과거 무선 제품의 단점이 크게 개선되고 디자인도 수려해지면서 인기를 끌고 있다"고 말했다.

편의성·스마트화 바람에 빠르게 사라지는 선

LG전자는 올 들어 경남 창원 공장의 청소기 생산 라인을 100% 무선 제품 생산 체제로 바꿨다. 지난해 상반기만 해도 이곳에서 생산되는 무선 청소기 비중은 30% 수준에 불과했다. 지난해 6월 내놓은 무선 청소기 코드제로A9이 8개월 만에 국내 시장에서만 20만대가 팔려나갈 만큼 인기를 끌자 아예 '완전 무선 체제'로 전환한 것이다. 기존에 생산하던 유선 청소기 물량은 베트남 등지로 돌렸다. LG전자 관계자는 "부가가치가 높은 무선 청소기 시장이 매년 30%씩 커지면서 글로벌 시장 규모가 현재 5조원에 이른다"고 설명했다.

무선 제품이 주목받는 이유는 편리한 데다 성능도 크게 향상됐기 때문이다. 무선 청소기나 무선 선풍기는 장소를 옮겨 다닐 때마다 일일이 코드를 뺐다 꽂아야 하는 불편함이 줄어들고, 무선 이어폰은 "꼬인 줄 풀기에서 해방됐다"는 소비자 반응을 얻고 있다. 여기에 아날로그 제품의 빠른 디지털화 역시 무선 시장을 키우는 요인이다. 스마트워치나 스피커, 전기자전거, 무선 마우스·키보드가 대표적이다.

시장 조사 기관 IHS마킷에 따르면 무선 충전 기능을 탑재한 기기는 2017년 4억5000만개에서 2023년 22억개로 5배가량 증가할 전망이다.

배터리 업계도 호재… 사물 배터리 시대

무선 제품의 증가를 반기는 것은 배터리 업계다. 전원선이 사라졌다는 것은 곧 모든 제품에 배터리가 들어간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모든 제품이 인터넷에 연결된다는 사물인터넷(IoT)을 넘어 이제는 '사물배터리(BoT·Battery of Things) 시대'라는 말까지 나온다.

이 같은 추세에 힘입어 지난 3분기 주요 화학업체들의 배터리 사업 실적은 크게 개선됐다. 삼성SDILG화학은 각각 전지 사업 부문에서만 2조원에 육박하는 매출을 거뒀다. 이전 분기보다 각각 11.3%, 14.1% 상승한 수치다. 삼성SDI 관계자는 "세계시장에서 무선 전동 드릴과 같은 공구, 정원용 잔디깎이, 무선 청소기, 전기자전거와 같은 제품들이 인기를 얻으면서 배터리 시장도 호황을 맞고 있다"고 말했다.

업계는 모든 차량이 대용량 배터리를 하나씩 달고 다니는 전기자동차 시장의 개화(開花)를 기대하고 있다. 현재 전기차 가격에서 배터리가 차지하는 비중은 55% 수준으로 부품 가격이 1000만원을 훌쩍 넘는다.

시장 조사 업체 SNE리서치는 글로벌 전기차 시장이 2019년 610만대에서 2025년 2200만대로 3배 이상 성장할 것으로 보고 있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무선·스마트화 바람과 함께 아침에 눈 떠서 밤에 잠들 때까지 우리 일상의 거의 모든 부분을 배터리가 함께하는 시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