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13일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을 검찰에 고발하기로 했다. 처남 가족이 소유한 4개 회사를 계열사로 신고하지 않아 부당 내부거래 혐의에 해당된다는 이유에서다.

재계 일각에서는 최근 4개월 동안 이어지고 있는 정부의 한진그룹 집중조사가 도를 넘은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정기업을 대상으로 무려 11개 사법·사정기관이 계속해서 ‘먼지떨이식’ 조사에 나서는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재계 관계자는 “최근 한진그룹으로 집중된 정부의 조사는 마치 조양호 회장 일가 중 누군가가 구속될 때까지 계속될 것 같다는 느낌마저 들게 한다”며 “여론몰이를 앞세운 정부의 압박으로 인해 기업의 정상적인 경영활동이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커졌다”고 말했다.

◇ ‘물컵 갑질’ 후 4개월간 이어진 11개 기관의 한진그룹 집중조사

왼쪽부터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이명희 일우재단 이사장,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

정부의 한진그룹 조사는 지난 4월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의 ‘물컵 갑질’ 논란에서 시작됐다. 경찰은 조 전무에게 광고대행사 직원들에게 물컵을 던지고 폭언을 했다는 혐의를 적용해 4월 18일부터 사무실 등을 압수수색했다. 조 전무는 5월 1일 경찰에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돼 조사를 받았다.

조 전무의 갑질 논란은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키며 조양호 회장 일가와 한진그룹 전체에 대한 정부의 전방위 조사로 확대되는 결과를 낳았다.

조 전무에 이어 그의 어머니인 이명희 일우재단 이사장이 지난 5월 과거 호텔 증축 공사 당시 공사 관계자들과 운전기사 등에게 폭행과 폭언을 한 혐의로 경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다. 이 이사장은 또 필리핀 가사도우미를 불법 고용했다는 혐의도 적용돼 또다시 조사대상이 됐다. 조현아 대한항공 전 부사장도 밀수 혐의 의혹 등을 조사받기 위해 인천세관에 소환됐다.

수사 대상도 갑질 의혹을 넘어 수백억원대의 횡령과 탈세, 조세포탈, 밀수 등으로 확대됐다. 경찰에 이어 관세청이 수 차례에 걸쳐 한진그룹과 대한항공, 조 회장 자택 등을 압수수색했고 검찰의 수색과 조사가 또다시 이어졌다. 심지어 지난 1998년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이 인하대에 부정 편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교육부의 조사관까지 조사를 벌였다.

조양호 회장 역시 지난 6월 28일 탈세와 횡령, 배임 혐의 등으로 서울남부지방검찰청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다. 조원태 사장을 제외한 조 회장 일가 모두가 포토라인에 선 것이다.

조현민 전 전무가 경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은 시점부터 지금까지 조 회장 일가와 한진그룹 조사에 투입된 사법·사정기관은 총 11곳. 검찰과 경찰 등 수사기관은 물론 관세청과 법무부, 국토교통부, 공정위, 국세청, 교육부, 고용노동부, 보건복지부, 농림축산검역본부 등이 나서 3개월여간 조사를 벌였다.

특정기업 한 곳을 두고 수사기관과 정부 각 부처가 전방위적 조사를 몇 달간 강도 높게 진행하는 것은 지금껏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던 일이다.

◇ 전방위 ‘먼지떨이식’ 조사에도 5차례 영장 기각

문제는 수개월간 여러 정부기관이 달려들어 강도 높은 조사를 벌였지만, 조 회장의 일가의 혐의가 명확히 입증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5월 4일 강서경찰서는 폭행과 업무방해 혐의로 조현민 전 전무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검찰에 의해 기각됐다. 이를 두고 법조계에서는 조 전 전무의 갑질이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소지는 크지만, 구속영장까지 신청할 사안은 아니었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이어 폭행과 폭언 혐의 등으로 신청된 경찰의 이명희 이사장에 대한 구속영장도 서울중앙지법에서 기각됐다. 법무부도 이 이사장에 대해 출입국관리법 위반혐의를 들어 6월에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역시 법원은 이를 기각했다. 당시 서울중앙지법은 “범죄 혐의의 내용과 지금까지의 수사진행 경과를 볼 때 구속 수사할 사유나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조양호 회장에게 적용된 서울남부지검의 구속영장도 역시 법원에 기각됐다. 밀수, 관세포탈 등의 혐의로 조현아 전 부사장에 대해 신청된 인천세관의 구속영장도 지난 7월 인천지방검찰청에 의해 기각됐다.

최근 4개월 동안 계속된 정부의 강도 높은 조사 속에서 총 5차례에 걸쳐 조 회장 일가에 대한 구속 시도가 있었지만, 모두 이렇다 할 혐의가 입증되지 못한 셈이다.

◇ “금호아시아나그룹과의 형평성도 어긋난다” 지적 잇따라

재계 일각에서는 유독 조 회장 일가와 한진그룹으로 집중된 정부의 조사는 최근 ‘기내식 사태’로 불거진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과의 형평성에도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아시아나항공은 기내식 업체를 갑작스럽게 교체하는 과정에서 제 때 기내식을 공급받지 못해 극심한 운항 지연을 겪었고 승객들은 상당한 불편을 감수해야 했다. 새 기내식 업체로 선정된 게이트고메코리아의 모회사인 중국 하이난그룹이 박 회장이 대주주로 있는 금호홀딩스로 거액의 투자를 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박 회장이 기내식 대란에 상당한 책임이 있는 것으로 드러난 바 있다.

기내식 대란 이후 박 회장의 갑질과 금호아시아나그룹의 부당 경영의혹에 대한 제보와 폭로도 잇따랐다. 조현민 전 전무의 물컵 갑질 이후 조 회장 일가가 여론의 집중포화를 맞은 것과 비슷한 분위기였다. 그러나 박 회장과 금호아시아나그룹에 대해서는 정부가 이렇다 할 조사에 나서지 않았다.

재계 관계자는 “죄가 있다면 응당 법의 심판을 받는게 맞는 일이지만, 금호아시아나그룹과 비교했을 때 정부의 조사가 한진그룹과 조 회장 일가에게만 지나치게 집중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며 “정부가 언제까지 여론을 앞세워 기업의 위에서 군림하려고 할 지 개탄스럽다”고 말했다.