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필 특파원

지난 7월 라오스 남부를 지나는 메콩강의 지류에 있는 세피안-세남노이 수력발전소에서 SK건설이 시공한 보조댐 1곳의 상부가 무너져 내렸다. 가둬져 있던 물이 하류의 마을 10여 곳으로 쏟아져 내리면서 라오스 정부 발표로 40명이 숨지고 31명이 실종됐다. 수천 명이 집을 잃었고 하류의 캄보디아까지 피해를 입었다. 초유의 사태에 직면한 라오스 정부는 50건이 넘는 수력발전소 신규 건설 사업을 전면 보류하고 국가 수력발전 전략을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라오스는 수력발전소 건설 사업을 중단하지 않았다. 미국 자유아시아방송에 따르면, 발전 용량 770㎿(메가와트)짜리 팍라이 발전소와 912㎿짜리 팍벵 발전소 건설 사업은 중단 없이 계속되고 있다. 모두 한국 최대 수력발전소인 충주댐(412㎿)보다 발전 용량이 2배가량 큰 '메가 프로젝트'들이다. 태국·베트남·캄보디아 등 인접국 시민단체들이 환경 파괴와 안전 우려를 이유로 반대하고 나섰지만, 해당국 정부들은 국제기구인 메콩강위원회(MRC)를 통해 라오스가 사업을 계속하는 데 동의했다. 두 발전소에서 생산되는 전력은 대부분 태국을 비롯한 인접국으로 수출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매년 빠르게 늘어나는 전력 수요를 맞추기 위해 전력 공급 확대가 절실한 동남아 국가들에 라오스의 수력발전소 신규 건설은 중단돼서는 안 되는 중대 사업이다.

◇수요 급증으로 전력 부족 사태

동남아시아에는 지금 전기가 부족하다. 이제까지 동남아는 세계적으로 에너지를 적게 쓰는 지역에 속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동남아 인구 6억4000여만명의 1인당 평균 에너지 소비량은 세계 평균의 절반가량에 불과했다. 동남아 인구의 10%인 6500만명이 전기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고, 인구의 39%에 해당하는 2억5200만명은 가스나 석유, 전기가 아니라 땔감으로 밥을 지어 먹는다.

그러나 동남아 경제가 급성장하면서 에너지 수요도 급증하고 있다. 2000년부터 2016년까지 동남아 경제는 연평균 5.2%의 고성장을 거뒀고 최근 5년간 매년 1200억달러(약 137조1000억원)의 해외 직접 투자를 받으면서 중국에 뒤이어 세계의 공장으로 탈바꿈했다. 특히 철강·석유화학·제지·시멘트·알루미늄 등 에너지를 많이 쓰는 공업이 성장하면서 동남아 공업 부문의 에너지 소비는 16년 새 거의 70%가 늘었다. 또 소득 증대로 중산층이 확대되고 자동차와 전자제품 구매가 늘어나면서 가정의 에너지 소비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동남아시아 경제가 급성장하면서 전력 부족 문제를 겪고 있다. 각국이 발전소 건설을 늘리면서 2000년 이래 발전량이 2.5배 증가했지만, 여전히 전력 수요 피크(최대 수요 전력)에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사진은 캄보디아 프놈펜 시내의 한 전봇대에 전선과 전화선 수백 개가 어지럽게 엉켜 있는 모습.

특히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 공업과 서비스업, 가정생활에 필수적인 전력을 대는 것이다. 2000년 이래 동남아의 전력 수요는 매년 6.1%씩 늘었는데, 이는 세계 평균보다 2배 이상 빠른 증가 속도다. 동남아 각국이 발전소 가동과 신규 건설에 박차를 가해 발전량도 같은 기간 2.5배가량 증가했지만, 여전히 전력 수요 피크에 대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싱가포르만 30%의 전력 예비율을 기록하고 있을 뿐 나머지 국가들은 예비 전력이 거의 없거나 미얀마처럼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낙후된 송배전망도 전력 부족 문제를 가중하고 있다. 한국 송배전망에서 발생하는 전력 손실은 3%가량에 불과하지만, 동남아에서는 국가에 따라 적게는 6%에서 많게는 16%의 전력이 수요지에 닿기도 전에 사라져 버린다.

그 결과 공장 가동에 치명적인 정전 사태가 발생하고 있다. 지난해 세계은행 조사에 따르면 필리핀 기업의 40%, 미얀마 기업의 96%가 정전을 경험했다. 전력 부족이 심각한 미얀마 등에서는 대부분의 시설에 화석연료로 돌아가는 비상 발전기가 갖춰져 있는데, 정전 때마다 이를 가동하다 보니 전기 사용에 들어가는 실질 비용이 높다.

◇발전소 신설에 공격적 투자

동남아 각국은 전력 수요 급증에 대응하기 위해 발전소 신설과 송배전망 개선에 공격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10국은 2000년 이래 발전소 증설에 1700억달러(약 194조2300억원), 송배전망 확충에 1950억달러(약 222조7900억원)를 투자했다. IEA에 따르면, 동남아 각국은 전력 부문에 2025년까지 3870억달러(약 442조1500억원), 2026년부터 2040년까지 8550억달러(약 976조8400억원)를 더 투자할 것으로 전망된다.

동남아 국가 대다수는 이런 발전소를 건설할 기술을 충분히 갖고 있지 못하다. 이 때문에 동남아 신규 발전 시장은 외국 기업들의 차지가 됐다. 최근에는 인프라 투자를 통해 동남아에서 영향력 확대를 노리는 중국과 일본은 물론 한국과 유럽연합·러시아 등이 가세해 치열한 수주전을 벌이고 있다.

이처럼 신규 발전 시장이 커지고 있지만, 동남아의 빡빡한 전력 사정은 쉽게 나아지지 않을 전망이다. 2000년 이후 동남아에서 새로 지어진 발전소의 경우 발전 용량 기준으로 40%는 석탄화력, 다른 40%는 가스화력이었다. 재생에너지를 이용한 발전소는 수력을 포함해도 20%에 불과했다. ASEAN 10국은 지난 2016년 탄소 배출량을 제한하기로 한 파리기후협약에 비준했는데, 이 협약을 지키기 위해서는 앞으로 탄소를 대량으로 배출하는 화력발전의 비중을 획기적으로 줄여야 한다. 화력발전소 신설에 의존해 비교적 쉽게 발전 용량을 늘려오던 지금까지의 방법을 사용하기 어렵게 된 것이다.

이 때문에 동남아 각국도 수력과 태양광·풍력 등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있다. 하지만 화석연료를 이용한 발전보다 단가가 높아 경제성이 떨어진다는 게 단점이다. 수력발전소는 주민 반발로 사업이 연기·무산되고 있다.

많은 전력을 탄소 배출 부담 없이 싸게 생산하는 유일한 대안은 원자력이지만 동남아 어느 국가도 선뜻 채택하지 못하고 있다. 동남아에는 아직 상업용 원전이 하나도 없다. 상당수 국가가 원전 건설을 추진했으나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대부분 중단됐다. 베트남·싱가포르는 원전 도입 계획을 중단했고, 태국만이 2036년까지 2GW짜리 원전을 건설한다는 계획을 세워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