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삼성바이오로직스(이하 '삼바') 분식 회계 의혹 사건에 대해 증권선물위원회가 '고의적 분식 회계'라는 최고 수위의 징계를 내리면서 삼바 사태는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의 정당성에 대한 재조명 등 후폭풍이 거셀 것으로 보인다. 반면 삼성 안팎에서는 "증권선물위원회가 중요한 회계 이슈를 다루면서 회계 전문가로 구성된 감리위원회 판단도 받지 않는 등 결정을 너무 서둘러 방어권을 행사하는 데 제약이 많았다"는 불만이 제기되고 있다.

발단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14일 증권선물위원회에 참석한 김태한(왼쪽) 삼성바이오로직스 대표이사와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 회계 의혹에 '고의적 분식' 결론을 발표한 김용범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겸 증권선물위원장.

지난 2017년 2월 심상정 정의당 의원과 참여연대가 삼바 분식 회계 의혹을 제기한 것이 이 사건의 시작이다. 이들은 "삼성이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당시 제일모직의 자회사였던 삼바의 가치를 부풀린 결과 이재용 부회장이 이득을 보게 됐다"고 주장했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은 당시 1대0.35 비율로 합병했다. 제일모직 가치가 삼성물산의 약 3배로 책정된 것이다. 삼성물산 지분은 없었지만 제일모직 지분이 많았던 이 부회장은 이 합병으로 통합 삼성물산 지분이 많아져 최대 주주가 됐다. 삼성에서 가장 중요한 회사인 삼성전자는 1,2대 주주가 삼성생명과 삼성물산이다. 이 부회장은 합병으로 삼성생명에 이어 통합 삼성물산 최대 주주까지 되면서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을 키울 수 있었다. 참여연대 등은 "삼바의 가치 부풀리기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삼바, 고의로 분식했다"

이날 김용범 증선위원장은 "삼바가 회계 기준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고의로 기준을 위반한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고 했다. 삼바가 2012년 미국의 제약회사인 바이오젠과 함께 '삼성바이오에피스'란 회사를 만들면서, 바이오젠에 약속해 준 '콜옵션 계약'이 문제가 됐다. 바이오젠이 원할 때 정해진 가격에 에피스 주식의 49%를 살 수 있는 권리다.

증선위는 바이오젠이 언제든 에피스 경영에 영향을 끼칠 만큼 중대한 계약 내용이며, 에피스를 만든 2012년부터 삼바가 회계장부에 바이오젠에 갚아야 할 빚(부채)으로 공시를 통해 외부에 알렸어야 했는데 숨기고 있다가 2015년에 뒤늦게 공개한 것이 문제라고 봤다. 장부에 올렸어야 하는 빚을 반영하지 않아 결과적으로 회사 가치를 부풀렸다는 것이다. 삼성은 이런 시각이 현실을 무시한 것이라고 반박한다. 2012년 생긴 에피스가 계속 적자를 보고, 성공 확률이 낮을 땐 바이오젠이 에피스 지분을 확보할 의사가 강하지 않았는데, 신약 개발 가능성이 가시화된 이후엔 바이오젠이 49% 지분을 확보할 가능성이 커졌다. 이에 국제회계기준(IFRS)에 따라 에피스의 지위를 자(子)회사에서 거리가 먼 '관계회사'로 바꿨다는 게 삼성 측 설명이다.

합병 이슈로 불 옮아붙을까

증선위는 이번에 "바이오로직스가 2012~2015년 회계장부를 고쳐야 한다"고 했다. 이 말은 바이오로직스의 가치를 회계장부에 반영하고 있는 모회사, 즉 삼성물산도 함께 장부를 수정해야 한다는 뜻이다. 금융당국도 삼성물산이 회계를 적절하게 처리했는지 감리를 벌일 가능성이 크다. 일각에서는 2012~2015년 삼바 재무제표가 달라지면서 회사 가치가 바뀔 경우 현재의 삼성물산뿐 아니라, 2015년 합병 전 제일모직의 기업 가치에 대한 판단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한 회계학과 교수는 "손해를 봤다고 생각하는 옛 삼성물산 주주들이 제일모직의 가치 판단 문제를 들고 나오면 합병 적절성이 도마에 오를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삼성 측은 "지난해 금융감독원이 참석한 연석회의에서도 공식적으로 (회계 처리가) 문제가 없다는 판단을 받았고, 다수 회계 전문가들로부터 적법하다는 의견도 받았다"고 반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