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수출 불확실성 커진다" 우려의 목소리 커져

한국의 수출 실적이 양호한 수준을 이어가고 있지만 대내외 수출 변수에 비상등이 켜지고 있다. 미·중 무역분쟁, 신흥국 금융 불안 등이 수출 불안 요인으로 부각된 가운데 엔화 가치까지 급락하면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100엔당 원화 환율은 4개월 만에 최저치로 떨어졌다. 한국과 일본 상품은 수출 경합도가 높기 때문에 원화 대비 엔화 가치가 하락하면 한국 상품의 가격경쟁력 약화를 초래한다.

반도체와 석유화학을 제외한 자동차, 선박 등 주력 상품 수출이 감소하는 상황에서 가격 경쟁력마저 약화되면 유일하게 한국 경제를 떠받치고 있는 수출 경기도 악화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 원엔 환율 4개월 최저치...한국산 가격경쟁력 약화 우려

1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100엔당 원화 환율(달러 기준으로 산출한 재정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1.88원 하락한 975.65원에 마감했다. 이는 지난 6월 7일(971.60원) 이후 4개월 만에 최저치다.

이같은 원엔 환율 하락은 최근 달러 대비 엔화는 약세, 원화는 강세를 보인 ‘디커플링' 결과다. 엔·달러 환율은 미국이 기준금리를 추가 인상하기 직전인 지난달 26일(현지 시각) 112.73엔에서 이날 113.90엔(장중 기준)으로 상승한 반면, 같은 기간 원·달러 환율은 1112.50원(27일)에서 1111.8원으로 소폭 하락했다.

전문가들은 한·일 환율이 엇갈린 흐름을 나타낸 이유를 양국 통화정책의 기조 차이에서 찾고 있다. 일본 중앙은행(BOJ)은 당분간 양적 완화 정책을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명확하게 공표한 반면, 한국은행은 ‘국내 경기 여건이 허락하면 금리 인상이 필요하다’는 신호를 시장에 주고 있다. 이날 발표된 한국의 9월 무역수지가 97억달러 흑자를 기록하며 80개월째 흑자 행진을 이어갔고 국내 금융시장으로 외국인 투자자금 유입이 계속되고 있는 것도 원화 강세를 부추기는 요인이다.

외환당국 관계자는 "북미 관계 개선에 대한 기대가 작용하는 가운데 미중 무역분쟁이 이어지고 있지만 상황이 더 악화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고, 미 연준이 정책 성명서에서 ‘완화적(accommodative)’이라는 문구를 삭제하면서 금리 인상 사이클이 고점 수준에 와있다는 진단도 나왔다"며 "한국도 결국 미국 따라 연내 금리를 인상하지 않겠느냐는 기대도 작용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 반도체 홀로 떠받치는 수출...한국과 일본 상품 절반 경합

문제는 원화의 상대적 강세에 따른 원엔 환율 하락이 한국 경제 성장의 보루인 수출 전선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주력 수출 품목은 일본과 경합도가 높다. 우리나라 수출의 80%를 차지하는 반도체·석유화학·자동차·가전·선박 등 주력 13개 산업군 대부분이 일본의 주력 수출품과 중복된다.

무역협회에 따르면 중국, 미국 등 주요 수출 시장에서 한·일 간 수출 경합도는 0.5 정도다. 우리나라 수출품의 절반이 일본과 겹친다는 의미다. 엔화 약세로 글로벌 시장에서 일본 제품의 가격 경쟁력은 높아지는 가운데 원화 강세로 한국 제품의 수출 경쟁력이 약화되면 한국 수출이 타격을 받을 수 있는 구조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엔화 가치가 원화보다 5% 더 떨어질 경우 수출은 1.4% 감소하고, 경제성장률은 0.27%포인트 하락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미·중 무역분쟁, 신흥국 금융 불안 등이 수출 불안 요인으로 부각된 가운데 엔화 가치까지 급락하면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100엔당 원화 환율은 4개월 만에 최저치로 떨어졌다.

가뜩이나 반도체와 석유화학 등을 제외한 조선 자동차 등 주력 품목 수출 부진이 장기화하고 있다. 9월 수출 실적만 봐도 13개 주력 품목 중 반도체, 석유화학, 컴퓨터를 빼고 10개 품목의 수출이 감소했다. 사실상 반도체가 홀로 수출을 떠받치고 있다. 반도체가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5% 수준이다. 이런 상황에서 가격경쟁력이 약화되면 수출에 상당한 악재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최석원 SK증권 리서치센터장은 "국제기구들이 내년 주요국 성장 전망을 하향 조정하는 등 글로벌 수요가 둔화될 가능성이 커져 수출 호조가 지속될지 불확실하다"며 "이런 상황에서 원엔 환율 하락은 한국 수출품의 가격 경쟁력을 하락시키는 요인"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또 "최근 원화 강세로 인한 환차익으로 외국인 자금이 유입되고 있지만 과거와 달리 유입세가 강하지 않은 것이 한국 기업과 수출 경쟁력에 대한 우려가 반영된 것일 수 있다"며 "수출은 좋을 것이라는 전제를 갖고 경제정책을 구상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말했다.

김현종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도 이날 기자 간담회에서 올해 수출이 사상 첫 6000억달러를 돌파할 것이라고 낙관하면서도 내년 수출 상황을 예단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보였다. 그는 "내년 유가가 지속해서 상승할지, 국내 조선업과 자동차 산업 등 제조업 경기가 어떻게 될 것인지를 감안해야 한다"며 "수출 시장과 수출 품목 다변화, 화장품과 의약품, 유아용폼, 패션의류 등 유망 신산업에 대한 지원을 통해 수출 증가세를 이어나가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