車업체 디젤 라인업 축소

지난 6월 신형 3세대 카이엔을 국내에 처음 소개하는 포르쉐 70주년 행사장. 포르쉐코리아는 이 자리에서 신형 카이엔 가솔린 모델만 선보였다. 3세대 카이엔은 현재 가솔린 모델만 출시됐기 때문이다.

국내 자동차 회사인 현대자동차도 이달 일부 디젤차에 대한 단종을 선언했다. 현대차는 그랜저, 쏘나타, i30, 맥스크루즈 등 디젤 엔진 모델 생산을 중단했다. 현대차가 이 같은 결정을 내린 이유는 디젤엔진에 대한 소비자들의 신뢰도 하락, 하이브리드 등 친환경 차량 판매가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수년간 거침없이 점유율을 확대해가던 디젤 승용차가 최근 몰락의 길을 걷고 있다. 폴크스바겐 디젤게이트로 클린 디젤이라는 환상이 깨지고, 디젤차에 대한 각종 환경 규제, BMW 디젤차량 화재 사태 등으로 소비자들이 외면하기 시작한 것이다.

◇ 몰락 부추긴 BMW 디젤 모델 화재 사고

BMW 화재 사고는 소비자들의 디젤차 불신을 가속화했다. BMW는 지난 7월말 화재 건수가 늘자 42개 차종, 10만6317대를 리콜 조치하기로 했다. 그러나 안전진단을 받은 디젤 차량에서도 화재가 연이어 발생하자, 불신이 더욱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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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계에서는 이번 BMW 화재 사고가 디젤차 몰락을 부채질 할 것으로 보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환경 문제였던 폴크스바겐 디젤게이트와 달리 BMW 화재는 소비자에게 더 와 닿는 실생활 문제"라며 "디젤차에 대한 불신이 커지고 있어 올 하반기 디젤차 판매에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사실 디젤차의 몰락은 세계적인 추세다. 디젤차 본고장인 유럽에서는 더욱 뚜렷하게 나타난다. 유럽자동차협회(ACEA)에 따르면 유럽 주요 15개국의 디젤차 점유율은 2011년 56.1%였으나 매년 줄어 지난해 45.7%까지 떨어졌다.

국내에서도 2015년 폴크스바겐 디젤게이트 이후 2016년 47.9%, 2017년엔 45.8%로 하락하더니 올해 상반기 등록된 신규 자동차 92만93990대 중 디젤차는 42만329대로 점유율이 45.2%로 떨어졌다.

디젤차 빈자리는 하이브리드(HEV), 플러그인 하이브리드(PHEV), 전기차(EV) 등 친환경차가 차지하고 있다. 친환경차들은 과거 비싼 가격과 충전 문제 때문에 선호도가 낮았다.

최근 들어선 이런 단점을 개선한 모델들이 출시돼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기 시작했다. 특히 연료 가격이 저렴하다는 디젤차의 강점은 저가형 전기차와 하이브리드차의 고연비에 희석됐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에서 다양한 이유로 디젤 차량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고 있는 가운데 정부 규제까지 겹치면서 갈수록 디젤차의 설자리가 위협받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 내달 WLTP 디젤차 적용, 몰락 부채질

내달 1일부터 새로운 배기가스 규제인 국제표준시험방법(WLTP)이 국내 모든 중·소형 디젤차에 적용된다. 지난해 9월부터 새로 인증받는 디젤차에는 이미 해당 규제가 적용됐다. 다음달부터는 기존의 유럽연비측정방식(NEDC)으로 인증을 받아 생산 중인 모델에도 동일하게 시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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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LTP가 적용되면 시험주행 시간과 거리, 평균속도가 늘어나고 감속·가속 상황이 늘어난다. 주행 상황이 악화되면서도 시험 차량의 질소산화물(NOx) 배출량은 기존과 같은 기준인 ‘0.08g/㎞ 이하’를 충족해야 한다. 새 규제에 맞춰 제조사들은 배기가스재순환장치(EGR), 희박질소촉매장치(LNT) 등 기존의 배기가스 저감장치 외에 요소수로 질소산화물을 줄이는 선택적환원촉매장치(SCR)를 추가하고 있다. 실제 현대·기아자동차, 쌍용자동차, 한국GM은 SCR를 장착한 모델을 선보였다.

문제는 새로운 장치가 장착되면서 가격이 인상된다는 점이다. SCR 장착에 따라 가격이 100만∼300만원가량 차량 가격 인상 요인이 발생한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디젤차에 대한 인식이 갈수록 안 좋아지는 상황에서 WLTP 도입으로 가격 인상이 불가피하다"면서 "최근 자동차회사들이 디젤 라인업을 줄이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