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현지시간) 미국 시애틀 도심의 보렌가(街). 직장인이 밀집한 이곳엔 교실 세 개 크기(64평)의 무인(無人) 수퍼 '아마존고(Amazon Go)'가 있다. 입구에 달린 스캐너에 소비자 정보가 담긴 QR코드를 대자 자동으로 문이 열린다. 주황색 쇼핑백을 집어 아이스티를 담았다.

시애틀 보렌기에 문을 연 아마존고. 시애틀에만 세번째 매장으로 미국 전역에 5개 매장을 냈다.

매대에 있는 땅콩은 몰래 가방에 넣어 보기도 했다. 그런 다음 그대로 매장을 걸어 나왔다. 3분 남짓 지났을까. 미리 스마트폰에 깔아 둔 애플리케이션으로 결제 영수증이 도착했다는 알람이 울린다. 매장 천장에 달린 수백개의 인공지능(AI) 카메라 센서가 고객의 움직임을 따라 어떤 상품을 샀는지 실시간으로 파악해 계산한 것이다. 몰래 가방에 넣은 땅콩도 계산이 됐을까? 전달 받은 영수증에는 아이스티와 땅콩, 주황색 쇼핑백, 세금까지 총 6.34달러가 정확하게 적혀 있었다.

지아나 퓨어리니 아마존고 부사장은 "카메라로 습득한 영상 정보를 학습해 자동으로 결제를 진행하는 ‘저스트 워크아웃(Just Walk Out)' 기술을 개발했다"며 "이는 지금까지 볼 수 없던 혁신적인 기술"이라고 강조했다.

'온라인 쇼핑 혁신'의 아이콘 아마존이 무인 수퍼 확대에 나섰다. 지난달 아마존 본사 1층에 위치한 시애틀 보렌가에 '아마존고'가 새롭게 문을 연 데 이어 올해에만 시애틀 3곳, 시카고 2곳 등 총 5곳의 무인 수퍼가 오픈했다. 올해까지는 10개, 내년엔 미국 주요 도시에 50여개를 출점하는 게 목표다. 아마존은 앞으로 3년 내 총 3000여개의 무인 수퍼를 갖출 계획이다.

온라인 플랫폼에 집중한 아마존이 오프라인 무인 점포 확장에 나서는 것은 단순히 상품을 더 많이 팔기 위해서가 아니다. 소비자들의 반복된 구매 패턴과 소비 트렌드 등 '밑바닥 소비자 동향'을 파악하는 데는 오프라인 '장터'만큼 적합한 곳을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매장 내 카메라 센서와 소비자들의 사용한 앱으로 수집된 '빅데이터'는 아마존이 미래 유통 전략을 세우는 이정표가 되고 있다.

크리스티안 브룩 아마존고 매니저는 "온라인 쇼핑 플랫폼은 오프라인 매장에서 느끼는 기존 구매방식이 주는 쇼핑의 재미·인간적 상호작용 등 이길 수 없는 부분이 있다"며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결합해 시너지를 내는 것이 아마존의 전략"이라고 했다.

아마존고에 들어가기 위해 필요한 것은 전용 앱 하나뿐이다. 스마트폰 앱을 내려받아 아마존 계정으로 로그인하고 결제 정보를 입력하니 'QR코드'가 떴다. 이 QR코드를 출입구에 찍고 매장 안으로 들어가면 된다.

아마존이 오프라인 플랫폼 형태를 '무인 점포'로 택한 데에도 이유는 있다. 우선 고객 편의성 때문이다. 무인 수퍼는 고객 대기시간을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에 고객이 편리함을 느낄뿐만 아니라 점포 회전율도 높여 매출도 늘릴 수 있는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마케팅 미디어 업체 무드미디어(Mood Media) 조사에서도 미국 소비자가 매장 쇼핑에서 가장 크게 스트레스를 받는 요인은 긴 대기시간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미국의 인건비 부담 역시 무인 수퍼 확산에 핵심 원인으로 지목된다. 시애틀의 시간당 최저임금은 15달러(1만7000원)로 미국 대도시 중 가장 비싼 축에 속한다. 미국의 연방 최저임금 7.25달러의 두 배가 넘는 수준이다. 미국에서도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이 확산될 경우 무인 수퍼는 확대될 수 밖에 없다고 관측한다.

매장 천장에 부착된 수백개의 인공지능 블랙박스 센서들. 이 센서는 소비자의 이동경로와 미세한 움직임까지 포착한다.

물론 아마존고는 사업 초기라 부족한 점도 있다. 먼저 인공지능 판독 문제로 매장에 한번에 입장할 수 있는 인원을 100여명으로 제한할 수밖에 없는 상태다. 모든 이용객의 움직임을 분석하기에는 데이터 '과부하'가 발생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당장은 월마트·코스트코 등 대형 유통매장에선 비슷한 기술 상용화가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또 비교적 단순한 상품을 판매하는 편의점 등엔 적합하지만, 점원의 설명이 필요한 제품으로 확장하기엔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이 때문에 아마존고의 매출 증가 속도는 아직 미미하다. 아마존고 점포 한 곳당 매출은 8만4000달러(9500만원)로 추정된다. 아마존의 총 소매 매출 106억달러(12조원)에 비하면 비중이 낮다.

샐러드·샌드위치 등으로 점심을 간단히 해결하고 운동을 하거나 취미를 즐기는 직장인이 많아지면서 간편식이 인기를 끌고 있다. 아마존 고 에 비치된 간편 식품들.

유통업계는 그럼에도 아마존고에서 시작된 무인화 바람은 더욱 거셀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아마존고'는 현재 미국에 있는 350만명의 수퍼 계산원을 기계가 대체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며 "이에 적용된 기술을 다른 유통업계에도 판매해 적용 범위를 더욱 확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아마존고
아마존이 올해 1월 정식 서비스를 시작한 무인 슈퍼마켓. '노 라인 노 체크아웃(No Lines No Checkouts)' 슬로건답게 계산원, 계산대, 대기줄이 없다. 아마존고 앱을 스마트폰에 내려받아 매장 출입문 QR코드를 스캔하면 들어갈 수 있다. 가족, 친구 등 동반자와 함께 입장할 수도 있다. 소비자가 진열대 물건을 고르면 매장에 설치된 센서가 상품을 인식해 앱 장바구니에 추가되고, 그대로 매장 밖을 나가면 등록돼 있는 카드에서 비용이 자동 결제된다. 영수증도 앱으로 보여준다. 매장 넓이는 약 50평. 현재는 식품이 주류이고 향후 품목을 확대할 예정이다. 매장에 직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술을 살 때 신분증을 확인하는 직원과 신선식품을 조리하고 재고를 관리하는 직원 등 소수의 직원이 근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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